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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아빠 Apr 03. 2022

맛은 어디에서 오는걸까

미각을 잃고 나는 쓰네

출처 : 넷플릭스

첫째가 코로나에 확진되었다.

녀석은 오후내내 관사 주변을 미친 듯이 뛰어다니다가 밥 한 그릇을 대충 먹더니 저녁부터 갑자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

39도가 넘는 녀석을 옆에서 간병하면서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여보 좀비 영화 보면 가족이 감염되면 울면서 도망가잖아.. 난 그러지 못할 거 같아. 그냥 얼른 물려서 같이 있어줘야겠어"

그렇게 안쓰러운 마음으로 이틀간 돌보았더니 싹 나아 버렸고 그때부터 녀석은 3일 동안 좁은 집안에서 내내 짜증을 내면서 나를 못살게 굴었다.

외할아버지를 꼭 닮은 짜증에 3일 동안 내내 시달린 우리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떠올리곤 노심초사했다.

최악의 상황은 가족 4명이 순서대로 돌아가며 걸려서 한 달을 격리되는 것이다.

다행히도 5일째 되는 날. 아내가 발열을 시작했다.

 다음 날은 둘째였다.

코로나 바이러스는 마치 에이리언처럼 우리 함선의 동료들을 하나둘 차례로 잡아가고 있었다.

이제 다음은 내 차례가 될 것임이 자명했다.

아니.. 이미 내 몸속엔 놈이 알을 깠고 이제 곧 내 가슴을 뚫고 튀어나올 일만 남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조급해졌다.

원래 먹을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님에도 아프고 나면 먹지 못할 거란 두려움이 식탐을 불러일으켰다.

pcr 검사를 받고 돌아온 날.

나는 늦도록 내 몸속에 먹을 것들을 욱여넣었다.

아이스크림, 초코칩 쿠키, 파운드 케이크, 감자칩에, 옥수수 강냉이, 콜라, 마지막 남은 쌀 국수 등을 두서없이 먹어댔다.

과연 그다음 날부터 나도 아프기 시작했다.

예방책으로 먹은 것들의 경험은 조금의 위안도 되지 못했고 그저 아픈 몸속에 남아 통증을 배가 시켰다.

나는 며칠 동안 감기 종합세트를 돌아가며 앓았다.

고열과 두통과 안통이 다음날은 인후통 그다음 날은 기침과 가래가  차륜전 벌이듯 몰아쳤다.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귓가로 들리던 무수한 소리들이 한순간 거짓말처럼 사라진듯한 초현실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내 세계에서 맛과 냄새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찾아보니 코로나 후유증으로 흔한 증상인데 그나마 짠맛과 단맛은 느낀다는데 나는 그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소리를 잃어버린 사람이 혼잣말을 외쳐보는 느낌이 이럴까..

나름의 발버둥으로 이 3일간 어지러운 몸을 억지로 움직여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었다.

바스크 치즈케이크, 솔티캐러멜과 레몬과 크림치즈맛 마카롱, 마늘빵, 스콘, 짜장, 소고기 카레, 새우튀김, 가지 튀김..다양한 먹거리를 만들었다.

평소 즐겨 먹던 음식들을 두루두루 만들고 탐색했는데 어떤 맛이나 풍미의 흔적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그저 무의미한 질감과 매움만 남았을 뿐이다.

언제나 손만 내밀면 잡힐 것 같이 맛이 생생히 머릿속에 살아 숨 쉬던 평소라면, 레몬맛이나 비빔면의 달고 신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자동으로 침이 고일 법도 한데 왠지 모르게  맛은 상상계에서도 사라져 버렸고 때문에 반사작용도 일어나지 않았다.

맛을 잃어버린 세계에서 맛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음식을 만들고 먹지 않는 순간에는 침대에 누워 앓으며 비몽사몽간에 이 글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동안 도자기 수업을 들었었다

유난히 과시가 심하던 도자기 선생님이 어쩌다가 내 식당으로 와 음식을 먹었는데 그는 다음날 수업에서 내게 은근한 말투로 말을 건넸다.

"나니까 이런 말 알려 주는 건데 사장님 음식 너무 짠 거 있지~나 입도 못 댔잖아"

"아.. 그러셨어요? 말씀하시지 그러셨어요"내가 답하고 다시 식기를 만들었는데 그녀는 그 반응이 시원찮았는지 답답하다는듯한 말투로 말을 이었다.

"요즘 짜게 하면 아무도 안 먹어요. 특히 나처럼 나이 든 사람들은 짜면 그 집 안가. 그거... 몰라요?"

안다.서양 음식과 단백질 위주의 음식을 판매하다 보면 잊을만하면 한 번씩은 듣는 말이다.

나트륨이 일종의 죄악인 사회분위기가 그 말에 힘을 싣어준다.

다른 모든 맛들이 모두 지나 칠정도로 과다한 사회에서 유독 짠맛만 배척당하고 공격받는다.

서양 음식을 판매하는 입장에선 다소 곤혹스러운 일인데 서양 음식의 핵심과 얼개는 지방의 바탕 위에 적극적인 간을 맞춘 단백질과 탄수화물의 단맛으로 켜를 쌓아 올린 것이기 때문이다.

적극적인 간이 없으면 음식의 구조가 성립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 음식이 우리가 늘 먹는 김치나 장류의 발효음식들과 그것을 기반으로 한 음식들보다 높은 염도인가? 그건 또 아니다.

과연 나는 몇 주쯤 뒤 도자기 선생을 한 식당에서 목도하게 되었다.

나는 틈틈이 그녀를 지켜보았는데.. 그날 그녀는 내가 너무 짜다고 생각한 젓갈을 수저로 듬뿍 떠서 쌈을 싸 먹기도 하고, 고추에 시골된장을 듬뿍 찍어서 맨입으로 먹었고, 내겐 밥과 함께 먹어야 간이 맞는 찌개를 맨입으로 안주삼아 술을 퍼 먹는 광경을  없이 선보였다.

살짝 비뚤어진 마음처럼 짝짝이로 뜬 두 눈으로 그 모습을 관찰하고 있노라니 마음 한켠에 궁금증이 봉긋 솟아올랐었다.

도대체 짜다는 기준.. 나아가 맛의 기준은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


70~80년대에 프랑스는 전국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미각교육을 실시했다.

가장 처음 오감을 교육하고, 미각, 후각, 시각, 향미, 감성 등 세부사항을 교육했고 마지막으로 평가와 표현을 훈련시켰다.

교육과정은 인간이 맛을 느끼는 기전이 얼마나 다양한지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인간은 그렇게 간단히 맛을 느끼는 생물이 아니다.

맛은 단순히 5미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제6의 맛의 후보가 얼마나 다양한지만 보아도 5 미는 그저 밝혀진 맛의 분류일 뿐이다.

게다가 맛은 단순히 분류하는 것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고 복합적이고 정서적인 가치판단도 함께 수반된다.

맛에 대한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추려보았다.


첫 번째 - 유전

국가, 문화, 경제적 차이 등.. 선대로부터 내려져 오는 식습관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예컨대 중국인과 동남아인의 90%는 유당을 분해하지 못한다.

당연히 유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을 리도 없고 유제품 맛을 평가하는 능력도 뒤떨어진다.

세대수를 길게 봐도 그렇지만 짧게 봐도 마찬가지다.

산모에게 당근이나 마늘 같은 특정한 음식을 반복해서 섭취하게 한 결과 영아 역시 같은 향의 분유를 더 선호하는 것을 밝힌 연구결과도 있다.

도자기 선생이 된장보다 낮은 염도의 치즈로 만든 까르보나라는 '짜서 입에도 못 대겠다'라고 하면서 실제로 치즈보다 염도가 높은 된장은 막 찍어 먹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추측해 본다.

우리 입맛에는 장류의 염도가 치즈의 염도보다 익숙하다.

게다가 맛과 향 농도와 질감따위도 맛을 느끼는데 영향을 끼친다.

미각을 상실한 후 비빔면과 라면을 여러 차례 먹었는데 오직 매움만 느껴졌다.

매움은 미각이 아니라 통각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인데 문제는 그동안 전혀 맵지 않다고 생각했던 라면들이 매워도 너무 매웠다.

다른 모든 자극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매움의 자극만 더 강하게 느끼는 탓이다.

비슷한 개념으로 맵기를 높였을 때 염도를 더 낮게 느낀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두 번째 - 뇌

노벨상 후보에 여러 번 오른 니콜라스와 찰스 주커 교수는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대뇌 미각 피질에서 5가지 맛의 수용체를 규명해 냈다. 2011년부터는 맛의 처리과정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2015년까지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밝혔다.

1) 맛 분자가 혀의 미뢰 수용체에 달라붙으면 화학신호가 전기신호로 전환되고 뇌의 미각 피질의 담당 뉴런으로 전달되는데  이 뉴런들의 위치는 모두 다르다.

따라서 각 맛의 인지를 담당하는 뉴런에 자극을 주면 그 맛을 느끼지 않아도 그 맛을 느낄 때와 동일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일련의 과정은 맛의 정체성. 즉. 이것이 단맛인지, 신맛인지 등을 분별하는 역할까지만 수행한다.

2) 뉴런이 판단한 맛의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감정과 정서적인 부분을 관장하는 측두엽 내측에 위치한 한쌍의 편도체다.

따라서 편도체를 마비시키면 맛에 대한 선호도 역시 사라진다.

즉 맛을 평가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감성적인 영역이란 것이다.

3) 또 한 가지 중요한 점은 여기까지 밝혀진 모든 프로세스에 작용하는 생체적인 조건이 인간의 지문만큼이나 다양하다.


세 번째 - 생존과 다양성

연구에 의하면 돌고래와 고래는 짠맛만을 느끼고, 판다는 감칠맛, 고양잇과는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인간들도 모두 다른 미각 세계에서 사고 있다.

5 미 중 부정적인 맛에 속하는 맛은 쓴맛과 신맛이다.

쓴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은 미맹이라고 하는데 미국 인구의 25%가 미맹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존 매 쿼드라는 학자는 미맹의 존재 이유를 생존에서 찾는다.

쓴맛에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개체는 독소와 약초를 탐지하고 분별하고, 미맹은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탐색을 수행했다고 이론이다.

(쓴맛이 죽음을 부르는 식재료와 상관관계가 깊은 요소인 탓인지 미맹이 아닌데도 쓴맛을 선호하는 성향은 정신병과도 상관관계를 가진다.-인과관계는 아님-

쓴맛선호는 마키아벨리즘, 나르시시즘, 사디즘의 전조로 발생할뿐더러 이 부류의 사람들은 적대감 또한 높다고 한다.)

또 하나의 부정적인 맛인 산미도 생존과 연관이 있다.

신맛과 신맛에 수반되는 탄산도 과거에는 지나치게 익거나 썩은, 혹은 썩어가는 음식을 알려주는 경고신호였기 때문이다.


5 미 중 긍정적인 맛에 속하는 맛은 단맛과 감칠맛인데 이 역시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단맛은 에너지를 함유한 맛이고, 감칠맛은 단백질의 존재 가능성을 표시하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단맛은 쉽게 질리는 맛이고 감칠맛은 자꾸 당기는 맛인데 그 때문에 스트레스가 증가할 경우 감칠맛은 더욱 강하게 느끼고 단맛은 적게 느끼게 된다.

적게 느끼는 단맛을 더 섭취하여 에너지를 보충하고 많이 느끼는 감칠맛은 적게 섭취하여 소화를 시키는데 덜 쓰게 하기 위함이다.

음식을 맛보는 미각뿐 아니라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도 생존과 연관이  있다.

인간은 단백질이 움직이는 상태.. 혹은 움직임을 암시하는 상태만 되어도 사람들은 그 음식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고 해당 음식을 신선하다고 판단한다.

흘러내리는 달걀노른자나 늘어나는 녹은 치즈를 보면 시선을 떼지 못하는 것은 우리 뇌가 시각적으로 단백질을 탐색하고 추적하고 축적하도록 진화해 왔기 때문이다.


인간들이 공통적으로 긍정하는 음식의 또다른 요소는 바삭함이다..

바삭함은 촉각과 청각으로 느끼는 질감인데

신경 문화인류학자 존 앨런의 저서 <미각의 지배>를 보면 인간이 바삭한 식감을 선호하게 된 이유를 영장류 시절 채집해서 먹던 곤충과 야채의 식감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훗날 농경을 시작하고 화식을 시작한 뒤에도 바삭한 식감은 통곡물의 식감이나, 불에 구운 고기 표면에 형성되는 껍질따위의 질감에서 느껴졌고 때문에  인류의 무의식 속에 바삭함=안전한 먹거리=생존이라는 공식을 형성시켰고 바삭함은 곧 영양가 높거나 신선해서 안전한 먹거리라 각인되어 있기에 누구나 선호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 온도

식당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장면이 있다.

파스타를 앞에 두고 와인잔을 수십 번 빙빙 돌리며 대화하다가 스푼에 포크로 파스타를 열댓 번 빙빙 돌리고 한입 먹고 입을 닦은 뒤 한---참 뒤에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이렇게 한두 시간에 걸쳐서 파스타 한 접시를 먹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게 있다.

행동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일종의 '제의'인 와인잔 돌리기와 숟가락 위에서 포크 돌리기를 거쳤으므로 물리적으로 격감된 맛이 감성적으로 상승했을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음식은 틀림없이 엄청 짜게 느껴질 것이다.

맛에 대한 가치평가는 음식의 온도에 따라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섭씨 17도에서 느끼는 단맛의 최소 농도가 1.5라면 35도에서는 8.5 가량으로 6배 정도 올라간다.

짠맛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맛이 감소해 17도에서 느끼는 짠맛의 최소 농도가 4라면 37도에서는 9.5 정도다.

한마디로 따뜻할 때는 차가울 때보다 2배 더 짜야 그 맛을 인지하게 된다.

쓴맛도 온도가 상승해야 맛을 느끼는 농도가 높아진다.

37도가 '쓴맛 인지 감도'의 변곡점이어서 37도보다 뜨거워지면 쓴맛은 감소한다.

커피가 식으면 쓴맛이 강해지는 이유다.


다섯 번째 - 텍스처

이에는 통각수용체가 없기때문에 음식을 물거나 씹을때의 감각은 이를 제외한 나머진 부위의 감각수용체가 매개한다.

여기에 소리가 감각정보를 보조한다.

음식의 특성이 선호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행해진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실험 전 {음식 맛에 영향을 끼치는 특성}의 순서로 1. 풍미, 2. 시각, 3. 식감을 꼽았다.

그러나 실제 실험 결과로 식감이 32%로 1위를 차지했고 이어 풍미가 27%2위를, 색깔이 16%3위, 형태와 온도가 12%4위를 기록했다.

네 번째에서 거론한 온도도  식감에 영향을 미친다. 가령 온도가 높아지면 점성이 떨어지고 낮아지면 반대로 커진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이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은 개체에 따라 모두 상이하다.

그 차이로 인해 같은 음식의 텍스쳐에 대한 주관적인 표현도 달라진다.

같은 음식을 대하는 개인의 가치판단 차이에 따라.

1꾸덕함, 2바삭함, 3 쫄깃함, 4 부드러움, 5 탱글함 같이 긍정적인 표현이,

부정적으로 느낀 사람에게는.

1 뻑뻑함, 2 딱딱함, 3질김, 4 흐물거림, 5 물컹거림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여섯 번째- 후각

풍미란 무엇일까? 사람들이 흔히 '맛있다'라고 느끼는 것이란 사실은 대개 풍미를 말한다.

고추나 멘톨 등 3차 신경을 자극하는 것을 제외한다면 코를 막고도 남는 것. 그것이 맛이고, 나머지는 모두 풍미에 속한다. 즉 풍미란 후각에 속하는 영역인 것이다.

후각세포 끝의 후각 섬모에는 냄새 수용체 단백질이 냄새 분자를 붙잡는다.

수용체 단백질의 종류는 1천 종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냄새의 종류는 5천 종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맛의 가치평가에 있어서 미각보다 후각이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이유다.

전비강은 외부로부터의 냄새를 맡고, 후비강은 내부로부터의 냄새를 맡는다.

우리가 혀로 느낀다고 착각했던 정보의 다수는 실제로는 후비강을 통해 흘러 들어오는 정보들이다.

음식을 삼킬 때 휘발성 분자들이 입과 코 안쪽으로 동시에 흘러 들어가 뇌에 작용하는 것이다.

2004년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와 린다 벅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음식 섭취에 앞서 냄새로 음식에 대한 가치평가를 선행한다.

냄새 성분이 수용체에 붙잡히면, 냄새 성분 정보는 후각 중추가 있는 대뇌 측두엽으로(미각 피질과 연결된) 모인 후 종합분석 과정을 거쳐 인식되고 저장된다.

즉 후각으로 형성된 선입견이 맛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당연히 개인적 경험의 차이에 의해 동일한 음식에 대한 가치평가는 개체별로 상이하게 나타날 수밖에 없다.

가령 산초에 대해 안 좋은 기억이 있는 사람은 산초 향만 나도 맛을 보기 전에 맛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내려버릴 수도 있다.


일곱 번째 - 경험

맛의 가치평가는 유전자와 인생 경험 사이에서 펼쳐지는 변증법이다.

경험을 통해 점점 더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되고, 인체의 노화에 따라서 점점 미각과 후각 등의 기능이 퇴화됨에 따라 뇌에서 혐오감을 담당하는 신경세포들의 네트워크도 변하게 된다.

혐오의 맛인 쓴맛조차도 부드럽거나, 좋은 맛으로 느끼는 가치판단의 변화가 생기도 한다.

경험을 통해 모순을 수용하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로빈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전체 미뢰의 사멸과 생성의 평균 사이클 기간은 4주다.

미뢰는 지속적으로 사멸하고 생성되고 있으며 따라서 맛의 정체성 판별과 맛의 가치 판단 역시 지속적으로 변화/퇴화/진화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훈련에 따라서 맛, 향의 평가하는 능력은 향상될 수 있다.

하지만 것을 객관적인 지표로 삼는 것은 곤란한 일이다.

과학자들이 와인 애호가들과 와인 제조업자를 상대로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그들이 와인을 평가하는 방식과 와인에 대한 인지능력은 거의 대부분 비과학적임을 밝혀냈다고 한다.

일례로 전문 와인감별사들에게 붉은 염료를 태운 화이트 와인을 제공했을 때 그 와인의 정체가 레드와인이 아님을 알아차릴 확률은 0%에 수렴했다.

비슷한 실험이 또 있다.

캘리포니아대 뇌과학자들은 뇌 스캔을 분석해 보상 중추의 혈류량을 관찰했는데 같은 음식을 섭취해도 정보에 따라 다른 혈류량이 관찰되었고 실험 참가자들의 평가도 극명히 갈렸다.

<비싼 와인>이라는 정보를 주었을 때 같은 와인도 더 맛있게 느꼈고, <코카콜라>라는 정보를 접했을 때 더 청량하고 더 맛있다고 판단했으며 냄새에 관련된 실험에서도 땀에 젖은 양말 냄새 따위의 악취를 <치즈향>과 같은 긍정적 언어로 표현해 주자, 대뇌피질 안쪽의 뇌섬엽의 변화가 악취를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을 밝혀냈다.


여덟 번째 - 그 외

1) 모양에도 맛이 있다. 둥근 맛, 각진 맛, 뾰족한 맛.

가령 뾰족한 맛은 청량감을 주는 탄산을 의미한다. 대부분의 탄산수 브랜드들과 많은 맥주 브랜드들의 로고가 별 모양이나 삼각형인 이유가 그 때문이다.

둥근 맛은 단맛과 연관이 있다. 실험에 의하면 접시의 모양이 둥근 경우 음식이 더 달콤하게 느껴졌으며 초콜릿 브랜드 캐드버리는 밀크 초콜릿 모양을 둥글게 바꾸고 나서 더 달고 부드러워졌다는 평을 받았다.


2) 색에도 맛이 있다.

계절별로 국가마다 주로 먹는 음식에 따라 색의 맛은 다를 것이다.

여름의 빨강은 달고 시원한 맛, 겨울의 빨강은 맵고 얼큰한 맛.

음료에 쓰인 빨강은 더 시원한 맛, 국물요리에 쓰이는 빨강은 더 뜨거운 맛이다.


3) 음식과 용기의 색 대비도 음식에 영향을 준다.

핫초코는 오렌지색에 담겼을 때 더 맛있다고 느껴졌고 카페라테는 흰색에 담겼을 때,

빨간 음식은 흰색 접시에 담겼을 때 더 달콤하게 느껴졌고 빨간 접시는 회피 동기를 이끌어내어 더 빨리 질려서 더 적게 먹게 만들었다.

음식과 용기의 색 대비와 음식의 섭취량을 알츠하이머 요양원 환자들을 상대로 실험한 결과.

실험 참가자들은 색 대비가 강렬할수록 음식은 25%, 음료는 84% 더 섭취했다.


4) 음식에 어울리는 소리에 따라 맛을 다르게 평가한다.

부드러워야 한다고 기대하는 음식에는 소리가 나면 안 되고 반대의 경우에는 어울리는 소리가 나야 한다.

찰스 스펜스 교수의 실험에 의하면 바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눅눅한 감자칩을 먹었을 경우 맛에 대한 만족도가  더 올라갔다고 한다.


5) 기분에 따라 맛을 다르게 평가한다.

스위스의 마르탱이라는 레스토랑의 테이블에는 손님들이 양념 통인 줄 알고 들어 올리면 젖소 울음이나 새소리가 나는 통이 비치되어 있다. 손님들은 웃고 나서 먹은 음식을 더 맛있게 느꼈다.

 

6) 기대감도 맛에 영향을 준다.

녹차 아이스크림이나 민트 초코에 대한 혐오도 색에 대한 기대감을 벗어나기 때문이다.

맛있다고 소문난 식당에 실망하기 쉬운 까닭도 기대감이 너무 컸기 때문일 수도 있다.

스페인 풍경 좋은 무가 리츠의  안도니 셰프는 식당으로 오는 길의 풍경까지도 식사의 과정이라고 주장하는데 이 역시 기대감이 맛에 영향을 준다고 믿기에 할 수 있는 이야기다.


7) 비만도도 맛에 영향을 미친다.

코넬대학의 로빈 댄 교수와 나다 이붐라드 교수는 제6의 미각으로 지방 맛을 내세우는데 연구에 따르면 지방을 분별하는 미뢰가 따로 존재하며 이것에 대한 민감도는 당연하게도 개체마다 차이를 보인다.

지방을 느끼는 미뢰가 적거나, 민감도가 떨어지는 사람일수록 비만이며 정상인도 비만이 되면 다른 맛을 느끼는 미뢰를 포함한 전체 미뢰의 25%가 소실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결론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는 맛의 영역은 각각 다르고 한계치, 수용치 역시 모두 상이하다.

살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지만 "나는 맛을 잘 몰라" 이야기하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살면서 수많은 음식 리뷰를 보았지만 "내가 잘 모르지만.." 이렇게 적은 리뷰 역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음식맛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모두 어딘가 확신에 차있다.

처음의 궁금증으로 돌아가 맛의 기준점이 어디에 있기에 다들 그렇게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까?.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맛은 일상적으로 접할뿐더러 철저히 주관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음식 맛에 대해서만큼은 잘 안다고 자부한다.(기묘하게도 주관적인 영역임은 모두가 인정하는데 자신이 느낀 맛을 이야기할 때는 자신이 객관의 기준인 듯이 이야기한다.)

하지만 본인의 생각이 어떻든, 또 그 생각이 맞건 틀리건 관계없이 타인을 가르칠정도의 입장을 취하려면 언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이 느끼고 판단한 것을 언어로 설명해 낼 수 없다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

아니 아무리 자신이 느끼는 것을 잘 설명할 수 있다한들 타인과 자신이.. 아니 우리 모두가 각자 다른 맛의 세계에서 살고 있음을 인지하고 인정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고수는 '감귤향의 신선한 향기가 나는 향채'이고, 누군가에겐' 비누 맛이나 악취가 나는 혐오스러운 풀'이다.

누군가에게 브로콜리는 그저 쓴맛 나는 녹색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또한 음식에는 적절한 섭취시간과 섭취 방식이 있고 그 기준에 맞춰야 비로소 적합한 맛을 느낄 수 있음 역시 인지해야 한다.

몸이 아프면 알려진 의학적 정보를 토대로 과학적인 추론을 내리듯이 맛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과학적인 추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내 주관적 입맛은 결코 객관화 될수 없고 타인의 맛의 세계는 내가 짐작하기 어려운 영역임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상을 벗어나 현실적으로 이런 긴 이야기는 언제나 그렇듯 별 설득력이 없다.

맛의 세계에서 언제나 설득력이 있는 것은 과학보다 감성과 권위다.

복잡하고 힘들게 최첨단 의학장비로 검사하는것보단 손목만 슬쩍 잡아보고도 내 몸속을  환히 들여다보며 "자네는 양기가 부족하군 내가 3대짬뽕집을 알려줄터이니 가서 양기를 채우게" 라거나 "어허 양기가 과해서 몸의 독소가 피부로 표출되었군 저기 용한 메밀국숫집에 가서 3일정도 양기다스리면 피부가  가라앉을게야" 이런 이야기를 듣는편이 훨씬 간편하고 매력적이다.


어떤식이든 고객을 설득하는 것은 장사꾼이 반드시 해내야 할 임무다.

환자가 정확한 진단과 약을 원하는데 "신경성이니 스트레스 받지 말고 운동열심히 하고 잠이나 푹 주무시게"라거나 "뭘 입만 열면 위장 약을 달라는거야.야식부터  끊고 술담배 줄이라니까" 따위의 이야기는 진실일지언정 설득력이 없다.

런 병원들만 찾아 다녔는데 늘 파리가 날렸고 끝내는 못 버티고 망해버렸다.

손님이 듣고 싶어하는 말만 할 필요도 있다.

공감과 이해는 설득의 기본이니까..

따라서 대중을 상대로 음식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의 선호 영역 안의 맛인 닷맛, 짠맛, 감칠맛을 중심으로 맛을 구성하고, 혐오의 영역인 신맛, 쓴맛은 조심스럽게 배치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나머지 긍정적인 감각들을 고려하고 충족시켜야 한다.

그렇게 해서 보다 많은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래본다.


다시 맛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

맛이 내게로 돌아오는 날 누군가가 나의 손목을 잡고 반개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며 이렇게 이야기 해 주었으면 한다.

"자네 원기가 많이 상했군.아주 팍 상해버렸어..어서 인근 크리스피크림에서 도넛 한더즌을, 베스킨 라빈스에서는 하프갤런을 처방받게.잊지 말게 꼭 혼자 다 먹어야 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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