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ex Mar 28. 2021

몽생미셸 - part1



이른 새벽 아침 파리의 Trocadero역 3번 출구에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출석체크를 하듯 가볍게 가이드와 몇 마디 나눈 후 준비된 차량에 올랐다.

여자를 포함해서 일곱은 돼 보였다.

커플, 자매, 중년의 아저씨와, 갓 스물 즈음되어 보이는 청년이었다.

출발시간이 5분 즈음 지났을까, 한 사람이 허겁지겁 달려와 가이드와 반갑게 인사를 한다.

20대 후반 혹은 서른 즈음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여러분, 오늘은 특별히 제 친구가 함께 투어를 가기로 했어요. 영국에서 일하는 친구인데 민호라고 합니다.

파리로 놀러 왔으니 여러분들과도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럼 오늘 소규모 투어니까 함께 좋은 이야기 나누시고, 출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짝짝짝 어색한 박수가 이어지고, 민호라는 남자는 가운데 커플을 두고 여자와 반대쪽 창가에 풀썩 주저앉았다.


"자기야~ 난 자기랑 파리 여행을 와서 너무 행복해! 자기를 모르고 살았던 시간이 너무 아깝게 느껴져~"

옆자리 여자가 말했다.

"그렇지~ 우리 아기 앞으로 좋은 것만 시켜주고, 내가 다 해줄게~ 말만 하면 돼! 가서 사진 많이 찍자~"

연이어 남자가 말했다.


'거짓말~'

옆자리 커플의 달달한 대화를 엿들으며 속으로 여자는 생각했다.

'고작 사랑은 길어야 3년이라고! 정신 차려라 꼬맹이들~' 하고 속으로만 외치던 여자다.


사랑에 빠진 남자와 여자,

많은 커플들은 서로에 대한 처음의 호기심과 설렘 속에서 천국을 경험한다. 자칫 잘못하면 지옥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단 것도 모른 채 말이다.


그렇다. 여자도 처음 사랑을 시작했을 때는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였다. 비록 부모가 강제로 서두른 결혼이었고, 살다 보면 더 큰 사랑이 생길 거란 부모의 설득에 넘어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지만 현실은 여자의 기대와는 달라도 한참 달랐다.


여자는 처음 겪는 결혼생활에 좀처럼 익숙해질 수 없었고, 처음 순간의 그 쉬운 언약을 철석같이 믿었다가 배신당했다 생각했다.


"자~ 여러분 오늘 우리가 가는 몽생미셸은요~..."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이 이어지고 곧이어 뒷자리 자매가 내 어깨를 콕콕 찔렀다.


"저기요~"

"네?"

"이것도 인연이데 소개나 할까요?"

"아.. 네..."


옆에 있던 동생이 끼어들었다.


"언니 오지랖 좀 그만 부릴래~"

"뭐 어때~ 이렇게 여행 와서 친해지고 하는 거지~ 저는 송하영, 옆에 얘는 제 동생 송효영이에요."


"아.. 저는 지원이라고 합니다. 김지원."


"만나서 반가워요~"


여자는 웃으며 통성명을 했지만, 그녀의 복잡한 마음과 머릿속 때문인지 더는 말 하지 않았다.

자매의 언니 하영은 그렇게 돌아가며 차 안의 사람들을 하나 둘 알아가고 있었다.

어려서 그런지 조금은 당돌한 질문도 서슴지 않으며.


"아저씨! 왜 혼자 왔어요? 설마 아직도 애인이 없는 거예요?"

"언니~ 그렇게 물어보면 상처 받을 수도 있잖아!"


 농담 반, 진담 반 자매의 분주함으로 서로의 시답잖은 대화들이 이어졌고, 조용한 차 안을 제법 북적거리게 만들었다.

여자는 그런 북적임이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다.


"그럼 다음은 자연스럽게 제 차례인가요?" 반대편 창가에 앉았던 민호라는 가이드의 친구가 먼저 말을 했다.


"어머 이 오빠 센스 있네~"

자매는 깔깔거리며 호응해 주었다.


"저는 영국에서 회계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주말을 맞아서 친구네 놀러 왔다가 투어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아! 그리고 여자 친구는 없습니다."


"꺄아악~ 민호 오빠!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몇 살이에요?"


"네 괜찮아요. 저는 스물아홉입니다."

"저는 스물여섯, 효영이는 스물넷이에요" 언니 하영이 말했다.


여자는 조용히 창밖을 응시하면서도 귀는 시종일관 사람들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스물아홉이라니 참 젊다..'


"오빠. 인기 진짜 많을 것 같아요." 동생 효영이 물었다.

"인기라.. 뭐 없지는 않죠!" 민호가 웃으며 대답했다.


'요즘 사람들은 정말 친해지는 것도 금방이구나'

여전히 속으로만 생각하던 지원이다.


"지원 씨는 어떻게 여기 오게 됐어요?" 민호가 모두의 시선을 여자에게로 돌리며 물어본다.


"아.. 저는..."

모라고 대답해야 할지 머리가 하얗게 아득해진 지원이었다.

"친구가 파리에 있어서 놀러 왔어요~ 그냥 여행이요.."


"혼자 여행이라~ 용감한데요!" 민호가 말했다.

"맞아요~ 언니는 몇 살이에요? 혼자 여행 며칠째인데요?" 효영이 받아서 질문을 했다.


"아.. 저는 나이가 좀 많아요.. 서른여섯이에요. 여행 온지는 열흘 정도 된 거 같네요." 지원이 말했다.


"아직 팔팔하시네요~ 저는 이제 곧 오십입니다만.." 옆에 있던 중년의 아저씨가 끼어들었다.


"우리 이모가 그러는데 여자는 서른 넘으면 결혼하기 힘들데요~ 아저씨는 마흔 넘어 오빠라도 여자는 다르다고 하던데요?! 언니 너무 슬프겠다." 하영이 거침없이 말한다.


"네.. 저는 비혼 주의예요." 갑작스러운 하영의 말에 지원은 자기도 모르게 거짓말을 한다.


"비혼 주의? 우와 정말 멋있다~" 이번에는 동생 효영이다.


그리고는 민호가 다시 묻는다.

"무슨 일 하시는지 제가 맞춰 볼까요?'

"필라테스 선생님 아니에요?!" 하영이 끼어든다.


"저는 요가 강사 아니냐고 물어보려고 했어요." 민호가  웃으며 하영의 말을 받는다.


"오빠랑 저, 왠지 쿵짝이 잘 맞는데요!" 하영이 활짝 웃으며 적극적으로 민호에게 호감을 표시한다.


지원은 본인이 지금 두 아이의 엄마이고, 이혼을 목전에 두고 죽기로 결심하고 파리에 온 사실을 차마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었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


"요가 강사는 아닌데... 여하튼 지금은 일을 쉬고 있어요." 지원은 어차피 오늘만 보고 말 사람들이란 생각에, 오늘 하루는 자신을 그냥 숨기기로 했다.


서로의 소개와 가벼운 대화들 그리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다 보니 어느새 도착한 몽생미셸.

 

"자 지금부터 자유시간을 드릴 거예요. 그리고 우린 저녁식사 후에 만나서 야경사진을 찍어드리도록 할게요."

가이드의 설명이 끝나고 각자의 발걸음을 옮긴다.


"민호 오빠~ 우리 같이 가요!!" 하영이와 효영이 민호를 졸졸 쫒아간다.

"좋아요!" 가이드와 민호 그리고 두 자매는 함께 수다를 떠느라 재미있어 보였다.


지원은 가벼운 에코백을 들고 몽생미셸까지 한참을 걷기 시작했다. 파아란 하늘과 살랑하게 부는 바람이 참 좋았다. 성에 도착해 계단을 오를 때는 살짝 땀까지 나며 지원의 기분을 끌어올렸다.


드디어 지원은 가장 높은 곳에 이르렀다.

아래가 훤히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는 챙겨 온 시원한 맥주를 딴다.


"칙~ 치익~~"


'아 시원하다.'

여름이 끝날 무렵의 몽생미셸은 참 예뻤다.

광활한 자연을 보고 있자니, 지원의 깊은 시름과 고통이 말끔히 잊히는 것만 같았다. 이렇게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멍하게 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래. 오길 잘했다.' 속으로 생각하던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여기 있었네요! 한참 찾았네~

옆에 앉아도 될까요?"

민호였다.


지원은 순간 놀라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참 좋죠? 저는 친구녀석 덕분에 종종 오는 곳이에요.

이렇게 가만히 앉아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모든 생각이 사라지고, 그때부터 무슨일이든 단순해지더라고요."


민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한번 들어볼래요?"


지원이 대답을 미쳐 하기도 전에, 이어폰을 든 민호의 손이 지원의 귓가로 다가왔다.


"아.."


지원의 귓속에 들려오는 잔잔한 팝송과 눈앞에 펼쳐진 풍광에 넋을 잃고 그렇게 두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음악을 듣는다.


"아포칼립스. 노래제목이에요."

"..."


지원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딱히 무슨말을 건네야 할지 몰랐다.

음악이 좋다고, 누가 부른거냐고 등의 시덥잖은 질문도 겁이 났다.

마치 고슴도치가 주위를 경계 해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는 것 같았다.


"지원씨, 파리는 처음인가요?"

"네 맞아요."

"저도 마침 휴가라서, 좋은데 몇 군데 갈건데 혹시 제가 가이드를 해 드려도 될까요?"

"아니 괜찮아요 전."

"사양하지 말아요. 저 지원씨에게 인간적인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민호는 쭈뼛쭈뼛 조심스러워하는 지원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남자답게 지원에게 호감을 표시하고 있었다.


"저는 그럴만한 사람이 아니에요.."

"글쎄요. 인지 아닌지는 제가 알아볼게요. 저만 믿고 여행해 보세요. 안 잡아 먹습니다."


"어디를 가려고요?

"샹젤리제요."


샹젤리제라니!

파리에 처음 온 지원이었지만, 세상 모든 관광객들은 파리에 오면 샹젤리제를 들리고 또 불과 며칠전 지원 자신이 그렇게 울며 한참을 걸었던 길인데 그 샹젤리제를 가자니.

지원의 머리는 아니라고 했지만, 왜 였을까? 민호의 묘한 매력에 이끌려 대답한다.


"그래요. 대신 꼭 무언가 있어야 해요."



 





 

작가의 이전글 우울함을 벗어나는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