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홍 Feb 17. 2021

#6 그날의 바다는 이렇게 말했다





      제주의 올레길은 보통 바다를 끼고 있다. 날것의 숲이나 들을 낀 길도 많지만, 취향의 차이를 고려한대도 제주의 바닷길은 남다르다. 구름이고 섬이고 바다고 뭐하나 빠지는 것이 없다. 비슷한 사진을 천 장은 족히 찍었으나 또다시 낮은 탄식으로 카메라를 꺼내게 만드는 거다. 제주시의 하늘이 물든 취색(翠色) 바다도 좋고 서귀포의 한없는 감색 바다도 좋다. 말랑과 울렁의 차이, 아이유와 양희은, BTS와 김광석의 차이다. 좋고 싫고의 문제를 넘어선다. 녹진함의 차이다.




꼭 한 번 갖고 싶다던 옥가락지가, 바다에 녹아 있어.




      바다를 좋아한다. 바닷바람이 어린 기억의 절반쯤을 차지한 영향일 것이다. 비릿한 바다 내음(누군가는 갯내음이라 중얼거리겠지만)도 좋지만 단 한순간도 그 일을 멈추지 않는 파도는 더할 나위 없다. 일단 바닷가에 앉으면 모든 건 정지다. 돌아가 처리해야 할 산더미 같은 서류 뭉치도, 보기 싫은 이들의 얼굴도, 하다못해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저녁 메뉴 결정도 정지다. 한참 유행하는 말을 흉내 내자면 ‘파멍’이다. ‘물멍’과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격정의 무게가 완전히 다르다. 결코 멈추지 않는 파도는 나에게 슬픔이자 기쁨이고 동경이자 사랑이며 공허이자 질문이다.








      타인은 내 삶에 관심이 없다. 가끔씩 들여다보는 내가 애잔해할 뿐이다. 내가 그러하듯 당신은 자신의 삶으로도 충분히 벅차다. 아침에 눈을 뜨고 어제 보았던 사람을 만나며 주어진 일을 하고 다시 잠든다.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인다. 이게 문제다. 영화 <Love me if you dare>의 줄리앙이 결국 다시 소피를 찾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반복은 사람을 쉬이 지치게 한다. 습관이 아니라 굴레가 된다. 다른 말로 멍에라고 해도 좋겠다. 분명 버거운데 도통 벗어날 길을 모른다.




      사람들은 말한다. “너는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좋아.”,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네가 부러워.” 긍정적인 평가지만 글쎄다. 거침없는 말들은 한 번 겪어서, 혹은 그 빈도가 잦지 않을 때 매력이 있는 거다. 상대가 받아들일 생각이 전혀 없다면 내 말은 잔소리가 되고 짜증이 되고 습관이 된다. 이때의 나는 ‘쿨’ 하기보다 ‘질리는’ 사람이다. 본인은 바뀌지 않을 것인데 변화를 강요하는 말이 반복되면 성인군자도 지칠 테다. 그래서 나의 ‘쿨함’은 한정적이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어느새 난 그 깊은 어딘가에 있어. 




      파도는 반복이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만 하라고 윽박지르는 법이 없다. 언제나 물밀듯 온다. 나는 파도를 닮고 싶었다. 그렇게 물밀듯 가는 중이라 여겼다. 문득 눈을 떠보니 그저 제자리에 부유 중이다. 미련한 건지 미련인 건지 뻔한 결말을 묶었다 풀었다 어쩔 줄 몰랐다. 손끝이 자글자글해질 때까지 느린 소용돌이를 만들 뿐이다. 원하던, 원하지 않던 대답도 없다. 매번 같은 반복에 서로가 지쳐갈 무렵 파도에 몸을 맡긴다.




      파도가 밀려온다. 함께, 일상이 밀려와 급하게 눈가를 훔친다. 화려한 이벤트가 아니다. 밥 먹고 떠들고 웃음 짓고 어루만지던 그저 흔하디 흔한 일상이다. 그래서 더 미어진다. 습관인 줄 알았는데 적어도 멍에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쩌면 매순간이 축제 같던 일상이었을 게다. 이미 스민 흔적을 지울 수나 있을지 겁에 질린다. 하지만 나에게 더 이상 찾아갈 소피는 없다. 그저 바다가 잔잔해지기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다음의 파도를 기다린다.




모든 것이 완벽했던 제주의 바다, 섬, 구름, 해, 그리고 다시 없을 너의 시선.







매거진의 이전글 #5 그날의 돌담은 이렇게 말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