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게임을 좋아해서 게임 광고도 유심히 본다. 딱히 관심 가는 게임이 아니더라도 어떤 방식으로 마케팅하는지가 궁금하다. 그래서 티저 영상, 스토리 트레일러, 게임플레이 트레일러, 론칭 트레일러 등 수많은 영상을 자세히 살펴본다.
이런 마케팅 영상들 마지막에 꼭 붙는 문구가 하나 있는데 바로 "예약구매 하세요!"다. 발매일의 2~3개월 전부터 예약구매가 열렸다는 뉴스를 쏟아내며 게이머들의 선결제를 유도한다. 예약구매한 사람들 한정으로 아이템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지금까지 게임을 예약해서 구매한 횟수는 손에 꼽으며, 웬만하면 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예약구매의 본래 목적이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과거 예약구매는 유용한 수단이었다. 게임샵에 유통되는 물량이 부족하니 고객 입장에서는 원하는 게임을 미리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게임샵 사장님은 고객들의 예약 상황을 통해 수요를 미리 파악할 수 있었다. 지금도 이런 기능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예약구매는 마케팅 수단으로써의 존재감이 더 커졌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제는 예약구매를 할 필요성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게임을 디지털 형태로 살 수 있으니 물량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하고 싶은 게임을 스토어에서 결제 후 다운로드 받으면 끝이다. BBC 보도에 따르면 2022년 영국에서 팔린 게임의 90% 가까이가 디지털 형태로 팔렸다고 한다. 아마 코로나 시기였던 점도 영향을 끼쳤겠지만 어쨌든 디지털 스토어에서 게임을 구입하는 행위는 이제 당연해졌다.
게임을 찜해놓기 위해 예약구매를 할 필요는 없어졌지만... 역설적이게도 예약구매라는 판매 형태는 그 어느 때보다 성황이다. 소비자의 돈을 미리 받아낼 수 있는 기회를 게임 회사들이 놓칠 리가 없다. 예약구매에 의미가 없어졌다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예약구매자 한정으로 아이템을 껴주거나, 남들보다 며칠 먼저 플레이할 수 있는 특권 등을 끼워 팔며 어떻게든 예약구매율을 높여가고 있다. 소비자들도 '어차피 할 게임인데 아이템도 얻고 좋네'라는 마음으로 예약구매를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해보지도 않은 게임에 미리 돈을 지불하는 격이다. 거기에 게임 회사들이 반쪽짜리 게임으로도 돈을 벌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준다. 게임의 내용물이 광고와 심히 달라도, 버그가 많아 짜증을 유발해도 상관없다. 대대적 마케팅으로 기대감을 끌어올린 뒤 예약구매를 자극하면 일단 돈을 벌 수 있게 된다.
게임이 공개되고 유저들이 퀄리티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를 내면? "업데이트를 통해 꼭 고치겠다"며 유저들을 달래면 그만이다. 업데이트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관심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높은 확률로 잊혀진다. 게다가 디지털 제품은 플레이하는 순간 환불에 제약이 생기니 게임사 입장에서는 (회사 명성에 금이 갔을지언정) 수익을 올린 결말을 맞이할 수 있다. 물론 소비자 불만이 이례적인 규모일 경우 무조건 환불해주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어영부영 넘어갈 수 있다.
나는 이런 악순환을 지원해주고 싶지 않다.
게임 출시 후 사람들의 반응과 매체들의 평가를 보고 난 뒤 사도 늦지 않다. 출시 전에 평가가 공개되는 경우도 있지만 평가판과 출시된 버전의 퀄리티가 다를 때가 있어 100% 신뢰할 수는 없다. 내가 생각하기에 가장 합리적인 방법은 출시 전 정보들을 체크해 놓은 뒤, 출시 후에도 이상 없는지 확인 후 구입하는 것이다. 최적화 이슈가 있으면 업데이트가 이루어진 뒤에 구매하면 그만이다. 미리 사놓고 "게임을 왜 이따위로 만들었어!!"라며 화내게 되면 결국 나만 손해다. 잘못은 전적으로 게임을 개발한 회사에게 있지만 시간과 감정을 소모하게 되는 것은 나다.
미리 구입해서 스트레스받을 가능성을 높일 이유가 없다. 미리 돈을 내주어 퀄리티 의심에 대한 악순환을 강화시켜 줄 필요도 없다. 물론 예약구매를 하고 싶은 사람은 예약구매를 하면 된다. 단지 예약구매를 하는 이유가 예약 특전을 꼭 갖고 싶어서인지, 아니면 그냥 참지 못해서 질러버린 것인지 잘 구분해 보자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