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 대한 빅 데이터를 모은다면…
개인적 의견이지만 산전수전은 다 겪은데다가 한 번도 실패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화 상대로는 제일 밥맛이다. 이해는 가는 게, 인생의 갖은 고생을 다 해봤는데 그때마다 다 이겨냈다면, 자기 스스로의 말이 얼마나 정답만 같겠는가. “돈을 이렇게 벌고, 애는 이렇게 키우고, 인생은 이렇게 살고…”
이건 나이가 들수록 더하다. 성실하고 근면하게 오십 년 이상 산 사람이 사회적 성공까지 거머쥐면 대화의 주제는 거의 정해져 있다고 봐야 맞다. 딱히 속물이 아니더라도 대화의 주제는 늘 ‘성공’과 ‘우월한 삶’으로 돌아온다. 얄팍한 사람이라면 자신의 실수는 감추거나 합리화하고 성장 가능성에 대해 떠벌리는 레파토리가 돌고 돈다. 착한 사람이라면 자기처럼 살지 못하고 헤매는 사람들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거만한 사람이라면 성공하지 못한 이들을 답답해한다.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을 우러러보려 애쓰고 나도 따라 해야 하나 불안해하는 축에 속했다.
그렇다고 자기 삶에 대한 반짝이는 에너지 없이 뻔한 이야기를 나누는 대화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지금에 와서는 자기 삶에 성실하지만, 실수나 실패해 본 사람들과의 대화가 가장 편안하다. (아주 까다롭군…)
설거지하다가 문득 깨달은 것이나, 나 자신의 시시한 약점에 관해 이야기해도 어색하지 않은 대화. 이런 대화는 평범한 일상에 두 발을 딛고 살게 해준다. 별거 아닌 것들이 알고 보면 큰 의미가 있다는 걸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이혼이 좋은 점은 이런 사람이 될 기회를 준다는 것 아닐까. 나보다 먼저 이혼한 ‘이혼 선배’ J 언니와 대화하다가 말했다.
“언니는 늘 언니가 실수했을 가능성에 대해
열려있는 거 알아?”
정말 그랬다. 갱년기 언니들이 그렇듯이 겉은 어른 비스름하게 생겼지만, 아직 철없는 아이들 때문에 화를 내는 일이 종종 있었다.
하지만 곧 애초에 자신이 아이를 대하는 태도의 문제로 돌아가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가진 약점과 한계에 대해 투명했다.
“야, 내가 살아온 과정을 봐봐. 내 판단이 틀릴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보여주지 않니? 하하하”
이런 것이 인생의 빅 데이터 아닌가. 증거가 있으니 과학적이기 그지없다. 삶에 대해 여전히 열정적이면서도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사실에 상처받지 않을 정도로 굳은살이 박인 상태가 된 것이다.
이혼하고 나서 알게 된 것은 다 내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에는 내 삶이 내 의지와 능력에 달린 줄만 알았다. 하지만 성실한 사람도 실패하기도 하고, 똑똑한 사람도 사기를 당하기도 한다. 인생의 반 정도는 운이 아닐까.
적당히 운에 기대기도 하고, 실패했다는 치욕스러움도 끌어안으면서 그냥 다시 오늘을 살아가는 것. 그것이 이혼이 나에게 알려준 매력적인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