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상영작 리뷰
‘JIMFF 스페셜 초이스: 태극기 휘날리며 필름 콘서트’에서 〈태극기 휘날리며〉를 20년 만에 다시 봤다. 60여 명의 오케스트라, 20인의 합창단이 영화음악을 직접 연주하는 형태로 서울 컨템포러리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이 더해진 상영이었다. 지금도 중학생 때 이 영화를 처음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한데, 개봉 후 20여 년 만에 다시 본 영화가 같은 수준의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다. 한국 전쟁영화의 의심할 여지가 없는 대작, 걸작이다. 최근 방통위원장이 과거에 이 영화를 ‘우파 영화’로 분류했다는 뉴스를 봤는데, 나는 이 영화를 ‘반전 영화’로 봤다. 그러나 방통위원장의 영화 해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물론 공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 특정 영화를 정치적으로 낙인찍는 것은 큰 문제다). 영화에 여러 결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나름의 관점에서 각자의 해석이 가능한 것이야말로 대작, 걸작의 조건이다.
그러나 이번 관람에서 새로 눈에 들어온 건 두 형제의 남성성이었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에서 구두닦이로 가장 역할을 하며 동생을 대학에 보내려 하는 진태와 그런 형의 기대에 부응해 대학 입학을 앞둔 동생 진석. 가난 때문에 진석이 대학에 가려면 진태가 희생할 수밖에 없지만 진태는 진심으로 동생의 대입, 즉 사회적 신분 상승을 염원한다. 그러나 전쟁이 미묘한 긴장을 낳는다. 동생을 제대시키기 위해 전공을 세워 훈장까지 받는 진태의 남성성은 점점 상승한다. 전쟁 전의 진태는 사회 하층민이었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다르다. 그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최고의 남성 군인이다. 반면 진석은 다르다. 진석 역시 가난했지만 그에게는 촉망받는 미래가 있었다. 좋은 대학에 가 사회적으로 출세한다면 형 진태와는 다른 남성성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장에서의 진석은 그렇지 않다. 몸이 약해 늘 형의 보호를 받는 대상일 뿐이다.
요컨대 진태가 가족주의에서 멀어지고 전장에 몰입할수록 진석이 가족에 더 집착하는 이유는 전쟁이 뒤바꾼 그들의 남성성 위계 때문이다. 진태는 전장에서 남성성의 상승을, 진태는 하락을 맛본다. 진석이 전장에 몰두하는 형을 원망하며 더한층 가족에게 집착하는 데에는 전쟁 이전으로 남성성의 위계를 돌리고 싶다는, 즉 자신의 미래가 보장되는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욕망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영화는 진태를 다시 가족주의로 복귀시킴으로써 하층민 남성성의 상승을 봉쇄하고 진석의 성공으로 대변되는 기존 남성성의 위계질서로 복귀한다. 전쟁에 몰두한 진태의 모습이 종종 폭력적 광기처럼 보이는 것 역시 기존 남성성의 위계가 흔들리는 것이 ‘위협’이라는 사회의 무의식을 반영한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반전의 메시지와 ‘위협적인’ 하층민 남성성에 대한 무의식적 불안이 혼재된 흥미로운 영화다.
스트릿 B 파이터/2unbreakable
Germany/2024/90min/Documentary
각각 위구르와 불가리아 이민자 가정 출신인 비보이 세르하트와 비걸 조안나. 영화는 브레이킹이 파리 올림픽 종목으로 정식 채택된 후 국가대표팀에 합류하기 위해 노력하는 두 사람의 여정을 담는다. 먼저, 올림픽은 이들에게 이전과는 다른 존중의 수준을 안겨주었다. ‘길거리에서 추는 춤’이 아닌 ‘스포츠’로서 주변인들이 인정하고 대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여전히 춤과는 관계없는 대학에서의 학업을 이어가고 연습 환경도 그대로다. 꿈과 현실의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이들을 추동하는 건 뭘까? 이들은 그냥 브레이킹이 ‘좋다’. 여기에는 올림픽이 담보하는 명예를 초과하는 무언가가 있다.
제14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 상영된 〈킵 스텝핑〉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다. 스트리트 댄스 문화를 담은 이 영화에서도 등장인물을 추동하는 건 순수한 열정이다. 우리에게는 ‘대책 없는 낭만’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이들의 열정을 포착할 언어가 필요하다.
아바: 더 레전드/ABBA: Against the Odds
UK/2024/94min/Documentary
스웨덴 출신의 세계적 그룹 아바는 1974년 유로비전에 참석해 깜짝 우승을 거두었다. 이후 ‘맘마미아’, ‘댄싱 퀸’ 등 그들의 세대를 살지 않은 사람도 음악만 들으면 절로 흥얼거리게 되는 엄청난 히트곡을 연달아 내놓았다. 그러나 아바의 여정은 늘 순탄치 않았다. 그들의 노래는 대개 발랄하고 기분 좋은 멜로디다. 의상도 화려하고 눈에 띄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바를 ‘싸구려’ 취급했다. ‘상업적인 쓰레기’라는 평가가 아바의 음악을 내내 따라다녔다. 아바가 데뷔한 70년대가 저항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바의 음악이 시대의 조류에 무관심하다고 조소했다. 새 노래를 발표할 때마다 큰 히트를 쳤지만 이번이 끝일 거라는 조소는 끝날 줄을 몰랐다. 세계적인 스타가 됐는데도 자국에서는 무시당했고, 반항의 상징인 펑크가 등장했을 때도 위기를 맞았다. 유행에 맞춰 디스코 앨범을 내 히트했으나 디스코의 ‘가벼움’과 ‘화려함’ 그리고 이를 즐기는 퀴어들에게 화가 난 보수적 록 팬들이 디스코를 악마화해 그 희생양이 되기도 했다. 전 세계에서 사랑받았으나 팝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는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이루진 못했다.
요컨대 아바는 시대정신과 불화한 시대의 아이콘이었다. 이 기묘한 역설에 더해, 각각 부부 사이였던 네 멤버의 사랑과 불화에 따라 그룹이 출렁이기도 했다. 너무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내내 비난받았으나 바로 그 이유로 오랫동안 수많은 팬을 열광케 한 아바. 〈아바: 더 레전드〉는 그들의 음악 여정에 대한 흥미진진한 연대기다.
글리터와 둠/Glitter & Doom
USA, Mexico/2024/114min/Fiction
〈글리터와 둠〉은 상큼하고 리듬감 넘치는 화면으로 두 남자의 꿈과 사랑을 엮어낸 퀴어 청춘 뮤지컬 영화다. 영화가 선사하는 낯선 감각의 문턱을 살짝만 넘으면 내내 기분 좋은 감상이 가능하다. ‘모든 아이의 꿈은 모든 엄마의 악몽’, ‘(월세를 위해 일한다면) 영혼은 뭘로 벌어먹일 건데?’와 같은 인상적인 대사와 다양한 퀴어 신체, 무엇보다 주인공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노래가 기억에 남는다. 부잣집 도련님으로 어머니의 반대에도 서커스 공연자를 꿈꾸는 글리터와 어릴 때부터 지속되어온 가난으로 인한 수치심에 꿈이 위기를 맞는 둠이 만들어가는 케미도 마찬가지다. 풍족한 생활로 인해 즉흥적이고 밝은 글리터와 달리 둠은 자기를 오랫동안 붙잡아온 가족/가난 문제에서 쉽사리 벗어나지 못하는데, 결국 두 사람이 계급의 심연을 넘는 과정은 다른 장르의 영화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도 흥미롭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한다.
15년 후/15 Years
Germany, Austria, Luxembourg/2023/138min/Fiction
제니는 늘 화가 나 있다. 누가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한다. 원래 그랬던 건 아니다. 피아노 영재였던 그녀는 과거 연인의 아버지가 살해된 사건에서 연인 대신 누명을 쓰고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그것도 무려 15년 동안이나. 출소 후 청소 일을 하다 음대 교수가 된 옛 동료를 만난 제니는 그의 소개로 시리아 난민 피아니스트 오마르를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오디션에 출전한다(오마르는 IS에게 팔이 잘렸고, 제니는 ‘성격 장애’를 가졌다). 제니가 오디션에 참석한 이유는 하나다. 이제는 스타가 된 옛 연인 기미모어가 오디션의 진행자이기 때문. 영화는 제니, 오마르, 기미모어 세 사람 사이에서 복수, 용서, 참회, 사랑의 감정 역학을 펼쳐낸다. 아우르고 정리하는 후반부가 제니가 폭주하는 전반부의 긴장을 이어가지 못한다는 점은 아쉽다. 그러나 이는 후반부의 만듦새가 부족해서라기보다는 전반부의 몰입감이 너무 뛰어나기 때문일 터다. ‘안 웃는 사람’이자 ‘미치광이’인 제니가 엄청나게 강렬한 기운을 뿜어내는 영화 전반부의 대단한 흡인력은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사라진 목소리/Any Other Way: the Jackie Shane Story
Canada/2024/99min/Documentary
1950년대 후반에 데뷔해 60년대의 떠오르는 R&B 스타였던 재키 셰인은 어느 날 갑자기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갱단에 납치당했다느니 죽었다느니 온갖 소문만 무성했다. 그리고 50여 년 후, 재키 셰인은 그래미상 후보에 오른다. 이 아티스트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영화는 몇 가지 방법을 활용해 재키 셰인의 삶을 복원한다. 먼저 이모의 존재조차 모르던 조카들이 있다. 여기에 주변인 회고와 본인이 죽기 전 기자들에게 전화로 남긴 음성이 더해진다. 이들로 채워지지 않는 삶의 공백은 애니메이션으로 채운다.
미국의 시골 내슈빌에서 태어난 재키 셰인은 캐나다로 건너가 음악적 성공을 거두었고 한창 잘나가던 무렵 스스로 그만뒀다. MTF 트랜스젠더라는 그녀의 정체성이 주요한 동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재키 셰인은 무대 위에서 자신을 드러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오히려 은유적 가사로 자신을 적극적으로 표현해 사랑받았지만 어쨌든 당시는 흑인 트랜스젠더가 살기에 그리 좋은 시대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재키 셰인은 마거릿 앤 테일러로 개명한 후 한 남성과 동거했고, 가요계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그와 헤어진 후에는 고향으로 돌아왔다. 영화는 두 사람이 결별한 이유가 재키의 성전환으로 게이였던 파트너가 자신의 성적 지향에 혼란을 느꼈기 때문일 거라 암시한다.
그러나 내슈빌은 재키/마거릿이 거주하기에 좋은 곳이 아니었다. 꼬여버린 가족사 역시 그녀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한 젊은 음반 제작자가 그녀를 다시 찾아올 때까지 40여 년간의 은둔 생활이 시작되었다. 영화는 이 40여 년의 시간 동안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제대로 말해주지 않는다. 말하지 못한다는 게 더 적확할 것이다. 몇몇 친구를 빼고는 아무도 그녀의 존재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침내 복귀를 결심한 그녀는 공연을 얼마 앞두고 사망한다. 지독하게 얄궂은 운명이다.
영화는 재키 셰인의 삶을 복원하는 동시에 상상하게끔 한다. 인생의 짧은 황금기와 그 이후의 오랜 은둔 기간 사이의 대비를 어떻게 살아냈을지를 말이다. 재키 셰인은 자신이 그래미를 수상하면 똘똘한 트랜스젠더 청소년이 무대에 올라 소감을 말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한다. 이미 자신의 시대는 지나갔다는 씁쓸함과 다가올 시대에 자신이 기여할 수 있다는 데 대한 기대가 동시에 묻어나는 당부다. 그녀의 때로는 격정적인, 때로는 서정적인 음악을 다시 들으며 우리는 이 양가성의 가운데에서 그녀가 살아낸 시간을 가만히 응시하며 상상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할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 초청으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참석 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