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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영 Mar 31. 2022

'조금만 쉴까?'라고 생각한 순간 사라진 내 3시간

디자인과 심리학 : 19. 트리거

트리거(Trigger) : 특정 생각이나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외부적 또는 내부적 요인


지금은 아침 7시, 결국 또 알람 소리가 울린다. 그 순간부터 내 머릿속엔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다니기 시작한다.


'30분만 더 잘까?'
'30분 늦게 일어나면 이따가 서둘러 준비해야 될지도 모르잖아...'
'입을 옷 어제 정해 놨으니까 상관없지 않을까!'
'그러다 늦으면? 그건 감당 못 할 것 같은데...'
...


그렇게 미적거리다가도 결국엔 일어난다. 자, 이 상황에서 나를 일어나게 만든 요인은 뭘까? 시끄럽게 울린 알람 소리?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 아니면 감정적 요인 때문일까?


마라톤 경기를 잠시 떠올려보자. 출발선에 대기하고 있는 선수들은 총소리가 탕! 하고 울리면 달려 나가기 시작한다. 나는 알람 소리가 울려서 눈을 떴다. 여기서 이 총소리와 알람 소리가 바로, 외부 트리거(External Trigger)이다.


하지만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고 끝이 아니다. 결승 지점을 통과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니까. 기나긴 레이스의 마침표를 찍을 것인지, 중도에 그만둘 것인지, 그 동기는 내부에서 일어난다.


마찬가지로 바로 이부자리에서 일어날 것인지, 알람을 끄고 더 잘 것인지, 그 동기 또한 내부에서 일어난다. 실제로 목표를 달성하게 해주는 동기 또는 욕구가 바로, 내부 트리거(Internal Trigger)이다.


트리거라는 게 무엇인지, 어느 정도 감이 잡히셨을 거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 트리거라는 건, 어떻게 디자인되고 있을까?




기업이 트리거를 디자인하는 방식


키오스크로 햄버거 세트를 주문하려고 했더니, '600원만 더 내면 사이즈업을 할 수 있어요'라는 문구가 적힌 팝업이 뜬다. 시간을 보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더니, 배너에 뜬 카카오톡 알림을 발견한다. 기업은 이렇게 외부 트리거를 일으켜, 매출을 올리거나 서비스 이용 시간을 늘리려는 시도를 한다.


하지만 이런 외부 트리거들이 항상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지금 당장 배가 너무 고프지 않다면, 사이즈업을 제안하는 팝업 창을 곧바로 닫아버릴 수 있다. 또한 광고 메시지거나 중요하지 않은 메시지라면, 굳이 카카오톡에 들어가서 확인하지 않고 알림 창을 곧바로 닫아버릴 수 있다.


이렇듯 외부 트리거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내부 트리거(욕구 또는 동기)가 먼저 작동되어야 한다.


'어차피 내부 트리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면, 왜 그토록 끊임없이 외부 트리거를 일으키려 하는 걸까?'


그 이유는 예시를 통해 알아보자. 여기 A라는 사람이 있다. A는 필요할 때 유튜브를 종종 이용하지만, 평소엔 잘 이용하지 않는다. 유튜브는 오늘도 어김없이 A가 좋아할 만한 영상을 추천하는 알림(외부 트리거)을 보낸다. 또는 구독 중인 유튜버의 새 영상이 업로드되었다는 알림을 보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A가 평소에 관심있어하던(내부 트리거) 주제의 영상이 알림에 떴다. A는 알림을 클릭했고, 추천 영상을 끝까지 시청했다. A는 덕분에 유익한 정보를 얻게 되었으며, 그와 비슷한 영상들을 제작하는 새로운 유튜버 또한 알게 되었다.


A는 쉽게 그 보상을 얻을 수 있었고, 나중에 또 다른 보상을 얻을 수 있을 거란 기대감도 생겼다. 그것뿐일까. 해당 유튜버의 영상들을 쓱 훑어보며, 괜찮다 싶은 영상들을 '나중에 볼 동영상 목록'에 저장도 했다.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유튜브에 들어가 적절한 보상을 얻는 행위는 A의 습관이 된다. 그때부터 알림은 거의 필요가 없다. '조금만 쉴까?'란 생각은 '어떻게 이 휴식 시간을 재밌게 잘 보내지?'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그 생각은 곧 내부 트리거를 일으켜 유튜브에 들어가게 만든다.


이렇듯 기업은 사람들의 습관을 만들어내거나 욕구를 일으키는 방향으로 트리거를 디자인한다.(이 주제에 대해 더 관심이 있으시다면, 행동 디자인 전문가 Nir Eyal의 <The Hook Model: How to Manufacture Desire in 4 Steps>를 읽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습관을 만들긴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많이 소비하고  오래 이용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유튜브는  3시간을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삭제시켜버릴  있었던 걸까?


유튜브 내부에선 또 다른 트리거들이 작동한다. 내가 본 영상과 관련있는 또 다른 추천 영상, 눈길을 끄는 썸네일과 제목의 영상, 끝없이 이어지는 쇼츠 영상 등이 바로 그것이다.


마음에 드는 영상이 없어도 괜찮다. 우린 '새로고침'이라는 이름의 룰렛을 당기기만 하면 된다. 더 큰 보상이 나올 때 까지, 잭팟이 뜰 때까지 무제한으로 돌릴 수 있는 룰렛, 이걸 어떻게 참을 수 있을까. 그렇게 시간은 하염 없이 흘러간다.




++스마트폰 중독, 인스타 중독, 유튜브 중독... 참 다양한 중독이 있다. 이러한 중독들은, 인간이 욕구를 좇아 나아가는 방식과 행동 양상을 분석해 만들어진 '멘탈 모델'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리 기업이 이러한 모델을 도입해 더 큰 이윤을 창출하는 것을 마냥 잘못되었다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윤리적 문제에 대한 원성의 목소리는 끊이질 않는다. (IT기업의 윤리적 문제에 대한 얘길 담고있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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