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들었던 고향을 떠나며
내일이면 정들었던 안양을 떠난다. 언제나 떠나는 건 한순간이며, 함께 한 시간이 얼마나 긴지 추억이 얼마나 많은지 따위는 아무런 힘이 없다. 물론 평생을 살아온 고향이라도 예외는 없다.
코로나 블루의 탓인지, 혹은 늘 핑계가 되어주곤 하는 날씨의 탓인지, 요즘 들어 유독 과거에 얽매이는 나를 본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따위의 공허한 후회들, 두고 떠나온 사람들의 얼굴, 잃어버린 꿈의 모양들…
이사를 위해 방을 정리하는데, 남겨 놓았던 과거의 흔적들을 여럿 마주하게 됐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무언갈 버리는 걸 두려워하곤 했어. 과거에 얽매이는 내 모습이 비단 요즘만의 일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됐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집합이다. 굳이 어떤 사건 하나를 끄집어내서 힘겹게 반추하지 않아도, 그것들은 이미 나라는 존재 안에서 살아 숨 쉰다. 고통스레 끄집어낸다 한들 바꿀 수도, 바뀌는 것도 없다. 이삿짐을 싸면서 이런 생각들이 갑작스레 뭉게뭉게 피어올라, 집에 있던 흔적들을 도망치듯 비워내버렸다.
광명으로 떠나기 전, 과거를 힘껏 덜어내어 묻어두고 떠나려 한다. 과거보단 현재에 몰두하는 나를 바란다. 열심히 살다가 언젠가 문득 보고 싶어질 때면 다시 찾아와야겠어. 비록 떠난다 해도 마음의 고향은 영원하겠지. 떠나는 마음이 슬픔보다는 후련함에 가까운 이유다. 고마웠어, 또 올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