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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wr Oct 09. 2024

충격적인 강렬함으로 광증과 윤리를 잇다

영화 〈레드 룸스〉

8★/10★


*스포일러를 포함한 글입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의 한 재판장. 배심원단과 판사가 차례로 입장한다. 경륜이 있어 보이는 흰머리의 판사는 배심원단에게 분명하게 경고한다. 재판에서 증거로 상영될 영상의 잔혹성이 상당하다는 점을 이미 수차례 강조했지만, 이를 다시 한번 강조할 필요가 있으며 불편한 사람은 말해달라는 당부다. 피고는 슈발리에. 그는 세 명의 소녀를 잔인하게 살해한 장면을 촬영한 스너프 필름을 다크웹에 유통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세 명 중 두 명의 소녀가 살해된 영상은 증거로 확보된 상태다. 검사는 영상 속 살인자가 슈발리에라는 개연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하고, 변호인은 영상 속 복면을 쓴 남자가 슈발리에라고 확정할 수 없다고 맞선다.     



  그러나 〈레드 룸스〉는 법정 영화가 아니다. 재판의 개요와 논점을 제시한 카메라는 곧바로 방향을 틀어 방청석에 앉은 두 여자를 향한다. 켈리앤과 클레망틴이다. 두 사람은 방청석에 앉기 위해 재판 전날 법원 앞에서 잠을 잘 정도로 이 재판에 관심이 많다. 그러나 동기는 다르다. 클레망틴은 슈발리에가 무죄라고 확신한다. 사람들이 그를 여론재판하고 있다고 믿는다. ‘무죄’인 그를 사랑하는 듯도 보인다.     


  한편 켈리앤이 재판에 참석한 동기는 명확하지 않다. 모델 겸 해커인 그녀는 이미 다크웹을 통해 재판의 증거인 두 편의 스너프 필름을 확보한 상태다. 재판정에서 만난 켈리앤과 클레망틴이 안면을 트고 가까워지는 동안 재판에 참석하는 켈리앤의 동기에 대한 미스터리는 점점 커져만 간다. 영화가 켈리앤의 정체에 관한 수수께끼의 무게감을 쌓아 올리는 과정의 긴장감이 대단하다. 특히 켈리앤의 여러 이해할 수 없는 행동 중에서도 정점인 장면, 즉 그녀가 자신을 희생자처럼 꾸미고 슈발리에와 인사를 나누다 제지받고 끌려 나가는 장면의 강렬함이 압권이다. 이 장면이 뿜어내는 미스터리의 힘은 온몸을 찌르는 듯 섬뜩한 사운드트랙과 어우러져 슈발리에와 켈리앤의 정체와 관계에 대한 모든 추론과 해석을 중단시킬 정도로 격렬하다.     



  관객을 절대적 미스터리의 미로로 몰아넣는 켈리앤의 비밀은 영화가 끝날 때쯤에야 드러난다. 그녀가 지난한 재판을 한 번에 뒤집을 마지막 희생자 살해 영상을 다크웹에서 경매로 구입한 후 이를 익명으로 제보했다는 것이 뉴스 화면을 통해 보도된다. 슈발리에의 얼굴이 논쟁의 여지 없이 분명하게 찍힌 영상이었다. 재판정에서의 기행으로 모델 일자리까지 잃은 그녀가 진범을 밝힌 익명의 영웅이었음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러한 결말이 ‘반전’처럼 보이는 이유는 영화가 내내 켈리앤을 께름칙한 인물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클레망틴의 집착이 왜곡된 애정 때문이었다고 분명하게 제시되는 것과 대조적이다.     



  의문이 든다. 켈리앤은 왜 피해자 소녀 분장을 해 유족에게 상처를 주고 재판을 방해했을까? 슈발리에 앞에서 죽은 소녀의 모습으로 나타남으로써 그에게 반성과 자백을 촉구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슈발리에는 되레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켈리앤에게 손을 흔든다. 그가 내내 보였던 무기력하고 따분한 모습과는 정반대다. 그에게는 갱생의 여지가 없다. 다른 한편, 켈리앤은 희생자 ‘되기’를 통해 길 잃은 재판에서 자기 자신의 중심을 잡고자 시도한 것일 수도 있다. 슈발리에 변호사의 논거는 설득력이 있고, 다크웹은 공고하며, 수사 기관은 켈리앤과 같은 집요함이 없다. 이대로라면 재판은 슈발리에의 승리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오롯이 혼자서 이 모든 걸 뒤집어야 하는 켈리앤은 재판정에서의 분장으로 희생자가 ‘되는’ 그녀만의 의식을 치른다. 이제 켈리앤은 이 사건에 분노하는 시민이자 희생자 그 자신이다. 이것으로 슈발리에를 처벌하는 데 따르는 위험을 감수할 다짐이 다시 한번 확고해진다. 충격적일 정도로 인상적인 법정 조우 장면에는 이런 의지가 담겼다. 공포에 잠식당하지 않는 분노와 용기의 기괴한 표출 말이다. 이 장면이 관객을 붙잡고 뒤흔든다면, 광증에 가까운 켈리앤의 윤리도 그러할 것이다.          



*영화 매체 〈씨네랩〉에 초청받은 시사회에 참석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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