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에 쥐새끼가 들었네
가족이나 친구, 직장동료 중에 더러 가까운 척, 친한 척, 좀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들은 관계의 주도권을 자신이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듯하다. 가면을 쓰고 사는 사회여서, 나도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여러 모양의 가면을 바꿔 끼고 나간다. 일회성 만남의 자리에서 쓰는 가면, 편안할 때 쓰는 가면, 불편한 상황에 쓰는 가면. 살다 보니, 가면의 수가 늘었다. 자연스럽게.
문득 가짓수가 늘어간 가면의 출처는 처음 보는 사람들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가까운 사람. 겉으로 가까운 사람일수록 내가 쓰는 가면엔 상대에게 위험이나 위협을 가할 어떤 표시도 되어 있지 않다. 어떠한 꾸밈도 하나도 더하지 않는 내 가면. 상대가 나를 우습게 보도록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이 가면은 내가 가진 가장 좋은 것. 이 가면의 이름은 '만만한 가면'
시간은 금이다.
어릴 때도 지금도 나이가 더 들어도 내게 가장 중요한 건 '시간'이다. 사람 관계에서 상대의 시간을 배려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버리는 인간관계는 곧장 휴지통으로 넣어버린다. 내 시간을 쥐새끼처럼 갉아먹는 첫 번째 상황엔 '만만한 가면'을 쓰고 넘어간다. 2번째엔 '만만한 가면' 뒷면에 새겨놓는다. 3번째 상황엔 이 사람과 마주할 가면은 없다. 시간을 내지 않을 것이니.
모질게 보일 수도 있으나, 그 전 사정을 보면 상대의 행동이 참 모질었다. 관계는 상호로 이루어지는 법.
누가 나쁘고 잘했고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이 시간에 둘의 상황을 이쪽에서 정리한 것일 뿐. 예민한 사람이라면, 상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파악하고 상황을 정리하려는 노력을 할 것이니, 가면 얘기는 할 것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 관계에서 미묘하게 변해버린 상대의 심중을 파악하려 애쓰는 경우는 드물다. 그저 바쁜 자신의 삶을 핑계로 시간이 흐르면 해결해주겠지 하고 넘기곤 하더라.
고로 하고 싶은 얘기는 이거다.
별일 아닌 것인데 머리를 아프게 하는 관계라면, 당신의 가면 뒤에 새겨놓길 바란다.
당신에게 가장 중요한 보물과 곡식 창고에 쥐새끼가 들었다는 증거로 머리가 아픈 걸 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