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길 잃은 대만의 혼란과 낭만

영화 〈마작〉

by rewr
common.jpeg


‘모두가 뭘 하고 싶어 하는지 모른다. 그래서 속이고 조종하기 쉽다.’ 네 명의 남성 청년이 꾸린 조그만 갱단의 리더 홍어는 정말로 이렇게 믿는다. 그러나 남들을 속이고 등쳐먹기 위한 홍어의 원칙은 자기 자신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1990년대 대만. 엄청난 돈이 모여서 엄청난 속도로 성장 중인데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 홍어가 능숙하게 사기를 치고 돈을 벌 수 있는 건 그가 사기당하는 사람과 똑같은 멘탈리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1.jpeg


무리의 작업 방식은 이렇다. 홍어가 수완을 발휘해 적당한 타깃을 모색하면, 소부처가 풍수에 능란한 척 입을 턴다. 홍콩은 미남계를 활용해 상대의 정신을 빼놓고, 룬룬은 소부처의 엉뚱한 예언이 실현되도록 일을 꾸미고 필요한 경우 통역을 맡는다. 이렇게 이들은 돈 많은 사람들을 뜯어먹고 마음에 드는 여자를 ‘공유’한다.

그러나 뭘 원하는지 모르는 네 청년의 비행은 처참하게 마무리된다. 홍어는 파산한 아버지가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발견한 후 공허해졌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 새로운 사업 소재를 찾았냐며 조롱할 뿐이다. 그러나 아버지가 자살한 후 자기 안에 존재해오던 공허와 공포를 마주한다. 자신 역시 원하는 게 없는 빈껍데기일 뿐이라는 끔찍한 사실에 직면한 것이다. 이후 홍어는 폭주한다. 잘나가는 줄만 알았던 아버지의 친구가 빚더미가 있단 사실을 알고 난 그는 그를 총으로 쏘며 소리친다. “우리를 태어나게 했으면 책임져야지. 왜 당신들처럼 사기꾼으로 살게 해!” 홍어의 분노는 물질적 풍요 속 길 잃은 청년의 혼란을 대변한다.


2.jpeg


홍콩도 마찬가지다. 그가 홍어와 함께 작업에 공을 들이던 어느 부유한 중년 여성과 함께 있던 홍콩은 갑자기 오열하듯 엉엉 운다. 그리고 높은 빌딩과 저개발 지역을 함께 담은 도시의 전경이 이어진다. 두 공간의 경계는 분명해 보인다. 홍콩은 높은 빌딩의 세계로 들어가려는 꿈이 어쩌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 혹은 그곳으로 가는 길을 잃어버렸다는 낭패감에 울부짖는다.


소부처는 리더인 홍어가 떠난 자리를 자신이 새로 채우려 하지만 ‘키스하면 부정 탄다’는 미신을 신봉하는 정도의 남자가 무언가 제대로 된 일을 꾸리기는 요원해 보인다. 그리고 룬룬. 룬룬은 무리 중 유일하게 사기를 치면서도 종종 괴로워하는 인물이다. 홍어가 대만에서 번듯한 사업가로 행세하는 백인 남자친구를 찾으러 왔다가 버림받은 프랑스 여성 마르트를 또 다른 백인 여성 포주에게 팔아넘기려 할 때, 룬룬은 그 일에 동참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고 몰래 마르트에게 거처를 제공한다. 그리고 한바탕 소동이 지난 후, 시장에서 만난 룬룬과 마르트는 키스한다. 애인을 찾겠다는 다짐만으로 비행기를 탄 어린 소녀 마르트와 그런 그녀를 매춘에 넘길 수는 없다는 남성적 자아를 가진 룬룬. 두 사람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길을 잃은 대만 사회의 희망으로 제시되는 셈이다.


3.jpeg


허망할 정도로 순진하고 낭만적인 결론이다. 그래서인지 이따위 소박한 낭만으로 길 잃은 대만이 구원받을 수는 없을 거라는 비감이 샘솟고, 그로 인해 역설적으로 영화가 포착한 혼란이 또 한 번 빛난다. 허우 샤오시엔이 그려낸 것과는 또 다른 대만을 이 영화에서 봤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