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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기 저기 Jul 02. 2022

변하는 속초 (초여름, 2022)

이르게 떠나는 단출한 속초행 2022년 6월 말

B와 함께 이른 여름 나들이를 나섰다. 제주를 가고 싶지만 멀고 비싸니 지갑에 힘 좀 줘야 간다. 그래서 항상 ‘꿩 대신 닭’으로 뽑히는 곳이 동해안 속초! 그러고 보니 코로나 이후 처음이 아닌가 싶다. 장대비가 내리는 양양행 고속도로를 타고 속초로 간다.


DAY 01

옛날식당 again

아바이 마을에 오면 들르는 식당이다. 이전 여행 스케치에도 나오는 단골집이다. 우리는 식당을 잘 바꾸지 않는 식당 보수파다. 변화와 도전을 두려워하는 건가. 의리가 있는 건가. 속초의 애착템 오징어순대는 역시 맛있다. 비 오는 날 기름진 전은 아주 안성맞춤이다. 사실 이 맛 때문에 200km를 열심히 달려온 게다. 밑반찬 젓갈도 맛나니 이것저것 택배 주문까지 이어진다. 주인 여자 사장님 인상이 다소곳 고우시다고 칭찬해드렸더니, 명란젓을 추가로 보내 주신단다. 역시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율넛

B가 찾은 도넛을 파는 카페다. 아바이마을에서 8분 정도 떨어진 곳인데 주택가 1층 숨겨진 곳에 있다. 첫인상은 어린이 피아노 교습소 혹은 어린이집인 줄 알았다. 유아틱 한 분위기가 이곳이 카페인가 싶다. 도넛 두 개와 커피를 주문해서 먹는데, G와 B의 분위기가 심상챦다. 별로 긍정적이지는 않은 듯하다. 요지는 이렇다. “이렇게 뻑뻑하게 크림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뭐 이런 것 같다. 기대하고 찾아온 신규 개발 카페가 기대에 못 미치자 카페 개척자 B는 오랜만에 멘붕에 빠졌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 있는 법!


우중 설악산 울산바위

서울부터 내내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오는 대로 여행은 운치를 더한다. 집 나서면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급할 것 뭐 있겠는가. 꼭 그래야 할 일이 뭐 있는가. 숙소로 향해 바다에서 설악 쪽으로 이동하면서 눈앞에 펼쳐진 구름에 쌓인 울산 바위는 절묘한 수묵 산수화 그 자체였다. 멋지다 멋져. 아이폰 카메라가 이 감흥을 그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한화콘도 설악 소라노

오랜만에 한화콘도를 사용한다. 속초 오면 그다지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음식 취사를 하지 않는 호텔형 객실은 깔끔하다. 옛날 설악콘도를 기억하던 이들은 많이 좋아졌다고 살짝 혼란스러워한다. 예전 구관은 ‘한화콘도 설악 별관’이라는 명칭으로 지금은 리노베이션 중인 듯싶다. 널찍한 공간(방 1, 거실 1)을 하루 10만 원에 쓸 수 있으니 가성비는 최고다. 한화콘도는 전국 각지에 있어 그곳들만 연결해 돌아도 훌륭한 전국일주가 될 거다.


오랜만에 찾은 이의 눈에 들에 온 광경 하나는 여기저기 보이는  ‘딜리버리 로봇’이다. 룸서비스 음식을 사람이 아닌 로봇이 나르고 있다. 식당에서는 본 광경인데 이렇게 큰 건물에서 로봇이 엘리베이터까지 타고 내리며 ‘열일’하는 것은 처음 본다. 이 녀석은 다니며 말도 한다. “배터리 충전을 위해 이동 중입니다. 길을 비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길을 비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등등 사람이 근처에 인식되면 연신 떠들어댄다.


오늘 뉴스에 올해 최저임금이 9천 여원으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있었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은 부담스럽다고 하고, 알바 근로자들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한다. 머리 좋은 윗분들이 잘 좀 해결해 주면 좋겠다. 부탁하오. 잘들 좀 하시오. 제발… 로봇이 소환한 생각하기 싫은 사람들 때문에 기분이 살짝 별로다.


동명항 오징어 난전

B의 첩보에 의하면 요즘 동명항에서 오징어 난전이 열린다고 한다. 그래. 속초까지 온 김에 오징어를 지겹게 먹어보자. 여기는 동해안이다! T맵에 ‘동명항 오징어 난전’이 자동 완성되면서 길을 안내한다. 한화콘도에서 속초시내는 약 15~20분 정도 거리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다. 항구로 가니 주차장에 숫자로 몇 호 몇 호 쓰여있는 포장마차 촌이 형성되어 있다. 적당한 곳을 골라 입장하고 오징어 회, 통찜, 오징어 라면 이렇게 주문을 했다.


역시 현지에서 먹는 싱싱한 산물은 좋다. 얇게 썰은 오징어 회는 부드럽고 고소하다. 식감도 적당하고 싱싱함이 느껴진다. 통찜은 내장까지 함께 짜낸 터라 색이 거무튀튀하며 통통하다. 다섯 마리나 준다. 양이 푸짐하다. 맛도 부드럽고 내장이 고소하다. 도시에서는 만나기 힘든 싱싱함이다. 라면은 라면이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메뉴판에 가격이 쓰여 있지 않아 휴양지 바가지 쓸까 봐 걱정했는데, 5만 원 정도 청구서는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우중 바다 @ 동명항

오징어를 신나게 흡입하는 동안에도 비는 계속 오락가락한다. 그러다 하늘이 조금씩 밝아지며 햇빛이 간접 조명등처럼 조금씩 켜지는 느낌이다. 비가 그친다. 그리고는 짠! 비 그친 수평선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아름답게 걸린다. 자세히 보면 선명한 무지개 위에 옅은 무지개가 하나 더 있다. 쌍무지개다. 두 시간 빗길을 운전하고 왔다고 이런 선물을 받는다. 오랜만에 보는 장관에 기분이 흡족하다. 비 그친 하늘은 유화같이 힘 있는 터치가 느껴진다. 맑은 바다에서는 상상도 못 할 운치 있는 경치를 즐긴다. 땡스 갓!


속초는 공사 중

2019년 초 다녀간 후 코로나 기간 동안 마스크를 쓰고 속초에 온 적은 없다. 오랜만에 찾은 속초의 인상은 도시 전체가 큰 공사장 같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크레인들이 고층 아파트들을 지어 올리고 있다. 도시에 ‘영구 바다 뷰’를 표방한 아파트 홍보 부착물들이 가득하다. 한적한 항구 속초는 이제 끝났다. 이제 속초는 도시다. 편리해지는 듯 하니 좋고 변하니 아쉽다. 어쨌든 속초는 변하고 있다. 바다 뷰 아파트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물욕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어나더 블루 again & again

율넛의 실패로 상심한 B가 오늘은 더 이상의 노력을 포기했다. 그래서 ‘구관이 명관’이라며 뷰 깡패면서 케이크가 맛있는 장사항의 카페 어나더블루로 향한다. 7시 도착했는데 마감까지 30분밖에 시간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문제없다. 30분이면 디저트 타임으로 충분하다. 역시 이 집 생크림 딸기 케이크와 커피는 수준급이다. 카페 불모지 속초에 나름 자존심이다.


그런데, 이곳 바로 옆에 신상 카페가 들어섰다. 지금은 시범운영 중이라고 쓰여있다. 이제 어나더블루는 방금 새단장을 마친 신상 카페와 경쟁을 해야 하는 건가. 관록으로 밀어붙이시기를~


이마트 속초

여행만 오면 들르는 로컬 이마트. 소화도 시키고 필요물품도 구입하고… 국내 여행의 루틴이다. 참 재미있는 것이 마트만 들어가면 살 것이 생긴다. 간단한 쇼핑 후 숙소 복귀 후 휴식과 하루 마무리.


내일은 요즘 핫하다는 양양을 훑어볼 참이다.


DAY 02

메르메르 인구리점

요즘 동해안에서 가장 힙한 곳! 서핑의 성지 양양이다. 한가하던 어촌이 이렇게 힙해질 줄이야. 매체를 통해서 접하던 양양을 직접 찾았다. 이곳은 이제 속초가 주는 느낌과는 사뭇 다른 상상 이상 멋진 곳으로 변해있다. 젊고 건강하고 멋지다. 역시 영파워.


브런치를 먹기 위해 찾은 스웩 넘치는 카페. 이곳이 양양인가 캘리포니아인가 오레곤인가! 이국적인 멋과 여유가 넘쳐난다. 어제 퍼붓던 비는 먼지마저 다 쓸어가 오늘 날씨는 눈부심 그 자체다. 긴장을 풀어주는 동네의 분위기와 바다와 서핑이 주는 활력이 교묘하게 어우러진다.


가장 선호하는 카페 타입인 노천카페에 앉아 먹는 브런치는 음식을 떠나 그 형식 자체로 애정이다. 그런데, 음식 하나하나가 신선하고 맛있으니 만족감은 폭발이다. 치아바타 샌드위치는 담백해서 최고이고, 슈플레는 부드럽게 녹아든다. 음식이 아주 맛있다. 이제 속초 오면 여기는 꼭 와야지. 맛과 멋, 분위기 모두 별 다섯 개가 모자라는 만족감이다.


만고땡 떡볶이

메르메르의 신선한 음식은 한국인에게 포만감을 주기에는 너무 산뜻했다. 그래서 바닷가로 이동하다가 발견한 떡볶이 튀김 만두집. 탄수화물로 배를 채우고 놀 힘을 비축해야 한다. 주인 커플이 유순한 인상에 친절한 응대를 해준다. 장사하시는 분들이 친절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도시의 ‘억텐(억지로 올린 텐션)’ 친절과는 다른 색깔의 수더분한 친절이 좋다. 떡볶이와 바로 튀겨주는 튀김은 맛있을 수밖에.


양양 스케치 @ 인구리, 죽도해수욕장

이곳은 우리나라 서핑의 성지다. 검게 그을린 젊은이들이 많이 보인다. 이런 시골에서 어르신들은 안 보이고 청년들만 보이니 좀 생경하다. 곳곳에 서핑 샵들이 즐비하고 힙한 카페 식당들이 즐비하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서핑들로 분위기는 이국적이고 편안하다. 도시의 각박함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 같다. 여기서는 ‘억텐 금지!’ 오~ 양양의 바이브 아주 맘에 든다.

이 거리는 죽도해수욕장과 평행하게 있다. 바다에는 서핑 강습을 이들이 많이 있다. 맑은 하늘과 바다가 눈부시다. 오랜만에 바닷물에 발을 담근다. 처음에는 소심하게 발목만 담그다가 파도에 걸려 자빠진 후, 옷 입은 채로 바다로 들어가 신나는 파도 타기를 즐긴다. 완전 시원! 갈아입을 옷은 없지만, 어떻게 되겠지. 우리나라 편의점에 안 파는 것이 있겠는가.


둔전계곡 again

저녁 시간까지 조금 남아 속초로 돌아가는 길에 우리의 여름 계곡인 둔전계곡으로 향한다. 둔전계곡 입구를 공사 중인데, 예전에 비해 물이 너무 없다. 바닥에 조금 있는 정도다. 그동안 심했던 가뭄이 느껴진다. 둔전계곡으로 올라가니 어제 내린 비의 영향으로 계곡 물살이 거세다. 놀 만한 분위기가 아니다. 발만 조금 담그고, 계곡과 눈인사만 맞추고 바다 물놀이로 시장한 허기를 달래러 이동한다. 오늘은 산과 바다 모두 섭렵했다.


벌봉식당

일단, 이름이 좀 재미있다. 어제 잠들기 전 오늘 저녁식사 메뉴로 생선구이를 정해 놓았다. 갯배 타는 아바이마을 근처에 전국구 유명 생선구이집들이 좀 있다. 줄 서는 인기빨에 비해 음식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것으로 지인들이 귀띔해 주었다. 그래서 최대한 로컬 분위기 나는 식당을 찾았는데 그것이 이곳이다.


식당이 즐비한 갯배터 근처에 있는 작은 식당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하니 손님은 우리뿐이다. 사장님께서 음식 솜씨가 얌전하니 정갈하시다. 생선구이 백반과 물회를 주문했다. 배고픈 우리에게 생선 굽는 냄새는 향긋하다. 음식의 질과 양이 아주 적당하고 좋다. 사장님께서 연신 음식 자랑을 해주신다. 이른 오후라 심심하던 차에 손님이 오니 반가우신 게다.


물회 소스는 직접 만드셨고, 생선은 전기 그릴에 구워서 촉촉하고 부드럽다고 자부심 넣어서 말씀하시고, 김치도 직접 담그셨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하신다. 밥에도 찹쌀을 넣어 찰기를 더했다고 하시고. 말씀하시는 것만큼이나 음식은 괜찮다. 생선을 숯불에 굽지 않으시는 이유는 재가 생선에 다 묻는다고 한다. 그래서 전기그릴로 구우신단다. 아무튼 생선은 숯불구이 때보다 촉촉하고 부드럽다. 숯불구이 생선은 수분이 다 날아가 퍽퍽한 맛이 난다. 양도 딱 적당하니 생선구이 식사에는 재방문 의사가 충만한 로컬 식당이다.


도리스파티시에

이른 시간에 점저를 먹은 터라 중앙시장으로 이동해서 전에 갔던 버스정류장 카페로 가서 디저트 하고 시장 구경도 하려 했다. 네비를 찍고 가던 중 갑자기 눈에 들어온 산뜻한 파티시에 제과점. 순간 홀린 듯 차를 세우고 이곳에서 디저트를 먹으려 한다. 매우 충동적! 타르트를 주종목으로 하는 곳인데, 옥수수 에그타르트가 맛있다. 타르트 맛집이네. 중앙시장 안에도 소개받은 에그타르트 맛집이 있었는데, 요즘 속초에는 에그타르트가 인기인가 보다.


디저트까지 먹고 나니 갑자기 피곤해진 일행. 중앙시장 산책은 포기하고 바로 숙소로 귀가해서 휴식한다. 내일 한 끼만 더 하면 돌아간다. 내일 조식은 전복죽과 전복뚝배기가 예정되어있다. 잇츠 전복 데이.


DAY 03

바람꽃해녀마을 속초 본점

숙소에서 5분 거리에 이런 식당이 있었다니. 그리 다녔어도 몰랐다. 설악산을 병풍처럼 놓고 큰길에서 약 500미터 정도 안에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다. 지역에선 꽤나 유명세가 있는 식당인가 보다. 붐비는 모양이나 종업원 수를 볼 때  식당이 아니라 거의 중소기업인 듯하다. 전복 해물뚝배기와 전복죽, 그리고 오징어순대를 주문했다.


해물뚝배기는 자극적이지 않고 마일드하니 부담 없이 입맛에 잘 맞다. 하긴, 이런 좋은 재료로 굳이 양념을 세게 할 필요가 없지. 오징어순대도 밥알이 탄탄한 것이 씹는 맛도 있고 좋다. 마지막 전복죽은 너무 대량 제작한 티가 나게 죽이 엉겨있고 뻑뻑하다. 유일하게 평균 이하 점수가 부여된다. 이 식당의 압권은 경치다. 우리가 식사하는 내내 울산바위는 구름에 들어갔다 나왔다 한다. 속초의 명물 음식들을 도시 사람들의 취향에 딱 맞게 조율해 놓은 식당이다. 숙소와 가까우니 귀경길에 자주 들를 것 같다.

식사를 마치고, 어제 맛있게 먹은 도리파티시에로 가서 에그타르트와 커피를 한번 더 디저트로 해 치운 후 귀경한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인상은 뭐니 뭐니 해도 양양의 슬로 바이브다.

숙소에서 바라본 설악산에서 부터 바다까지 파노라마 뷰

바이 속초와 양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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