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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망고 Feb 27. 2024

고개 숙인 의사

우울한 날의 연속이다. 요즘 하늘만큼이나 마음이 어둡다. 점심시간에 말 수가 줄고 웃는 낯이 사라졌다. 정다웠던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돌리고 손가락질하는 것 같아 모임에도 나가기 쉽지 않다. 


정부의 언어는 일관성이 있다. 원칙, 고발, 처벌, 명령, 타협/협상 불가의 반복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의사들과 협상하지 않을 것이고 이것은 원칙이라 물러설 수 없다고 몰아세운다. 장관과 차관은 환자와 의사를, 간호사와 의사를, 약사와 의사를, 그리고 국민과 의사의 관계를 찢었다. 어느 순간 한국 의료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은 없어지고 대결과 2000이라는 공허한 숫자만이 남았다. 정부는 이렇게 의료를 바로 세우겠다고 한다.  


병원에서 수련받으며 배운 의료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환자의 병을 치료한다.’는 공통의 목표를 가지고 환자는 의사와 협력하고 간호사는 의사의 손을 잡았으며 약사는 의사에게 조언을 하고 의사는 귀를 기울였다. 치료의 의학적 원칙, 병원과 과의 원칙이 있었지만 환자와 의사의 관계 안에서 유연하게 적용되었다. 때로는 타협 불가한 순간이 있어 명령을 하지만 따르게 할 수는 없었다. 아픔에 공감하는 마음과 책임감이 의사로 하여금 한밤 중에 콜을 받고 달려가도록 하고 의사에 대한 신뢰가 환자로 하여금 지시를 따르게 한다. 치료/의료 행위는 이렇게 형성된 관계 위에서 꽃을 피운다.


정부는 뜻하는 바를 이룰지도 모른다. 대통령이 나서서 타협불가를 외치는데 이를 돌이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제시하는 법안이 만에 하나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의사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배신감, 그리고 깨어진 관계는 이 나라 의료 현장을 어둡게 만들 것이다.


미국 남북 전쟁 막바지에 군마를 손상시키고 탈영한 소년병을 처벌하겠다는 전갈을 받은 링컨 대통령이 소년병을 사면시켜 준 이야기가 있다. 법을 엄정히 집행하고 원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명목으로 정작 그 법과 원칙이 지켜내야 하는 것은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아니면 더 큰 목적이 있다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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