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와 캐나다에서 유학하고 알게 된 것
내가 중학교를 졸업했을 때, 우리 아버지는 나에게 대뜸 인도로 가라고 했다.
"엥? 인도???"
미국도 아닌 인도로 미성년 딸을 보내겠다고?
가기 싫었던 나는 어느 주말 침대에서 느긋하게(여느 사춘기 소녀가 그러하듯) 친구랑 핸드폰으로 문자를 주고받을 때였다. 당시 아버지는 내 방에 들어오더니 공부도 안 하고 핸드폰만 만지작 거리는 내가 꼴베기 싫었는지 내가 애정 하던 SKY 화이트 핸드폰(정말 예뻤는데.. 왜 역사 속으로 사라졌나 몰라)을 방바닥으로 가감 없이 던져버렸고 난 그 길로 울며 인도행 아시아나 비행기에 올라야 했다.
그렇게 가기 싫었던 인도에서 나는 2년 하고도 6개월을 유학하고는 캐나다로 다시 옮겨 고등학교 과정을 마무리했고 대학까지 진학했는데, 그렇게 해외에서 공부하며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이야기를 짧게나마 적어보려 한다. (인도 학교에서의 생활은 나중에 따로 쓸 예정이다. 너무 재미있고 할 이야기가 많으니까!)
내가 생각하는 해외교육과 국내 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은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우리와 달리 자기 주도방식 교육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점과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류대학을 고집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대학진학이 크게 그들의 인생을 좌지우지 하지 않더라는 점이다. 오히려 성인 이후 본인 인생은 스스로 선택할 기회가 더 많고 책임도 스스로 진다는 점은 너무도 매력적이기까지 하다.
'내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가 있고 책임을 진다고?!'
정말 우습게도, 말처럼 쉬운 이걸 못하는 게 대한민국의 사회이고, 나의 경험에 의지할 수밖에 없음으로, 특히 우리 집이라 하겠다.
부모가 아이들의 미래를 딱! 정해 놓고 그 스케줄대로 살아야 하지 않은가!
적어도 캐나다에서 고등학교를 공부하고 친구를 사귀어본 나로선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너는 고등학교 졸업하면 뭐할 거야"
"응~ 나는 근교 와이너리에 가서 잠시 일을 하며 진로를 고민할 까해! 나중에 내가 좋은 셰프가 돼서 레스토랑을 차리려면 와인공부는 필수니까." 친구 1이 말했다.
"나는 도시로 가서 학비부터 벌어야 해. 겨울에 휘슬러에서 내가 좋아하는 보드도 실컷 타고 강습하며 돈도 벌고 일석이조 아니겠어?" 친구 2가 또 말했다.
우리나라의 또래 아이들보다, 그때 당시 나 자신보다, 친구들은 더 구체적인 꿈을 설계하고 있었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사회로 나간다고 했다.
반면 나는 어땠나?
"아빠, 저는 아나운서가 되고 싶은데 대학에 가서 저널리즘을 공부하고 싶어요."
"안돼, 넌 캐나다 토론토 대학 경영학과가 아니면 학비는 없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다.
그때는 부모님의 경제적 서포트가 끊어지면 죽는 줄만 않았다.
(세상에 정말 다양한 환경의 가정이 존재하고 저마다의 고통은 있다..)
지금 와서 부모님을 원망하진 않는다. 급속한 경제발전을 한 우리나라, 대한민국에서 구슬땀 흘리며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노력한 분들을 욕할 수는 없지.
그분들의 그 당시 최고 목표는, 잘 가르쳐서 훌륭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의 좋은 일꾼이 돼서 좀 더 편하게 살았으면 하고 생각하는 게 최선이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닐 테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이 원하는 삶을 사는 대가로 경제적인 지원은 받았지만 인생의 가이드는 받지 못했고, 감정 케어 또한 받지 못했다.
물론 요즘은 아이를 하나만 낳아 너무 케어를 많이 해서 문제긴 하지만..
암튼, 일찍 경제적 독립과 함께 자신의 인생을 책임지며 선택하는 해외의 아이들과는 달리
아주 늦게까지 부모의 케어를 받는 캥거루족이던 나는 뒤늦게 엄청난 후폭풍을 겪어야 했고 지금도 일부는 현재 진행형인 듯하다. 올해 서른여덟인데 말이다. 웃프다 정말.
어릴 때 선택을 하면서 실수도 해보고 실패도 해봐야 타격이 적은데, 나이가 들어서 다 통과하려니 정말 어렵고 힘든 게 사실이다.
결론은,
난 나의 두 아이들을 나의 부모보다 잘 키우고 싶어 졌다. 결과는 20년이 지나야 알겠지만 ㅎㅎ
적어도, 두 남매에게 말한다.
"19살까지 엄마의 역할은 너희를 좋은 어른이 되도록 보호하고 양육하고 서포트하는 거야. 그 이후의 인생은 너희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져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잘 배워야 해. 그래서 대화가 필요한 거고 말이야."
나는 서포터이지 그들의 인생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
공부를 하라 하라 한다고 다 하지 않는다. 그보다 중요한 게 동기니까.
왜 오늘 하루를 정성껏 사는 게 중요한지, 왜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중요한지, 왜 악기를 배우고 운동을 해야 하는지, 왜 책 속에서 답을 찾으면 좋은지 등에 대해 부모는 답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을 늘려주려고 노력하고, 늘어나는 꿈에 대해 대화하고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경험할 시간을 충분히 주어야 한다. 국영수보다 난 더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일곱 살이 된 둘째가 유치원 셔틀버스에서
'닥쳐!'라는 말을 썼다고 선생님에게 알림 노트가 왔다.
아마도 유튜브의 영향인 것 같다.
나는 고민한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접근하고 별 탈 없이 풀어내면 좋을지.
그래서 엄마는, 부모는 항상 바쁘다.
내가 해외에서 유학하며 체감한 좋은 교육을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고 싶다.
인생은 길고, 그래서 육아도 길고, 육아 동지가 필요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