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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동자 May 18. 2020

아이의 특출난 재능을 잘 키워주려면?

절대음감, 음악 천재 아이가 음악을 싫어하게 된 계기

나는 어렸을 때 음악 신동이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다. 근데 나는 그 당시에 음악 신동이라는 말을 정말 듣기 싫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부모님한테 “얘 음악 신동인가봐, 피아노 학원이라도 좀 보내봐” 이렇게 지나갈 때마다 한마디씩 거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렸을 때 집에 전자피아노가 하나 있었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전자피아노는 아니고 건반이 61개가 있는 61키 신디사이저였다. 나는 5살 정도에 그 전자피아노를 가지고 노는 걸 정말 좋아했다. 5살 아이인 나한테는, 피아노의 전원을 켜서 건반을 누르면 소리가 나는 게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부모님은 음악을 정말 좋아하셔서, 내가 어릴 때 집에서 클래식이나 뉴에이지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많이 틀어두셨다. 나는 그 음악을 듣고 피아노를 켜서 건반으로 그 멜로디를 따라 치곤 했다. 그렇게 내가 좋아하던 음악의 멜로디를 피아노로 따라 치면 그게 그렇게 재밌고 뿌듯했다. 그런 나의 피아노로 멜로디를 따라 치는 재미에 아무도 간섭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지금 예술의 전당에서 피아노 공연을 하고 있을 지도 몰랐을 것이다. 근데 주변 어른들은 그런 나를 가만히 두지 않았다. 어쩌다가 친척집에 가서 실로폰 장난감으로 드라마에서 나오는 배경음악 멜로디를 따라 치기라도 하면,

“얘 진짜 음악 신동 아니야? 이거 그냥 놔두기엔 너무 아까운데,
피아노 학원이라도 좀 보내봐"

거의 만나는 어른들마다 이런 얘기를 했다. 그래서 그 당시 부모님의 내 음악적 재능에 대한 기대치가 하늘을 찌르셨다. 그렇게 부모님은 5살인 나를 데리고 피아노 학원을 데려가셨다. 5살에 피아노 학원을 찾아온 건 아마 그 당시에 내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엄마 손에 이끌려서 5살 때부터 피아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근데 한 두 달이 지나고 학원 선생님이 나를 도저히 못 가르치겠다고 집에다 전화를 하셨다.

“어머님, 얘가 악보를 볼 줄 몰라요. 악보를 볼려고 안하고 계속 듣고 치려고 해서 도저히 못 가르치겠어요”

5살이면 아직 글자도 모를 나이인데, 그 나이에 어떻게 악보를 제대로 보고 칠 수 있을까?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당시에는 피아노학원에서 학원 선생님이 본인이 받았던 교육 매뉴얼 그대로, 곧이곧대로 학생들에게 일괄적으로 가르쳤던 때다. 기초부터 탄탄하게, 이론을 먼저 익히고, 악보를 보고 차근차근 익혀나가야 하고...... 그런 학원에서 가르치는 방식이 나한테도, 내 나이 수준에도 전혀 맞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피아노학원 선생님도 나를 가르치기 힘들어 하시고, 나도 피아노 학원에 다니기가 정말 힘들었다. 학원만 가면 선생님한테 볼펜으로 손가락 두드려 맞으면서, 잔소리에 시달리고 오는데 당연히 싫을 수밖에 없었다.

부모님은 결국 그 피아노학원을 그만두고 날 또 다른 피아노학원에 보내셨다. 그렇게 피아노학원만 열 번은 옮겨 다녔던 것 같다. 나는 피아노학원에 다니는 게 학교에서 왕따 당하는 것보다 싫었는데, 부모님은 나의 음악적 재능을 썩히고 싶지 않다면서, 나중엔 다 뼈가 되고 살이 될 거라고 하시면서 계속 피아노학원에 보내셨다. 그동안 내게 피아노에 대한 이미지, 학원에 대한 이미지, 무언가를 새로 배우는 것에 대한 이미지는 완전히 썩어 들어가게 된다. 나는 그렇게 피아노학원을 5살부터 14살까지 거의 10년이란 기간 동안 다녔는데, 내가 피아노학원을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다니면서 진도를 고작 체르니 40까지밖에 못 나갔다. 피아노를 오래 배웠던 사람은 잘 알겠지만, 피아노를 10년이나 배웠는데 체르니 40까지밖에 못 뗐다면, 그건 거의 무의미한 시간을 보낸 거나 마찬가지다. 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일찍부터 피아노랑 학원이랑 새로운 것을 배운다는 것에 대한 이미지가 하기 싫고 기분 나쁘고 스트레스 받고, 엄마가 시키니까 억지로 해야 되는 걸로 단단히 각인이 된 것이다.

나는 중학교에 들어가서 피아노학원을 드디어 그만두게 되는데, 그때부터 20대 후반이 될 때까지 피아노에 손도 안 댔다. 가끔 피아노 생각도 나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피아노로 옮겨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는데, 나는 이미 '나는 피아노를 못 쳐, 내가 피아노를 치면 사람들이 나를 못 친다고 비웃을 거야' 하는 두려움이, 나에게 피아노에 손도 못 대게 만들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이 되고, 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뉴에이지 음악을 피아노로 쳐보고 싶다는 열망이 끓어올랐다. 이때는 나의 피아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을 이겨낼 만큼 열망이 컸다. 그래서 내 자취방에 88키 전자피아노를 들여놓고, 혼자서 이어폰 끼고 조용히 아무도 들리지 않게 연습을 하게 된다. 그렇게 뉴에이지 음악 몇 곡을, 내가 어렸을 때 가지고 있던 ‘음악을 듣고 기억하는 능력’에 의존해서 몇 개의 뉴에이지 음악을, 악보를 보지 않고 완곡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열 곡 정도를 악보 없이 전부 외워서 치고 나니, 피아노 연주에 대한 자신감이 좀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려운 곡에도 도전을 하게 됐는데, 어렵고 빠른 곡은, 듣고 기억하는 능력에만 의존해서 칠 수가 없다는 걸 느끼게 됐다. 어려운 곡은 악보를 보고 차근차근 손에 익혀가는 과정을 거쳐야지만 잘 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때 처음으로 악보를 보는 법과 음악 이론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의 ‘음을 듣고 기억하는 능력’이랑, ‘악보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랑 합쳐지니까 진짜 금방금방 어려운 곡이 익혀지는 경험을 하게 됐다. 부모님하고,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그렇게 악보를 보고 치라고 10년동안을 닦달을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는데, 내가 직접 피아노를 재밌게 치고, 더 어려운 곡에 도전하고 싶은 열망이 나를 한 순간에 악보 공부에 열중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준 것이다. 이걸 어렸을 때 적절한 나이에 경험했다면, 나는 아마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까진 아니더라도, 적어도 음악으로 굶어죽지는 않는 그런 사람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맨날 피아노로 멜로디 옮겨 치는 놀이만 하다가 질려서, 온전한 나의 의지로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학원에 찾아갔다면, 엄청 열심히 배웠을 것이고, 피아노학원에 가는 거나 피아노를 배우는 걸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럼 나의 그 음악적인 재능을 충분히 키워낼 수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아이의 특출난 재능을 키워주고 싶다면, 그냥 아이가 좋아하고 잘하던 걸 재밌게 즐기게 해주면 된다. 자기가 재밌어서 하는 게 자기 실력을 가장 효과적으로 연마하게 할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특히나 어릴 때에는 그거 하나만 해도 상관없을 나이고, 그거만 해도 마냥 행복하다. 그렇게 아이가 마냥 행복하게 즐길 수 있게 해주고, 아이가 자라서 그걸로 진로를 정하거나 생업으로 삼고 싶어 한다면, 그때 전문가나 멘토한테 데려가면 된다. 그때 전문적인 교육을 시켜도 늦지 않다. 아니, 오히려 그 때가 가장 적절한 시기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부터 아이를 영재로 키워보겠다고, 아이가 가진 능력을 끌어올리려고 하다가 아이가 오히려 거기에 담을 쌓아버릴 수가 있다. 아이가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 건 다 때가 있다. 아이에 따라 다를 순 있지만,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시기를 추천하자면, 초등학교 4학년~5학년 정도다. 초등 고학년부터는 배움에 대한 열망도 왕성해지고, 자기가 좋아하고 즐기던 걸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난다. 그 전까지는 그냥 즐기게 해주는 게 아이의 특출난 재능을 사장시키지 않게 하는 가장 현명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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