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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자유 Jul 15. 2024

이혼은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될 거란 망상을 견디는 일

이혼은 세상에 혼자 남겨지게 될 거라는 망상을 견디는 일이다.


4년여간의 별거 기간을 포함에 이혼에 대해서 쉽게 결정하지 못했던 것은 두려움 때문이었다. 세상의 편견까지는 들먹일 필요도 없다. 당장 이사라도 하게 된다면? 집을 알아보고, 계약하고, 이삿짐을 싸고 풀고, 아이를 전학시키는 일까지… 정말 혼자서 다 할 수 있을까.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이 없다면 정말 나 혼자 번 돈으로 아이를 잘 키울 수 있을까? 이혼은 결혼보다 더 현실이었고, 이혼하게 되면 나 혼자 세상과 싸워야 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혼 후가 무서워 결혼을 유지하기엔 그곳 역시 외롭고 고통스러운 허허벌판이었다.


이혼 후 책 원고를 마감해야 하는 날에 복숭아씨를 삼킨 강아지를 병원에 데려가 수술해야 하는 일도 있었다. 강아지가 수술하는 동안 기다리며 노트북을 꺼내 원고를 수정했다. 강아지가 수술을 받고 퇴원하는 날, 강아지 가방을 앞으로 메고 흔들리지 않도록 30분을 천천히 걸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에 내가 이 강아지 보호자라는 걸 다시 생각했다. 나 자신과 강아지가 더 애틋하게 느껴졌다. 나 자신에게도 더 단단한 어른이 되어주고 싶었다.


10년간 쌓인 살림을 모조리 정리하고 이민 가방에 필요한 짐만 추려 열 살 아이와 강아지까지 데리고 뉴질랜드로 오는 일도 일어났다. 나 자신을 회복시킬 시간이 필요했고, 아이와 새롭게 시작할 용기를 얻고 싶어서 내린 결정이었다. 

물건들을 하나씩 중고거래로 처분하며 몇 달에 걸쳐 집을 비워나갔다.

강아지 입국 준비만 6개월이 넘게 걸렸다. 모든 짐을 정리하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뉴질랜드로 오던 날, 인천 공항에서 무거운 이민 가방 4개를 혼자 낑낑거리며 하나씩 들어 올려 체크인 수속을 밟았다. 진땀이 났지만, 내가 얼마나 강한지를 실감했다. 그러고 나니 내가 가고 싶은 곳이라면 어디든지 가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벅차게 느껴졌던 일들을 하나씩 해내면서 그 누구도 원망할 필요가 없었다. 도와주지 않는다고 섭섭할 필요도 없고, 무심하다고 외롭지도 않았다. 그 대신 내가 어떻게 하면 이런 일들을 더 잘 능숙하게 해결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 되었다. 


망상이 걷히고 나면 실체가 드러난다. 내 인생의 주인은 처음부터 나였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이혼은 이 세상에 혼자 남겨지는 일이 아니라, 내 두 발로 세상을 향해 걸어 나가는 일이었다.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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