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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선여인 Feb 28. 2024

당선자의 품격, 낙선자의 위신

당선과 낙선은 원뿌리였다

  바야흐로 봄이다. 대지의 기운이 꿈틀거리는 봄이다. 꽃 소식은 저만치 서 있는데 선거 소식이 먼저 우리 곁으로 바짝 다가왔다. 나라 안팎이 온통 떠들썩하다.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된 뉴스가 연일 쏟아지며 전국이 너울을 탄 듯 출렁인다. 바다 너머에서도 대통령 선거를 앞둔 후보자 간에 희비가 엇갈리면서 전 세계의 눈이 미국을 향해 있다. 개학과 더불어 대부분 학교에서도 학급 임원과 전교 임원 선거를 앞두고 있다. 이런 와중에 얼마 전 내가 속한 모임에서도 회장을 선출하는 일이 있었다.


문인협회 새내기 회원으로서 선거에 참여하는 것은 처음이라 공연히 설렜다. 문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덕담하는 모습이 낯설기는 했어도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퇴임하는 회장은 화합하고 협동하여 멋진 협회를 만들어 달라는 인사를 했다. 사리사욕을 내 세우지 말고 의무와 책임을 다하자고 못을 박으며 지난날의 불화를 꼬집었다. 아마 내부에서 갈등과 마찰이 있었던 듯싶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어디나 흔히 볼 수 있는 불협화음에 굳이 색안경을 쓰고 볼 것까지야,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리사욕을 앞세우거나 이러쿵저러쿵 뒤에서 불만을 표시하지 말고, 문인이면 문인답게 서로 배려하면서 격려해주자는 말이 귓전을 때렸다. 새로 탄생하는 회장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다면 단단한 덩어리가 되겠지 하는 기대감이 슬쩍 고개를 내밀었다.


후보자는 팔순을 바라보는 분과 환갑을 갓 넘긴 분으로 단 두 명이다. 첫 번째 후보자는 자신의 경력을 서두에 간단히 피력하고 공약을 중점적으로 발표했다. 소모임을 활성화하고 원고에 대한 고료를 지급할 것과 출판상을 제정하여 매년 문학인을 배출하겠다고 강조했다. 또박또박한 발음과 우렁찬 목소리에서 나오는 강단은 나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어느새 공약 사항이 내 머릿속으로 들어와 쏙쏙 박혀버리고 말았다.


두 번째 후보자는 ‘행복하게 사는 게 나의 인생 철학이다’라는 말로 서두를 꺼내며 회원들도 행복하게 글을 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행복하게 해 준다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귀가 솔깃했으나 앞의 후보자와는 달리 구체적인 공약 사항은 제시하지 않았다. 대신 전체 카톡방에 올려놨으니 읽어보라는 말로 끝을 맺어 알맹이가 빠진 느낌이었다. 주어진 5분의 시간은 이미 박혀버린 첫 번째 공약을 뽑아버리기에는 턱없이 힘겨워 보였다.


참석자 명부에 직접 이름과 사인을 하고 선거위원의 날인이 찍힌 투표용지를 받아들었다. 비밀 투표 장소에서 동그라미표로 지지자를 표시하고 용지를 두 번 접어 투표함에 넣었다. 어떠한 부정도 개입할 수 없도록 철저하고 꼼꼼하게 준비된 투표 방식이 놀라웠다. 두 명의 감사 중 한 분은 호명하고, 다른 분은 칠판에 ‘바를 정자’를 적으면서 개표를 진행했다. 마지막까지 박빙으로 엎치락뒤치락하다가 결국 26대 24로 1번이 당선되었다. 뚜렷한 공약과 자신감이라는 무기 앞에서 나이는 한낱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나는 슬그머니 곁눈질했다. 낙선자는 웃을지 말지 어정쩡한 표정으로 귀퉁이에 앉아 있었다. 위로의 말을 건넨다거나 그동안의 수고를 치사해 주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분위기상으로도 낙선자를 챙길 만한 여유가 없었지만 민망함은 나만의 몫이 되었다. 출마를 결심하는 순간부터 오로지 당선이 목표였을 텐데 낙선이라니. 그 기분이 얼마나 허탈하겠는가. 


나는 신임 회장이 인사말을 하는 중에 혹시 낙선자를 앞으로 불러내지나 않을까 귀를 기울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당선자의 품격은 더욱 살아나고, 낙선자 위신도 함께 살아날 테니 말이다. 협회를 아끼는 마음으로 출마해 선의의 경쟁을 벌일 때만 해도 양쪽의 당선 가능성은 같은 무게였다. ‘당선’이라는 목표를 거머쥔 사람은 축하 인사를 받으나 마나 이미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일 것이다. 세상을 다 잃은 듯 실의에 빠진 낙선자에게 눈을 돌려 그동안의 노고를 치사해 준다면 얼마나 따스한 기운이 감돌겠는가. 또 절반으로 나뉜 지지자들을 한 덩어리로 결속시키는데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길이 된다. 


지나간 교직 생활을 되돌아본다. 40여 년간 매년 수많은 임원 선거를 치러봤다. 나는 과연 떨어진 아이를 앞으로 불러내 공식적으로 소감 발표할 기회를 준 적이 있는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의 말을 건네며 다음에 잘해보자고 격려했으나 차원이 다른 문제이다. 당선된 아이한테 맞췄던 초점을 낙선된 아이한테도 공평하게 나눠줬어야 했다. 기가 죽어 축 처진 마음을 다치지 않게 아이의 위신을 세워주는 일에 소홀했던 게 후회된다. 학교라는 작은 우물 안에만 있다가 넓은 사회로 나오니 그곳에서는 미처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매년 임원 선거에서 ‘사이좋은 반을 만들겠다, 발이 닳도록 친구를 돕겠다, 더 좋은 학교로 만들겠다.’라는 공약을 내 걸었다. 다분히 어린이다움이 묻어나는 교실 정견 발표, 앞으로 다시는 볼 수 없는 선거 유세 장면이다. 이번 봄에는 당선된 아이와 낙선된 아이가 두 손을 맞잡고 함께 다짐하는 소리가 교실마다 울려 퍼졌으면 한다. 

"우리는 즐겁고 신나는 교실을 위해 서로 힘을 모아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아울러 2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당선자가 낙선자를 연단으로 불러내어 소감 발표 기회를 공유했으면 좋겠다. 낙선자의 위신을 살려주는 길이 당선자의 품격을 살리는 길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이다. 어깨동무한 두 사람이 유세할 때보다 더 큰 열정으로 다짐하는 소리가 전국 방방곡곡에서 들려오기를 기대해 본다. 

"저희는 국민의 뜻에 따라 모두가 잘사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합심할 것을 굳게 약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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