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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선동자 May 24. 2020

아이는 과연 착하게 태어나는 걸까?

아이를 키우다보면 성악설을 믿게 된다고 하는데...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착한 존재라는 성선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악한 존재라는 성악설이 있다. 성선설에서는 사람이 태어날 때엔 착하지만 자라나면서 악을 배우기 때문에 악한 사람이 생겨난다고 여기고 있고, 성악설에서는 사람은 태어날 때 악하게 태어나지만 자라나면서 다듬어지고 배워 나가면서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하고 얘기를 한다. 과연 어느 게 맞을까?

최근에 성악설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사람의 얘기를 듣게 됐다. 그 사람은 “인간은 기본적으로 악한 면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한테 애초에 기대를 하지 않는다”라고 한다. 사람들이 악한 행동을 하면 “아 저럴 줄 알았어, 이래서 사람은 배워야 돼” 하고 강하게 주장한다고 한다. 그 사람이 성악설을 지지하는 이유에 힘을 실어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아이들이 자기보다 약하고 만만한 아이를 괴롭히는 행위, 잠자리를 잡아서 다리랑 날개를 뜯어버리는 행위, 물건을 집어던지고 부수는 행위 등을 예시로 들었다. 얘기만 들어보면 진짜 인간은 어릴 때부터 악한 면을 가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이 들 것이다. 나도 어릴 때를 생각해 보면 또래 친구들이 어릴 때 한 번쯤은 그런 행위를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나는 그 얘기 듣고서 한마디 했다.

“나는 어릴 때 안 그랬는데?”


약한 아이 괴롭히고, 물건 부수고, 곤충 다리 뜯어버리고 모든 아이가 다 그렇진 않다. 반대로, 어릴 때부터 한없이 착하고 다정하고 베푸는 모습을 보이는 아이도 있다. 마찬가지로 모든 아이들이 그렇진 않다. 아이가 진짜 착한 아이인지 알아보는 실험이 있다. 오뚝이 샌드백을 아이의 앞에 놓고 아이가 어떤 행동을 하는지 지켜보는 것이다. 어떤 아이는 샌드백을 진짜 샌드백으로 쓴다. 주먹으로 퍽퍽 때리고 발로 차고 오뚝이 샌드백이 맞아서 쓰러지는 걸 즐기고 재밌어한다. 그리고 어떤 아이는 샌드백을 쓰다듬고 안아주고 마치 역할놀이를 하듯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떤 아이는 샌드백을 죽일 듯이 물어뜯거나 도구를 가지고 찢어버리려고 하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아이는 아예 샌드백이 없는 것처럼 아무런 관심이 없는 아이도 있다. 아이가 샌드백과 같은 특정 대상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이 아이가 진짜 착한 아이인지, 아니면 보통의 아이인지, 치료가 필요한 아이인지 가늠할 수 있다고 한다. 이건 부모가 아이한테 어떻게 대하느냐, 부모가 아이한테 어떤 모습을 보여주냐에 따라 아이가 그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 것이다. 아이한테 때리고 밀고 넘어뜨리고 이렇게 몸으로 장난 많이 치는 부모님의 경우에는 아이가 샌드백한테도 그렇게 할 가능성이 높은 거고, 반대로 부모님이 아이한테 정말 한없이 따뜻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경우에는 아이가 샌드백한테도 그렇게 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물론 부모가 그렇게 안 키운다고 해도, 아이가 관계하는 다른 사람한테 배우거나, TV 스마트폰에서 나오는 행동들을 따라 해서 그렇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인간은 두 가지의 속성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인간적인 면모, 둘은 동물적인 면모다. 사람의 뇌 안에는 편도체라고 하는 작은 기관이 있다. 이게 우리 몸에서 어떤 역할을 하냐면, 위험하거나 불쾌한 상황에 처했을 때 몸에서 전투준비태세를 갖추게 한다. 이건 생명의 유지와 생존을 위해서 작동되는 가장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본능이다. 그래서 동물들이 생존의 위협을 느껴서 편도체가 자극받으면 강자로부터는 도망치거나 최후의 반격을 하고, 약자한테는 잡아먹으려고 공격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편도체가 자극받으면 엄청 화가 나고 불안하고 당황해서 감정 컨트롤을 못하게 된다. 분노조절장애가 대표적 예다.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참 신기한 게 분노를 자기보다 강한 사람한테는 분출하지 않는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약자 앞에서는 분노조절장애, 강자 앞에서는 분노조절잘해”라고 풍자하기도 한다. 근데 그게 다 이유가 있다. 생존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기보다 강한 존재한테 화냈다가는 생존이 더 어려워지니까, 약자한테 분노를 분출하는 것이다.

그렇게 편도체가 자극이 되면 사람이 인간적인 판단과 행동을 하지 못하고, 동물적인 생존본능에 이끌리게 되는 것이다. 근데 사람마다 편도체가 자주 자극이 되는 사람이 있고, 편도체가 거의 자극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 쉽게 화내고 감정동요가 심한 사람이라면 편도체가 자주 자극이 되는 것이고, 감정 기복이 별로 없고 마음의 평정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라면 편도체가 별로 자극되지 않는 사람인 것이다. 근데 이게 왜 사람마다 다르냐 하면, 기억도 안 나는 어린 시절에 겪은 경험에 따라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억이 안 나는 어린 시절에 겪었던 경험들은 대부분 무의식에 남게 되는데, 어린 시절에 불안하고 초조하고 위협적인 상황에 많이 노출된 아이라고 하면 이 아이는 진짜 별거 아닌 일에 화내고 불안해하고 속 좁은 행동을 한다. 반대로 어린 시절에 따뜻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고, 주변 사람들도 아이를 존중해주고 잘 놀아주고, 아이의 입장을 잘 헤아려주는 환경에서 자랐던 아이는, 세상에 대한 믿음과 안정감을 충분히 형성했기 때문에 상황에 크게 동요되지 않는다. 어린 시절에 사람에 대한 믿음과 세상에 대한 믿음이 충분히 갖춰졌기 때문에 아이의 마음엔 든든한 안식처가 자리 잡게 된다. 이런 아이들은 그런 마음의 안식처가 있기 때문에 마음의 여유도 넘치고, 그것 때문에 자기보다 약한 아이를 괴롭히거나, 곤충의 다리를 뜯는다거나 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아이는 누구나 선하게 태어난다. 근데 어린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 따뜻하고 사랑 가득한 가정환경에서 자랐는가? 아니면 폭력적이고 존중받지 못하는 불안한 환경에서 자랐는가에 따라 인간적인 사람, 동물적인 본능에 이끌리는 사람으로 달리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동물적인 본능에 이끌리는 사람은 약자를 괴롭히거나, 갑질을 하거나, 화가 날 때 물건을 부수거나 집어던지는, 우리가 흔히 악하다고 하는 행동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인간적인 사람은, 말을 품위있게 하고, 절제된 행동을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베푸는, 선하다고 하는 행동을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아이가 어린 시절을 어떻게 보냈느냐에 따라 선한 모습을 보일 수도, 악한 모습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성선설, 성악설은 참고사항일 뿐, 사람을 태어날 때부터 착하냐 악하냐로 규정지으려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저 아이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어린 시절을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으로 채워줘서 아이의 마음 속에 안식처를 만들어주는 게 현명한 역할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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