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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동자 Apr 12. 2020

가난한 부모는 아이에게 죄 짓는 걸까?

'마음이 부자인 부모'라면 그걸로 족하다


요즘에 유치원들 사이에서 엘사, 휴거, 호거, 300충, 200충 등의 유행어가 돌고 있다고 한다. 저 모든 단어들이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 저소득층 가정의 아이들을 조롱하는 단어라고 한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부모의 소득수준에 따라 패를 가르고 따돌림을 시킨다고 하니, 사회가 대체 왜 이렇게 돌아가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아이들이 뭘 보고 배웠을지 대충 짐작이 된다. 이들은 아마 가난을 죄악이라고 여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서두에서 밝히지만, 경제적인 부분에 한정해서, 부자나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입관이 전혀 없다는 것을 미리 밝힌다. 부자도 가난한 사람도 개개인에 따라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부자니까 착하고, 가난하니까 나쁘다거나, 반대로 부자니까 인색하고 갑질하고, 가난하니까 피해자고 약자라는 생각은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가난한 사람은 젊었을 때 공부 안 하고 탱자탱자 놀고 게임이나 하고 빈둥대면서 인생을 허비한 사람들일까? 물론 그런 사람들도 있다. 근데 그건 경우에 따라 다를 수 있는 거 아닌가? 진짜 인생 열심히 치열하게 산 사람인데도 자기가 선택한 일이 돈이 되지 않는 일이라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인생의 고민도 많이 하고,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사회를 위해서 헌신하고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시는 분들이 상당히 많다. 근데 그렇게 봉사나 사회운동이나 공익활등을 직업으로 삼은 분들 대다수가 월 250을 벌기 힘들다. 투잡, 쓰리잡 하면 되지 않냐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분들 퇴근하고나서도 사회 공헌활동으로 바쁘다. 지역사회 활동이나 재능기부 활동 등...... 그리고 나와 친한 대안학교 선생님이 계신데, 이분 정말 교육에 대한 사명감이 남다르신 분이다. 퇴근하고 밤새, 주말에도 여가시간 반납하고 교육연구랑 수업준비로 바쁘시다. 학교에서도 학생들한테, 학부모님한테, 동료 선생님한테 엄청 존경받으시는 분이다. 근데 이 분 임금이 최저임금이다. 교수 이상으로 학문과 교육에 일생을 바치신 분인데 교수의 10%정도밖에 안되는 임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이 분들 정말 누구보다 치열하고 남을 도우면서 살아가고 계신 분이다. 단지 현재 종사하고 있는 직업이 돈을 얼마 못 가져다 줄 뿐이다. '와 진짜 이런 분들이 부자가 돼야 하는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분들이다. 이런 분들이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하다고, 그 나이까지 가난하면 죄라고 쉽게 얘기할 수 있는 걸까? 그런 말은 이런 분들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한다.


그럼 부모가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하다면 자식한테 죄 짓는 걸까? 자식한테 돈도 없는데 태어나게 해서 미안하다 해야 하는 걸까?

나는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가난할지라도, 마음이 부자라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부자라 하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마음의 여유가 넘치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속 좁아지고, 이기적이게 되고, 조그만 거 하나에 집착하게 되고, 감정에 이리저리 휘둘리게 된다.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지 못하고, 이 상황 저 상황에 휘둘리면서 오로지 생존에 집착하며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자기가 손해보는 것에 대해서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그래서 자잘하게 손해보는 일이 있어도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화내거나 동요하지 않고, 자기가 손해봄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베풀려고 한다. 경제적으로는 가난해도 마음이 부자면 부모로서의 자질은 충분히 갖춘 거라고 생각한다. 자식한테 미안해 하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마음이 부자라면, 자녀들은 부모의 그런 모습을 본받아서, 아이들도 마음이 부자인 사람으로 성장할 것이다.

근데 이런 말을 하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다.

"마음이 부자면 뭐해, 베풀려면 돈이 있어야지"

꼭 베푸는 것을 돈으로만 해야 할까? 노동력이나 재능으로 베풀 수도 있다. 손재주가 있다면 자그마한 선물을 만들어서 나눠준다든지, 아니면 집에 초대해서 맛있는 요리를 해준다든지, 아니면 자기만 알고 있는 팁이나 노하우를 전수해준다든지, 아니면 아이를 대신 돌봐준다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베풀고 살 수 있다. 꼭 돈으로만 베풀 수 있는 건 아니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자신이 가난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부자인 사람은 자기가 가진 걸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잘 되길 바라며 베풀 수 있는 사람이다. 아무리 가진 게 많다고 해도, 자긴 가난하다고 생각하고 인색하게 굴거나, 사치와 허영으로 자길 알아봐주길 바란다고 하면 마음이 가난한 사람인 것이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아이들의 학부모님 중에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분들이 계시다. 근데 그분들은 정말 마음만큼은 부자이신 분이다.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잘 알고 계시는 분이고, 그걸 직접 삶을 살아내며 보여주시는 분이다. 아이들도 부모님 영향 받아서 정말 선하고 모범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


단순히 돈이 부족하다고 자식한테 미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마음이 부자라면 아이들은 가난이란 것에 쫓기지 않고 여유로운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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