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홍 Dec 30. 2020

#4 바람과 함께 사라지지 않을 나의 숨골

#4 한경면 산양 곶자왈 #산양리 올레길



      일도 사랑도 사람도 모든 것이 버거움을 넘어 점차 무의미함으로 변해갈 무렵, 우연히 경구 하나를 마주한다. 글귀 아래에 부처의 말이라는 짤막한 소개가 함께다.



언젠가 너는 네가 있어야 할 곳에서 너와 함께 할 운명인 사람과 네가 해야 할 일을 하며 살게 될 것이다.



      나는 불교 신자가 아니다. 하나 어떤 종교를 믿건 분명 위로가 되는 말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우리는 위로가 요구되는 시대를 지나고 있다. 채 1년도 되지 않은 동안 눈에 보이지 않는 총칼은 우리의 삶을 헤집어 놓았다. '세계대전世界大戰' 보다 더 세계적이다. 더욱 산발적이고 동시다발적이며, 대상을 정하지 않는다. 이익 관계에 얽힌 몇몇의 다툼이 아니고 그것에 휘말린 주변의 죽음이 아닌 게다. 늘 당연했던 것들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 입버릇처럼 되뇌는 "지금 말고 다음에-" 나는 어디에 있을까. 내가 사라지고 날 둘러싼 세계가 흐릿해진다. 이보다 우울을 고백하기 자연스러울 때가 있을까.






       사실, 이 시국은 좋은 핑곗거리다. 과연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하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 우리는 나면서부터 온 힘을 다해 싸우고 있다. 죽기 직전까지 상처를 받고 누군가에게 죽을 만큼의 상처를 준다. 살겠다고 바닥을 쓸며 몸을 바짝 숙인다. 적에게 기습을 당하고 전우를 배신한다. 치열하기가 블록버스터급이다.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힘겹다. 위로가 필요했고, 필요하다. 다만 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즘 우리의 우울은 감추어야 할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점이다.



새와 풀벌레, 바람에 부서지는 나뭇잎 소리가 가득한 곳이다. 들꽃과 풀내음은  덤.



      곶자왈은 사람들에게 하등 쓸모가 없었다. 돌무더기와 서로 뒤엉킨 나무들은 쓰임을 찾기 어렵다. 농사를 지을 곳도 아니고 집터로 용이하지도 않다. 그저 때가 되면 땔감이나 줍고 동물이나 풀어 먹였다. 천덕꾸러기였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동안 그는 말없이 그 자리에 살았다. 동쪽이든 서쪽이든, 같은 이름을 한 그는 여름이건 겨울이건 한결같은 체온으로 비슷한 향기의 친구들을 품고서 그렇게 한세월을 버텼다. 이제야 그의 아름다움이 보인다. 너무 늦은 것은 아닌 모양이다. 하나둘 그를 찾는 사람들에게 다시 조용히 곁을 내어준다.



      늦은 오후, 작은 동네의 곶자왈을 걷는다. 이름난 숲 산책로와 느낌이 사뭇 다르다. 가파른 돌무더기가 호흡을 앗아 가더니 곧 평지가 한숨 돌려준다. 어지러이 섞인 들꽃에 마음을 빼앗길 무렵 무언가 눈에 띈다. 나무 아래로 움푹 파인 것이, 태풍 탓인 듯도, 누군가 제 몸 숨기려 파놓은 듯도 하다. 길을 나서기 전 그이가 말했던 숨골이다. 곶자왈이란 게 용암이 만들어낸 올록볼록한 지형이므로 사실 용암동굴이란 이름이 직관적이겠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이 오랜 세월 이것은 "숨골"이었다.



      숨골. 말 그대로 숨을 쉬는 구멍이다. 인간으로 치면 뇌의 연수다. 척수와 맞닿는 곳에서 호흡과 혈액순환을 맡고 있다. 숨이 돌지 않으면 시체고 피가 돌지 않으면 몸이 썩어 들어가니 과연 삶과 결부된다. 사람이 '사람'이게끔 돕는 것이다. 곶자왈의 숨골은 곶자왈을 살게 한다. 제주 전역에 퍼져 있는 곶자왈이 일 년 내내 비슷한 기온과 모습을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러니까, 숨골이 없으면 곶자왈은 더 이상 곶자왈이 아닌 거다. 이 10만 년 전 고대의 존재도 필요로 하는 것이, 이 작고 복잡한 존재에게는 얼마나 중차대한 것인가.



곶자왈에 머무르는 종가시나무. 그 오랜 세월 친구와 어떤 마음을 나누었을까.


      
      누구에게나 숨 쉴 구멍이 필요하다. 그것은 굉장히 값비싸거나 우주의 필수 불가결한 무엇은 아닐 가능성이 높다. 어떤 이에게 그것은 그림이고 글이며 한 잔의 씁쓸한 술이다. 또 어떤 이에게는 음식이고 드라마이며 시끌벅적한 관계다. 당신에게 숨골은 어쩌면 사람이다. 자신이고, 또 타인이다. 숨골은 불현듯 내 전부로 다가온다. 나의 모든 끔찍함을, 고단함을 다 덮어주는 것 같다. 이것은 어쩌면 진실이고 어쩌면 대단한 착각이다. 하지만 그게 뭐 어때서? 나를 살게끔 만들던 것이 내 숨을 죄어오는 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일단 오늘 우린 숨을 쉰다.

      


      "외로우니까 사람"이고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말은 지독히도 외롭다.(정호승, <수선화에게>) 사람이기에 외로울 수밖에 없대도, 먼저 전화를 들어보는 작은 몸짓 하나에 우리는 잠시 숨 쉴 수 있을지 모른다. 가만히 앉아 과거를 그리워하고 오지 않은 미래를 단정하며 힘들 필요는 없다. 당신의 숨골을 찾자. 어떻게 괴로워할지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행복할지 고민하는 편을 권하고 싶다. 숨골에 불어넣은 내 숨이 돌고 돌아 날 살게 할 생명의 물이 될지도 모른다. 그 가능성에 오늘도 한 숨을 내몰아 쉬어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3 참을 수 없는 순간의 울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