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되면 크리스마스를 손꼽아 기다리던 어린 날의 내가 있었다. 작은 교회에서 몇 년째 쓰는 크리스마스 반짝이 장식을 교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희귀템으로 집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초등 시절 겨울 방학이 되기 전부터 평일에도 열심히 교회에서 성탄절 연습에 푹 빠져 지내던 시절이 있었다. 방과 후에는 친구들과 우르르 교회로 몰려가 한 줄로 맞춰 선생님의 율동을 따라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를 신나게 외치며 자유로운 몸을 움직여 율동을 연습을 하고 성극 연습을 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모든 일이 신나고 즐겁기만 했던 그 시절이 애처로이 그립다. 모두가 십자가 팔을 벌리고 율동을 할 때, 가운데에 선 친구는 손을 위로하며 틀린 모습이 사진에 남아 지금도 웃음 자아내는 추억에 빠지게 하는 그리움으로 남아 있다. 밤을 새워가며 성탄절 소품을 만들던 나의 삼촌도 생각이 난다. 어린아이들의 즐거움이라면 가리지 않고 열심히 봉사하던 그때의 삼촌은 작은아버지가 되고 목사님이 되었다.
지금은 학생들이 바빠도 너무나 바빠서 성탄절 연습을 한번 하려면 이리 시간을 맞추고 저리 시간을 맞추며 힘들게 연습하고 있다. 그때와 지금의 삶의 모습은 180도 바뀌어 그나마 감사하다고 해야 할지 모른다. 내가 어린 시절의 12월은 거의 교회에서 살다시피 했었다. 난롯불에 고구마 구워 먹던 추억, 칡차를 진하게 달여 달디달게 먹던 칡차도 생각이 난다. 날은 정말로 추웠으나 추운 줄도 모르고 친구들과 언니 오빠들과 교회에서 보내는 12월은 재밌기만 했다.
드디어 성탄절이 되고 노래도 하고 연극도 하며 어설프고 촌스럽지만 온전히 집중하며 울고 웃던 기억도 또렷하다. 대사를 틀리지 않게 외우려고 고군분투했던 기억도 모든 게 열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 후로도 매해의 12월은 어릴 적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어린 추억을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어 감사하다. 지금은 어린아이들을 지도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그 시절 선생님이 문득 떠오르기도 하고, 공부에만 갇혀 사는 요즘 아이들이 안쓰럽다는 생각도 든다.
12월 "창밖을 보라"를 신나게 외쳤지만 눈이 한 방울도 안 오는 해도 있었다. 눈이 오면 미끄러운 길을 걱정하는 중년이 되어 버렸다지만, 12월만큼은 그래도 화이트 크리스마스 이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12월이지만 어제오늘 제주는 봄날이다. 눈이 오긴 오는 걸까? 한라산 정상에는 눈이 펑펑 내렸다고 한다. 내가 사는 이곳에도 눈이 내리길 기대해 본다.
요즘 크리스마스트리는 얼마나 고급 지고 예쁜 것들이 많은지 모른다. 지난 12월에 벽 한쪽에 걸어 두었던 크리스마스 장식 한 줄을 4월쯤이 되어서야 떼어 내었다. 장식을 몇 개월 만에 다시 걸어야 하는가 싶다. 벽에 붙은 장식을 떼어 낼 때 딸아이가 내게 하던 말이 생각이 난다. "곧 12월 오는데 뭐더러 떼?" 하하하 늘 딸아이는 그런 식으로 엄마를 놀리곤 한다. 어릴 적만큼 신기하거나 귀하진 않지만 여전히 크리스마스 장식은 설렌다.
집이 좁아서 큰 트리를 장식하지 못하는 건 못내 아쉽다.
크리스마스 장식만큼이나 하는 일과가 또 있다. 다름 아닌 내년을 준비하는 것들이다. 새로운 다이어리도 준비하고 가계부도 구비해 둔다. 올해는 특별히 거쳐를 새롭게 결정해야 한다. 마음이 분주하지만 계획한 데로 하나씩 클리어해 가며 지내는 12월은 바인더를 펴 보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것 같지만 하지만 하나씩 해 나가 가고 있다. 나에겐 12월은 마무리와 시작을 동시에 한다. 그 와중에 100일 글쓰기도 다시 시작하고 늘 삶은 그렇게 시작하고 끝이 나고 또 시작하고를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