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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판 위에 드러눕기, 퀴어의 애도

연극 〈납골당 드라이브〉

by rew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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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로 널브러진 원고와 책. 작가 지망생 형식이 캐리어 속에 쌓아놓은 짐 더미가 바닥으로 쏟아져 있다. 이제는 주인 없는 물건들이다. 그가 세상을 떠났으니까. 정돈되지 않은 채 바닥에 널려 있는 죽은 사람의 물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챙길지, 챙긴다면 분류는 어떻게 해야 하고 어디에 보관해야 할지. 아니, 도대체 이토록 엉망진창으로 흩어진 것들을 정리하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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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물건들은 죽은 사람이 산 사람에게 남긴 흔적이다. 극의 마지막, 게이인 민석과 레즈비언인 현영은 정리 불가능한 형태로 쏟아진 짐을 발밑에 두고 격정적으로 감정을 토로하며 다툰다. 두 사람은 모두 예기치 못한 죽음으로 애인을 떠나보냈고, 3년간 동거하며 서로의 상실감을 달래주었다. 서로 의지하며 슬픔을 함께 견딘 두 사람이 폭발한 건 현영이 죽은 애인 민주를 닮은 누군가를 집에 데려오면서다. 민석은 죽은 애인과 닮은 사람을 새로 만나기 시작한 현영을 이해할 수 없고, 현영은 평생 죽은 애인만 그리워하며 아무도 만나지 않을 것처럼 구는 민석이 답답하기만 하다.


상실과 애도는 모두의 것이어서 퀴어의 것이기도 하다. 아니, 모두의 것이지만 퀴어의 것이기도 하다. 퀴어의 상실과 애도에는 특수성이 있다. 퀴어와 퀴어의 욕망은 존재 자체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부정당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사랑하는 누군가가 떠났을 때 이들이 마주하는 상황은 복잡해진다. 이미 존재를 부정당한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한 자를 위한 이중의 애도가 필요하기도 하고, 제대로 애도하고 추모하기 위해서는 먼저 존재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존재 증명과 애도라는 모순되는 요구를 동시에 수행해야 할 때도 있다. 죽은 자가 남긴 흔적 위에서 벌어지는 현영과 민석의 격정적인 다툼은 이 정리되지 않는, 정리되지 못할 애도의 책무를 함께 짊어진 자들이 마주한 혼란을 적확하게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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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은 민주를 학창 시절 연극부에서 만났다. 이후 현영은 영화 촬영 감독이 되었고, 민주는 배우가 되었다. 꿈을 향해 달리는 두 사람의 여정은 민주가 이성애 남성 영화감독의 더러운 욕망을 마주하면서 어그러지기 시작한다. 민주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어떻게든 배우로 성공하고 싶고, 현영은 그런 민주에게 거리감을 느낀다. 결국 민주는 자살한다. 현영은 그 상황에서 자신이 어떻게 했어야 할지를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한편 스튜어드와 손님으로 만난 민석과 형식은 또 한 번 우연히 재회해 연인이 된다. 형식은 게이 주인공이 등장하는 죽음에 관한 SF 소설을 써서 등단을 노리는데 심사위원들은 ‘당사자성’이 부족하다, 퀴어 ‘유행’에 묻어간다며 그의 작품을 폄하하고 배제한다. 형식이 사고로 세상을 떠난 후, 민석은 목사 아버지의 규범적 요구를 상대하며 게이인 자신의 존재 투쟁과 형식의 애도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간다.


그러니까 현영과 민석은 여자라서, 퀴어라서, 보수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가족이라서 자꾸만 자기 존재를 갉아 먹히는 현실에서 민주와 형식을 만났고, 그 안에서 구원을 찾았다. 그러나 연인의 죽음으로 어렵게 다가온 구원을 빼앗겼다. 여자라서, 퀴어라서, 보수적인 사회를 살아가는 누군가의 가족이라서 애도하는 것조차 쉽지만은 않다. 두 연인이 함께 데이트를 가던 드라이브는 죽은 연인을 보러 가는 납골당 드라이브로 바뀌었고, 두 사람의 현재는 미래로 나아가지 못한 채 아름다운 과거에 붙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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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이 깊은 속 얘기를 꺼내며 대화를 주고받을 때, 라디오에서는 누군가의 죽음이 남기는 트라우마에 관한 대담이 흘러나오는 중이다. 현영과 민석의 대화는 라디오 방송 대사와 포개진다. 두 사람의 서사가 이미 존재하는 무수한 죽음과 애도의 연장에 선다. 퀴어의 ‘특수한’ 애도가 라디오 방송에서 다루는 ‘보편적’ 애도와 접속한다. 두 사람이 과거의 감옥에서 나와야 할 때가 무르익는다.


형식이 남긴 난장판 위에서 한참을 다툰 현영과 민석은 체념한 듯 그 위에 함께 눕는다. 이들은 이제 서로의 추모 방식이 반드시 같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안다. 동거하면서 서로 다른 생활 습관을 조율하며 살았듯,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추모의 방식 역시 존중하며 살아갈 것이다. 죽은 사람이 남긴 흔적은 등단하지 못한 소설가 형식의 물건, 민주를 닮은 현영의 새 애인처럼 현영과 민석에게 오래도록 이어질 것이다. 이 흔적을 말끔히 정리하는 방법 따윈 없다. 그저 정돈되지 않은 혼란 위에 발 디디고 서서 조금씩 느리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 형식의 원고와 책 위에 현영과 민석이 누운 장면은 소수자의 애도, 나아가 모두의 애도가 어떤 모습이어야 할지에 관한 인상적인 장면으로 오래도록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


-극단 고래에서 제공받은 티켓으로 연극을 관람한 후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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