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하자.
요즘 경청과 듣기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말 잘하기, 자기를 잘 표현하기가 중요시되었는데, 너무 그것만 중요시해서 그랬을까? 다른 사람의 말을 잘 듣기보다, 자기 할 말만 하려는 사람이 많아진 것 같다는 체감이 든다.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중간에 끊고 개입하기도 하고, 상대가 말하고 있을 때 자기가 말할 타이밍만 호시탐탐 노리다가, 약간의 틈이라도 생기면 그 틈을 파고들어 자기 할 말을 하려는 사람이 많다. TV에 나오는 많은 토론 프로그램만 봐도 그렇지 않은가? 그런 어른들의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성인이 돼서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자신의 부족한 점을 인정하고 개선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질 수 있을까?
그럼 우리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고, 경청하는 자세를 가르쳐줄 수 있을까? 먼저 부모가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잘 들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이가 말하고 있는데 중간에 막 끊고 그러면, 아이들이 그걸 그대로 배우게 된다. 가장 중요한 건 부모부터 아이의 말에 경청해주냐는 것이다. 그리고 부부사이에 대화를 할 때에도 경청하는 습관이 갖춰져 있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친척, 이웃 주민 등 다른 사람과 대화를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부모가 타인을 대하는 태도를 보면서도 아이들이 배우기 때문이다.
아이가 아무리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해도 웬만하면 끝까지 들어주는 게 좋다. 만약 아이의 말이 마냥 길어져서 힘들고 끝까지 들어주기 힘들다고 하면 정중하게 끊으면 된다.
"잠깐만. 미안한데 엄마가 너의 이야기를 더 들으면 기억이 잘 안 날 거 같거든? 그러니까 조금 쉬었다가 이야기 해줄래?"
이렇게 얘기하면 아이는 흔쾌히 받아들인다. 그리고 또 그런 상황일 때 아이가 스스로 말하는 걸 조절하는 법도 배우게 된다. 이렇게 아이의 말을 끝까지 잘 들어주고, 정 그렇게 하기 어려울 만큼 힘든 상황이라면, 앞에서 언급한 대로 정중하게 거절하면 된다.
그럼 아이들이 말대꾸를 할 땐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것도 끝까지 들어줘야 할까? 그러다가 버릇 나빠지는 거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우리가 흔히 아이가 말대꾸를 한다고 생각되는 경우를 떠올려보면, 혼낼 때나, 명령할 때 그렇다. 어른이 훈계를 하는데 아이가 말대꾸를 한다? 이건 보통의 한국 어른이라면 용납하기가 정말 어려울 것이다.
아이들이 말대꾸, 말대답을 하는 건 대개 억울한 게 있어서 그렇다. 자기를 변호하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말대꾸, 말대답은 일종의 자기방어수단이다. 혼나는데 뭔가 억울하거나, 합당하지 않다고 하면 그만큼 말대꾸가 많아진다. 정말 이게 혼내야만 하는 상황인지, 아이의 입장에서 억울한 건 없을지 먼저 잘 생각해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가 잘못한 게 맞다, 이건 꼭 훈육이 필요하다 하면 일단 아이의 말대꾸나 변명도 잘 귀 기울여 들어주자. 그렇게 경청하고 공감하고, 아이가 자기 억울함을 잘 털어내서 속이 좀 시원해졌을 때, 그때 아이가 잘못한 사실을 얘기하고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도록 훈계하면 된다. 아이한테 밑도 끝도 없이 말대꾸 한다고 화내는 것도 일종의 말 끊기고, 경청하지 않는 자세다.
나는 웬만해선 아이들 말 다 들어주고, 일상적인 대화에서 내가 말하다가 애들이 끼어들어서 맥이 끊겨도 별로 개의치 않는다. 근데 내가 어른으로서 엄격하게 권위를 세울 때가 있다. 아이들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상황일 때가 그렇다. 위험한 행동을 하거나, 크게 싸우거나,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폭력적인 행동을 하거나. 그럴 땐 일단 아이들의 행동을 중단시키고, 가만히 앉아서 잠시 숨 좀 고르게 하고, 아이의 입장을 끝까지 들어본다. 그렇게 아이들이 충분히 자기변명을 하면, 그때 훈계를 한다. 내가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줬으니, 아이들도 내 말을 끝까지 듣도록 지도한다. 그러면 웬만하면 아이들이 말대꾸를 하지 않고 어른의 훈계에 큰 불만 없이 수용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들, 특히 유아들에게 경청하는 능력을 가르치는데 정말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짧은 동화 들려주기다. 긴 이야기는 아이들이 중간에 집중력이 흐려질 수 있으니, 5분에서 10분 정도 길이의 이야기가 적당하다. 짧은 이야기를 들려주면 아이들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 듣기에 집중한다. 아이들이 이야기를 듣다 보면 아이들이 나름대로 사족을 붙일 때가 있다. 그럴 땐 하던 이야기를 멈추면 된다. 아이가 이야기를 듣다가 자기 할 말을 한다든지, 딴 짓을 한다든지 하면, 주의를 주며 집중시킬 필요 없이 그냥 이야기를 멈추면 된다. 그럼 아이가 왜 이야기를 계속 안 해주냐고 물어볼 것이다. 그럴 때 "조용히 귀를 기울여야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하고 말해주면 된다. 그러면 아이들은 중간에 말하다가 이야기가 멈추면 눈치껏 집중해서 듣는 시늉을 할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는 중간에 궁금한 게 있으면 끝나고 나서 질문하게끔 약속을 정하면 더욱 도움이 된다.
이렇게 이야기를 듣는 과정이랑, 이야기를 들을 때 가져야 할 자세를 반복적으로 훈련시키면서 아이에게 경청하는 능력을 키워줄 수가 있다. 근데 그중에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건, 부모부터 경청하는 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경청과 존중, 이것이 건전한 대화의 시작이고, 그런 건전한 대화문화를 가진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다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