용감한 이들에게 용감한 친구가 되기 위하여
타인을 보는 만큼 나를 돌아보게 된다. 이건 나의 현재 직업적 특성과 맞닿는 부분이다. 사람을 보는 눈을 기를수록 현재의 내 상태도 더 잘 알게 된다. (물론 이걸 잘한다는 것과는 별개다. 난 잘 못한다..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게다가 난 타인에 대한 관심이 적고 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사람인지라 나와의 대화를 정말 많이 하는 편이다. 거의 24시간 내내. 최근엔 이 생각의 스위치가 제발 꺼져버렸으면 좋겠다 싶었다. 꿈까지 많이 꾸는 사람이라 자는 시간까지도 생각의 이미지를 본다. 이게 너무 괴롭다가도 이내 좋은 쪽으로 생각하자 싶었다.
결국 이 생각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끊임없는 고민과 생각이 나를 망설이게 했다. 주저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생각을 생각했다. '음 그럼 생각을 멈추고 몸을 움직이면 되겠군!' 그게 현재다. 그 생각을 한 지 한 달 정도 되었다. 변덕스러운 성정에 언제 부침개처럼 뒤집어질지 모르겠지만 생각을 생각해서 몸을 움직이게 하고 있다. 목표를 실천할 수 있게 단계 별로 짜고 조금씩 움직인다. 만다라트표를 이제야 썼는데 올해가 끝날 때 함께 회고해 봐도 좋겠다.
최근엔 엄마에게 내 생각과 계획들을 말했다.
나: 그만 후회하고 싶어. 망설임이 이제 날 앉혀놓는 건 사절이야.
엄마: 그렇지만 걱정되는 걸.
나: 걱정, 이해하지만 엄마의 보수적인 마음이 나를 망설이게 한 원인 중 하나야. 탓하는 건 아니야. 이해해.
엄마: 그래 맞아. 넌 더 많은 걸 보고 느낄 수 있는 아이니까.
나: 그래서 이제 후회는 잠깐하고 그 후회를 어떻게 수습할지만 생각하기로 했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걸.
엄마: 이젠 정말 어른이구나.
나를 키운 보호자에게 독립을 선언당했다. 지금부터 하는 나의 선택이 나를 만들고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 글들은 모두 나의 일기장에서 비롯된 회고록이다.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는 꼭 생각을 텍스트화하는 것을 추천한다. 형태 없는 생각과 감정들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형태를 갖추면 비로소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원인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만 고민하면 된다. 그렇게 조금씩 방향키를 설정하고 걸으면 된다. 나는 멈춰있을 때 가장 불안해하는 사람인지라 산책 정도 걷는 것만으로도 불안이 많이 해소됐다. 조금씩이지만 잘 나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나의 자기 효능감을 높여준다.
오래전 나의 인생 목표를 돌이켜봤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살았음을 어떠한 형태로든 세상에 남겨놓고 싶은 사람이었다. 수단은 상관없었지만, 이전엔 그 수단이 대부분 예술이었다. 지금은 꼭 그런 게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게 하고 싶다면 또 할 거다.
나는 다른 사람의 눈치와 생각을 과도하게 생각한다. 이게 내 망설임의 또 다른 이유였다. 불필요하고 한심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신경 안 쓰기에는 나는 영화 속 모르는 인물의 기분까지 상상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생각과 반응은 나의 몫이 아님을 안다. 내 역할은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그 에너지를 아껴 나에게 쓰는 게 더 이롭다. '성공하려면 쪽팔림은 필수다'라는 말을 되뇐다. 난 (내 기준에서) 성공하고 싶다. 안 하고 관에 들어갈 때 우는 사람보단 살아있을 때 해보고 쪽팔려하고 후회하는 간지 인간이 되고 싶다.
난 살면서 고백해 본 경험이 단 한 번뿐이다. 그것도 꽤 충동적이지 않은 아주 계획된 일이었다. 자기 성찰을 곁들인 심경 고백과 자백까지 포함한 고백이라면 조금 더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비겁하게 숨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입 밖으로 내뱉은 마음은 주어 담을 수가 없어 두려웠다. 무엇보다 마음이 말이 되는 순간 나의 마음이 유언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나를 비겁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복이 많은 나는 사려 깊거나 나보다 용감한 사람들을 만나 내 마음을 뱉는 수고로운 일을 하지 않더라도 내 마음이 전달된 관계들이 많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우정이 사랑보다 대접받지 못할 때 한탄스럽기 그지없다. 우정 사이에 '사랑해'라는 직접적인 표현이 없다고 해서 그 마음의 깊이가, 서로에게 부은 애정의 양이 적지 않은데 왜 사랑보다 못하지? 아니 어쩌면 나는 모든 우정을 사랑과 동일하게 대했다. 어느 날엔 사랑보다 더 한 날도 있었다. 그게 나의 마음이었을 뿐이다. 물론 친구에게 '사랑해'라는 말을 하는 게 꽤 낯부끄럽게 들릴 수 있다. 나 또한 그렇다. 그러나 우정에 표현이 없다면 어느 순간 휘발될 수도 있다. 마음은 눈에 보이지 않아 증명의 방법이 있어야 한다. 그게 시간이든, 물성이든. 가장 쉬운 방법을 고백을 하는 것이다. 사랑 시작의 빵빠레를 울리는 것처럼. '나는 네가 너무 좋아! 너랑 더 오래 얘기하고 싶어. 네가 내 곁에 있어 다행이야.' 같은 말 말이다. 내가 나의 우정에 가장 많이 실토하는 마음은 '태어나줘서 진심으로 고마워'이다. 다행히 같은 시간선에 만나 삶의 궤적을 함께 걸을 수 있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