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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도망고 Aug 15. 2023

눈밭에서

강이 온통 하얗게 덮였다. 강물이 흐르는 것은 볼 수 없지만 하늘에서 흘러내리는 눈발의 흐름에 마음을 맡기고 있다.


환자는 보호자의 가슴팍에 안겨서 수술실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이는데 작디작은 소아용 침대도 아이에 비하면 광대하다. 행여나 떨어질까 마취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의 양팔과 다리를 가만히 잡고 있다. 보호자를 모셔다 드린 인턴 선생님이 돌아왔는데 대기실로 가는 길에 보호자가 많이 울었다고 한다. 한 가정의 가장 빛나는 작디작은 존재가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큰 이유를 끌어안고 이곳에 누워있다. 투박한 손에 결박되어 무의미한 저항을 하면서 마취를 기다리고 있다. 이윽고 아이의 몸에서 힘이 빠지는데 살결이 무척 깨끗하다.


Skin to skin, 피부를 열고 필요한 작업을 한 뒤 그 자리를 닫는다. 거장의 솜씨로 수술은 무척 순조로이 진행되었다. 이제 수술의 마지막 단계이다. 한 땀 한 땀 의료진의 흔적이, 의학의 흔적이, 문명의 흔적이 아이의 하얀 살에 새겨지고 있다. 


눈 내린 들판을 지나갈 때는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고 했다. 아이의 삶에 신의 손길이 아닌 사람의 발자국이 남았다. 세상에 완벽한 수술은 없고 같은 수술을 해도 어떤 사람은 잘 낫고 어떤 사람에게는 문제가 생긴다. 회복실 침대에 누운 아이를 바라보며 신의 손길이 우리의 흔적을 따뜻하게 어루만져주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수술실로 돌아와 창밖을 본다. 눈은 계속 오고 있다. 사람들이 밟은 발자국 위에 눈이 쌓여 세상은 여전히 하얗게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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