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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망고 Feb 29. 2024

전공의

지하사람

살다 보니 장관님, 차관님, 경찰청장님에 이어 검찰총장님, 높으신 분들의 입에서 ‘전공의’라는 단어를 듣게 되는 날이 온다. 지금처럼 전공의의 가치를 세상이 알아준 적이 있었던가? 역시 없어져 봐야 소중한 줄 안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인가 보다. 


높으신 분들의 동일한 메시지는 ‘돌아와라’이다. 그런데 이쯤 되니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나만 그런 걸까? 떠나간 가족 연인, 뒤돌아보지 않는 그대들의 뒷모습을 향해 제발 돌아와 다오… 하며 부르는 애타는 외침 같다. 차관님은 29일 4시에 전공의들에게 대화하자 모여달라고 했다. ‘허심탄회’라는 꼰대스러운 수식어까지 사용한 것을 보면 복잡다단한 감정을 견디고 있는 그분의 속이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리고 회동 후에 참석자 수를 물으니 복지부에서 ‘1명 이상은 왔다’라고 대답했다. 너무너무 부끄러울 것 같다. 따님께서 외국에 유학 가 있다고 했는데 따님은 주로 사모님께 전화를 한다는 데에 소중한 외과학 교과서를 건다. 그런데 장관님 차관님은 그렇다 치고 경찰 총장님이나 검찰 총장님은 전공의가 무엇인지나 알고 발표를 한 것일까? 아는 것과 이해하는 것은 다른데 전공의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전공의는 딱 4년 동안만 존재했다가 사라진다. 전공의를 졸업해서 전문의가 된 뒤 몇 년 지나면 전공의는 ‘요즘 애들’이 되어 밥 먹을 때 반찬 삼을 '라테'일뿐이다. 인턴들에게 전공의가 된다는 것은 세상을 등지고 동굴에 들어가는 그런 것이다. 추억의 한 조각, 그저 지나가는 시간, 세상에서 사라진 존재. 그들은 오직 병원 한구석에 박혀 있기 때문에 목격되지 않고 세상 밖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전공의가 아니기에 사회에 ‘전공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게 전공의는 의사들 중에서도 특이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존재들이다. 


전공의들끼리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노예라고 부른다. 하라면 해야 하고 가라면 가야 하고 오라면 와야 되고 병원 밑바닥에서 가장 허드렛일을 한다. 우스갯소리로 병원의 화분보다 못한 존재라고 하기도 한다 (물론 인턴은 그 화분 잎사귀 위에 내려앉은 먼지와 같은 존재 취급을 받는다). 모 대형 병원의 인류사에 더 없을 업적을 세우신 분이 ‘재워주고 먹여주면 됐지’ 머를 더 해줘야 하나?라고 말씀하신다. ‘아, 감사해야지. 내가 버릇없게’라는 생각이 들면서 번뜩 ‘그게 노예 아냐?’ 싶다. 봉건사회가 몰락하고 프랑스혁명을 거치면서 인류가 피로 쟁취한 것이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는 ‘자유’가 아닌가? 전공의는 그저 먹여주고 재워주면 일을 시킬 수 있는 노예이다. ‘진짜 노예는 맞았잖아요’라고 누군가 날카롭게 지적한다면 귓속말로 아주 조금 옛날에는 맞기도 했다고 서늘하게 속삭여주고 싶다. 대형 병원은 전공의들이 맞물려 돌아가는 거대한 기계이다. 


그런데 또 특이한 것은 전공의들은 자진해서 노예가 된 사람들이다. 원래 자유인이었고 사실 마음만 먹으면 자유인이 될 수 있다. 병원에서는 탈출하는 전공의들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용기를 보고 감탄을 한다. 전공의들이 바라보는 빛은 단 하나, 4년 뒤이다. 4년 뒤의 신분상승이 그들이 꿈꾸는 것이다. 맞으면 맞고 욕을 하면 참는다. 온갖 천대와 멸시를 견디며 ‘존버’를 가슴속에 새기면서 전공의는 4년 뒤를 바라보고 고독히 자신과의 싸움을 해나가는 지하의 인간들이다. 


장관님, 차관님, 경찰청장님, 검찰총장님, 심지어 대통령까지 그들은 모두 지상의 높으신 분들일 뿐이다. 지하 사람들의 마음에 닿지 않는다. 병원으로 돌아가서 일하라고 하면 ‘너네가 뭔데?’라는 생각이 든다. 병원장님이 들어오라고 해서 들어갈까? 병원에서 일하면서 병원장님 얼굴은 고사하고 이름도 몰랐다. 갑자기 병원장님이 들어오라고 하면 ‘누구세요?’라는 마음이 먼저 들 것이다. 교수님? 음… 직장 상사랑 사이가 좋은 직장인이 몇이나 될까?


지금 상황은 주인이 집 나간 종보고 돌아와 달라고 하는 모양새이다. 자유인에게 다시 종이 되라고 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인 것이다. 잘 달래지는 못할 망정…. 그들 중 대부분은 ‘종’의 신분이 필요하지 않다. 그냥 욕심을 조금 버리면 된다. 그 신분이 꼭 필요한 사람들은 교수가 반드시 되어야 하는 소수의 필수과 인원들일 것이다. 


그 필수과 1, 2년 차 후배 전공의들에게는 말해주고 싶다. 필수과라서 알고 동기들 일하는 거 봐서 아는데 지금이 정부가 세상이 여러분들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다. 그냥 거기서 그만두고 편한 거 찾아가라. 


*공감 안 되신 분들께는 죄송하다. 그냥 돌아가는 상황이 답답하고 희한해서 나도 모르게 씁쓸한 웃음이 나와 써보았다. 물론 라떼에 비하면 전공의 처우도 많이 개선되었다. 그런데 그만큼 전임의들이 힘들어졌다. "지금도 병원에서 환자분들을 위해 애쓰시는 전임의 분들/동기님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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