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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 윤 May 19. 2021

27일간의 연애

뭐, 우리 막내이 왔다고?

2020년 7월 19일. 베트남에서 4박 5일의 휴가를 보내고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오전 9시쯤이었다. 뭔지 모를 불안감에 도착과 동시에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열 개정도의 카톡이 와있었다. 큰언니였다.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메시지를 열었다.

 ‘도착했나?’라는 같은 말만 반복해 와 있었다. 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언니야, 무슨 일 있나? 방금 도착했다.”

 “빨리 온나.”

 언니의 말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매년 우리가 휴가기간인 일주일을 언니네에서 보내왔던 엄마다. 엄마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 분명했다. 

 

우리는 곧장 울산으로 갔다. 차 안의 공기는 무겁고 힘들어했다. 여독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런 일이 생겨 다들 쳐져있었다. 한 시간이 어찌 그리 길던지. 남편은 별일 아닐 것이니 진정부터 하라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일요일의 울산 시내는 한산했다. 차는 없는데 신호등은 왜 그리 많아 바쁜 우리의 발목을 곳곳마다 잡았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난 멈칫하고 말았다. 엄마가 웅크리고 앉아 끙끙 앓고 있었다.

 “엄마”

 내 목소리에 엄마는 겨우 고개를 들어 흐릿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고, 우리 막내이가 왔다고? 어디 갔다 인자 오노? 어서 우리 집 가자.”

 엄마 얼굴에 화색이 조금씩 돌아왔다.  엄마는 바로 앉으려다 쓰러지고 말았다.

 어제저녁에 저녁 잘 드시고 화장실에 갔다 넘어졌단다. 그러고는 앉은 자세로 식음을 전폐하고 내가 오기만 기다렸단다. 고집이 얼마나 세든지 언니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언니가 끓여 놓은 죽을 들고 엄마를 다독여 몇 술을 먹여드렸다. 언니는 그런 모습을 보고 나만 자식이라며 섭섭해했다.

 “엄마, 내가 좀 늦게 와서 미안해요. 옷 바로 입고 이제 집 가자.”


  엄마를 움직일 때마다 이상한 냄새가 낫다. 언니가 느낌이 좀 이상해서 미리 기저귀를 입혀 놓아 다행이었다. 그런데도 아무런 느낌 없이 앉아 있는 엄마가 너무 가여웠다. 난 그렇게 깔끔을 떠는 엄마의 모습을 닮기 싫다고 버릇처럼 말했었는데. 왈칵 눈물이 흐르고 말았다. 

 “엄마, 왜 이러고 있노? 얼른 씻고 집에 가자.”

 “아이고, 내가 우리 막내이 눈에 눈물 나게 했나? 나이 무면 다 이렇다. 울지 말거래이.”

엄마는 평소에도 내가 우는 것을 마음 아파했었다. 유복녀 눈에 눈물 흘리면 산천초목이 운다고, 남편이 처음 인사하러 오던 날도 제일 먼저 내 눈에 눈물 흘리게 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 그런 엄마 앞에서 난 최대한 밝게 웃으려 노력하고 있었는데...

 

다 같은 딸 집이라도 당신이 기거하던 집이 편한 모양이다. 엄마는 딸만 셋이다. 그중에 난 막내다. 엄마 나이 서른여섯에 낳은 늦둥이로 우리는 띠 동갑 말띠다. 그래서 더 각별하다. 

 그날 이후 엄마는 다시 아이가 되어버렸다. 유복녀를 낳아 시어른 욕받이가 되어 벼렸던 가엾은 한 여인이 이제 쉬고 싶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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