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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아빠 Oct 06. 2022

층간소음을 해결하는 가장 쉬운 방법

- 층간소음 지우개-

키워준 어머니는 참 예민한 사람이었다.

옆방에서 책장 넘기는 소리에도 잠이 깨는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밤의 자유시간'을 누리기 위해 나는 유령 같은 발걸음을 체득했다.

그래서인지 내평생 층간소음은 나완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고 걸음마를 겨우 시작하자 아랫집에서 우리 가족을 죽일 듯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아랫집 남자의 협박 전화에 일터에서 집까지 위험하게 오토바이를 달려 왕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심지어 아기가 아침에 눈을 떠 침대에서 내려와 2M 정도 되는 거리를 기어갔을 뿐인데 그 즉시 협박하는 인터폰이 걸려곤 했다.

그건 아랫집남자는 단 1분의 아주 약한 소음도 견딜 생각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아기에게 기지 말라고 말할 수 없는 노릇이었기에  우리는 몇 개월을 불안에 떨다가  큰 맘을 먹고 다시 1층 집을 구해서 이사 갔다.

두 번 다시는 1층 이상의 거주지에서 살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1층 생활은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었다.

똑같은 브랜드 아파트였지만 이전에 살던 아파트와 달리 새로 이사 간 집은 옆집의 티브이 소리 전화 벨소리가 들리지도 않았고 윗집도 무척 조용했다.

행복하고 평온한 몇 해가 지나갔다.

그런데 어느 겨울 크리스마스가 끝난 지 이틀 뒤 아침에 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어보니 젊은 엄마가 딸아이와 함께 서 있었다.

그녀의 손에는 내가 참 싫어하는 류의 케이크 들 있었다.

위층인데 지난 보름간 공사를 했던 것이 미안했었고 오늘은 이사를 할 예정이라 인사를 하러 왔단다.

그러고 보니 지난 보름간 공사 소음으로 늘 시끄러웠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었단 것을 깨닫았다.

신경도 안 쓰고 있었고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크리스마스 직후라 케이크가 여러 개 있다는 핑계로 케이크는 사양했는데 그녀는 사양하는 제스처를 취하는 내 손바닥으로 케이크 상자를 힘을 주며 밀어 넣었다.

"저희 딸이 좀 시끄러울 수가 있어서요"

애들이 시끄러운 게 당연하니 아무렴 신경 쓰지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케이크를 한사코 사양는데 그녀는 끝까지 케이크를 밀어서 넘기고는 갔다.

나는 그 케이크가.. 아니.. 그 케이크 상자를 통해 전해지던 이중의 압력이 불쾌했다.

이중의 압력..

케이크는 그녀들이 만들 층간소음에 대한 댓가였다.

그걸 내게 반강제로 수용시킨 것이다.

불쾌한 감정은 순식간에 고통으로 변했다.

그날 나는 도무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새벽 5시까지 쉼 없이 이어지는 소음에 정신이 나가버릴 지경이었다.

찬바람에 덜덜 떨며 우리동 공원 앞 분수대올라가서 위층을 보니 새벽 두 시에도 아이와 아빠가 펄쩍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고 새벽 다섯 시에도 아빠는 가구를 놓을 위치를 고른다고 쉼 없이 가구를 끌어서 옮기고 있었다.

도무지 새벽까지 자지 않고 쿵쾅대는 그 가족들 덕에  잠을 한숨도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잠을 깨는 요인은 이른아침부터 시작되는 윗집의 무지막지한 드릴소음이었고 그때마다 내 귀엔 심장소리가 들렸다.

쿵쾅 쿵쾅..

고심하다 선물을 사 들고 찾아가 그간의 고통과 사정을 설명하고 배려를 부탁했더니 묘하게 불량하게 생긴 아이 아빠가 풀어헤친 가슴에 담배빵이 지져진 흉터를 자랑스레(?)드러낸 채  꼭 저랑 비슷하게 생긴 친구들과 우-몰려나와서 말했다.

"당신이 뭔데! 우리에게 찾아와서 이런 말 할 권리 없어요. 우린 살던 대로 살 거니까 알아서 견뎌보시든지"

쿵쾅-쿵쾅- 또 심장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화를 참고  폭발할 듯한 발작을 억누르고 심호흡을 한 뒤, "애가 뛰는 건 막기 힘드니  당연하게 생각하겠다.

다만 한 가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자는 시간만큼은 정적인 활동을 해 주십사 부탁한다"했다.

실제로 어떻게 할 텐가. 아이들인데 뛰지 말라고 한들 먹힐 리가 없다.

또 낮시간의 활동은 당연한 윗집의 권리다.

못하게 하는 것은 엄연히 아랫집의 횡포란 생각이었다.

하지만 윗집 남자는 그마저도 무시하고는 

"남의 사생활에 간섭 마시라"는 답을 했다.

날 윗집 남자와 친구들은 내내 지속적으로 보복성 소음을  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는 것은 없었다.

밤까지는 아이와 아빠가, 새벽에는 아빠가 쿵쾅대고 아침이면 아이가 뛰어다녔다.

24시간 편의점처럼 이 인간들은  도무지 쉬질 않았다.

그들의 쿵쾅대는 소리가 들리 때면 신기하게도 가슴에 있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쿵쾅-쿵쾅-

견디지 못한 나는 그 추운 겨울날 낮이면 아이들과 공원이나 놀이터를 헤매고,

주말이면 어머니 댁의 좁은 단칸방에서 자고 왔다.

어머니댁은 더 시끄러웠지만 그곳은 원래 그런곳이고 내집도 아니니 괜찮았다.

주말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려면 두려울 지경이었다.

행복한 내 집이 더는 내 집이 아니라 윗집의 부속물 같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하루아침에 내 집을 강탈당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남들이 흔히 하듯 경비실에 전화해서 항의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거나 윗집과 전쟁을 벌여 내 아이들을까지 불안에 빠지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내 스트레스를 아이들이 같이 인지하게 될까봐 엄청 조심했다.

그래서 힘들어한다는걸 내색하지 않기 위해 더 많은 심력을 썼다.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소음에 대해 아무런 의식도 하지 않는 듯했는데 그게 참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나는 견딜 수가 없었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했다.

빠른 속도로 살이 빠지고 아무것도 할 수 없으리만치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수많은 마음고생의 날들을 보내다가 마침내 방법을 찾았다.

만화:시바아저씨


지하철이나 만원 버스에서도 완벽한 집중력을 발휘해 공부를 하거나 깊은 잠에도 빠질 수 있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왜 거기서는 마음이 편한데 그 소음들보 상대적으로 조용한 윗집 소음은 나를 괴롭게 하는 것일까..

첫째, 바로 정적의 시간 때문이었다.

소음이 멈추지 않고 들리는 것이 아니라,

정적의 사이사이에 예기치 않게 들리는 것이 고통의 주원인이었다.

둘째, 공간에 대한 인식 때문이다.

만원 지하철의 소음은 환경으로 인식하는데

집은 외부 환경과 분리되어, 환경설정을 스스로 컨트롤하는 사적인 공간이란 개념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외부의 소음이 내 공간에 대한 침략이라 생각된다.

나는 평생을 아파트에서만 살았는데 어린 시절 살던 아파트들은 지금보다 더 허술하고 기술력이 모자라 소음이 더 심했다고 한다.

게다가 또래 아이가 없는 집이 없다시피 했다.

왜 그때는 층간소음이 사회문제가 되지 않았고 나도 인식해 본 적이 없을까?

윗집에서 소음이 나는 건 당연하니까 이상한 일이 아닌 자연스러운 일이라 인지했기 때문이다.

나완 달리 아이들이 힘들어 하지 않는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들이란 주어진 것들을 받아들이는데 누구보다 뛰어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층간소음의 고통'이란 환경에 대한 인식과 적응력 때문에 생기는 힘듦의 한 종류였다.

결국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내 나약함이 만들어 낸 허상의 고통이었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층간소음은 환경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싹수없고 불량한 윗집 남자도 세상이라는 환경의 일부였다.

내가 무르고 나약하니 윗집 사람들이란 외부요인이 나를 흔들고 급기야 무너뜨린 것이다.

그 점이 화가 났고 심지어 비참한 감정까지 들었다.

그 생각이 들때면 내 마음은 털썩 주저 앉아 버리곤 했다.

그러나 계속 이렇게 나약하게 뷔페 트레이의 순두부처럼 있을 수 없었다.

지분거리며 포크를 찔러대는 외부의 압력에 수동적으로 고통스러워 할 수는 없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야만 한다.

정적 사이를 비집고 예기치 않게 나타나는 소음이란 스트레스에 저항력을 키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찬물 샤워였다.

순두부를 얼리기로 한 것이다.

상탈에 반바지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한 빔호프

처음엔 냉수로 샤워를 하다가

나중에는 냉수로만 샤워를 했다.

얼마 뒤부터는 샤워가 끝나면 깜깜하게 불을 끈 방 안에서 창문을 활짝 열고 두 팔을 벌려 물기 뭍은 몸으로 한겨울 밤바람을 맞았다.

그 상태로 뺨이나 몸을 때리기도 했다.

초반에는 냉수욕을 오래 하면 끝낸 뒤에도 온몸이 힘들고 통증이 오래 지속됐었다.


반바지만 입고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한 네덜란드 탐험가 빔 호프는 "냉기에 노출되면 일상 속의 모든 문제가 차분히 가라앉고 훌륭한 정화능력이 발휘된다"며 콜드 피를 예찬다.

또 사회적으로 성공한 많은 사람들이

강해지기 위해서 찬물 샤워를 한다고 하고,

온몸과 정신이 선명하게 살아나는 고양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나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인지 딱히 그런 적이 없다.

집중할 거리를 만드는라 그렸던 만화 '소시지와 귤'

내겐 찬물 샤워는 늘 하기 싫고 힘든 일이었기에

원치 않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으로 적절했다.

따뜻한 물이라는 편안함을 스스로 선택하지 않고 <곧 닥쳐올 싫은 일-스트레스>인 냉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그 <스트레스>를 '당연히 그러한 것'이라 생각하려는 훈련은 층간소음을 이겨내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윗집 사람들의 동선을 느끼고 음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럴 때면 "이것은 환경이다. 윗집에 사람이 살고 있는 공간이라 필연적으로 수반되는 환경적인 소리일 뿐이다.", "외부압력에 흔들리는건 내 삶에 집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집중해야 한다"는 말들을 되뇌었다.

적으로 외부요인을 인식하려는 의식을 흐트러뜨리고 계속 집중할 거리를 찾으려  노력했다.

애들이 잠든 후에는 소음이 더 또렷해지기에 쉽게 집중할 수단으로 단순노동인 그림을 그렸다.

나는 차츰 덜 힘들어하게 되었다.

나약해서 하잘것 없는 외부압력에 손 쉽게 날이 서 버 내 감각을 깎고 깎디게 만었다.

그러고 보니 그랬다.

'강해진다'는 것은 달리 '무뎌진다'혹은'익숙해진다'는 것이다.


내가  기울이는 동안 외부환경도 일부 개선이 되었다. 

최초에 <자는 시간만>이라고 의사를 분명히 밝힌 뒤에 한 번도 연락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어느 정도 뒤부터는 윗집도 일말의 양심을 발휘해 자는 시간에는 비교적 조용히 해 주게 되었다.

결국 나는 층간소음을 해결했다.

없애지 못하니 저항력을 키워 적응해 버린 것이다!

이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내가 얻은것은 다름 아닌 '타인이 감히 어쩔 수 없는 나' 즉 <자유>였기때문이다.


얼마 관사에 사는 지인 부부가 직장동료인 아랫집 신혼부부가 층간소음 때문에 매일 항의를 해서 힘들어 하기에 내가 조언해 주었다.

"미안하지만 층간소음은 없앨 수 없는 필연적인 환경 요소니까  찬물 샤워부터 시작하면서 마음 수양을 쌓아 적응하시라 전하세요"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층간소음은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없앨 수 있다고 이기적인 생각을 하니 층간소음 흉악범죄 사건마다  "윗집을(혹은 윗집 아이를) 살해하고 싶은 심정은 당연하다"는 악마적인 댓글 추천수가 몇천 몇만씩 찍힌다.

그 말은 사실 틀리지 않다.

특히 윗집에 아이가 있다면, 층간소음을 없애는 유일한 방법은 윗집의 생명체를 '없애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안 당해보면 모른다" 고 하는데 나는 양쪽의 입장을 모두 경험하서 더 잘 안다.


2~30년전 사람들이 더  허접한 아파트의 더 큰 층간소음에도 분쟁이 일어나지 않았던 또 다른 이유는 당시의 사람들이 환경을 받아들이고 적응하는 삶에 익숙했던 까닭다.

그 시절엔 습하면 습기를 참고 환기를 더 자주 시키고 빨래가 안 마르면 기다리고 공기가 나쁘면 그냥 물 자주 마시고 삼겹살 구워 먹고 더우면 1~2대뿐인 선풍기앞에 모여 앉거나 창문 열고 부채질이나 좀 하고 못 견디겠으면 돗자리들고 하천가나 계곡에 가서 발 담궜다. 추우면 바위처럼 무거운 목화이불밑에 짓눌리거나 아랫목에 모여서 같이 잤다.찬물은 보일러가 물을 데울때까지 기다려서 쓰고 매일 못 씻으  주중엔 세수와 손발만 씻고 주말에 목욕탕에서 때를 밀었다.

반면 지금은 개개인이 자신이 사는 공간의 모든 환경을 통제하려 다.

습하면 제습기를 돌리고 더우면 바람막이를 입고 에어컨을 틀고 빨래는 즉시 건조기에 넣어 바로 말리고 추우면 보일러를 내 맘대로 튼다.

온수는 빨간색쪽으로 레버만 돌리면 지체없이 나온다.

매일매일 샤워하는게 당연하고 작은 찝찝함도 견지 않고 즉시 상쾌함을 손에 넣는다.

사람들은 자신의 공간안에 있는 모든 환경을 통제할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

그것이  층간소음 분쟁의 원인이 되었.

물론 서로 배려하는것이 우선이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아이가 있다면 한계치는 더 낮다.

타인을 통제할 수 없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층간소음은 컨트롤 할 수 없다.

비가 오는 걸 막을 수 없고 눈이 오는 걸 막을 수 없듯 층간소음도 운 나쁘게 찾아오면 적응해야 하는 환경의 일부다.

이 해법은 층간소음의 고통을 겪는 모두가 싫어할 해법일지 모른다.

사실 너무 어려운 일다.

하지만 장담컨대 이게 가장 쉬운 해법이다.(달아날 수 없는 경우)

가장 쉬운 방법인 분노와 증오를 표출하는것은 해법이 아니라 문제를 심화시키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영화 매드맥스:분노의도로

여담으로.. 아직도 찬물 샤워를 한다.

이제 층간소음은 없지만 내 삶은 아직도 불안하고 편안한 순간은 아직도 요원하기 때문이다.

이제 곧 겨울이니 찬물 샤워가 빛을 발할 것이다

사실 나는 매일 달콤하고 편안한 온수 샤워를 하고 싶지, 찬물 샤워는 하고 싶지 않다.

그때마다 영화 매드 맥스의 캐릭터 임모탄 조의 준엄한 음성이 떠오른다.

"따뜻한 물에 중독되지 마라! 따뜻한 물은 너를 나약하게 만들고 끝내 무너뜨릴 것이다"

어쩌면 콜드 테라피란 고통이 없어서 고통 속으로 뛰어드는 팔자 좋은 일이다.

몇 주 전 심신 복합적으로 극심한 고난에 시달렸던 날만큼은 온수로 샤워했다.

나달 나달 해진 정신과 몸에 찬물 샤워라는 가벼운 스트레스조차 얹고 싶지 않았고 온수 샤워로 몸과 마음을 일부라도 회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따뜻한 물에 오래 샤워하고 침대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서 손상된 기력을 보존했다.


냉수욕이 일상인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의 냉수욕과 지금의 냉수욕은 엄연히 다르다.

스무 살 때 편도 버스비만 달랑 들고 집을 나왔는데 그 이후로 7년 정도를 찬물로만 샤워했다.

한 겨울에 한파가 와도 문도 안 닫히는

너절한 공간에서 매일 찬물로 샤워를 하고 살았다.

찬물 샤워가 일상이 되니 군대에서도 종종 찬물로 샤워를 했다.

영하10도 이하의 한겨울에 창문을 열고 찬물로 샤워를 하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데.

그걸 보고 뜨거운 물이 나오는 줄 알고

따라서 샤워를 하다가 봉변을 당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대한 후에도 빈털터리로 다시 혼자 살았고

때문에 수년간 냉수욕만 했다.

얼음장이 된 몸으로 방에 들어 가 잠을 청하려면 전기주전자로 끓인 물을 페트병에 넣어 끌어안고 웅크려야 했고 자다가 물이 식으면 추위에 잠을 깨서 다시 물을 끓여 넣고 잠을 청했다.

덕분에 매일 당연히 냉수와 한기를 맞이하고 그 속에서만 지냈지만 빔 호프의 말처럼 그것들 내게 정화, 맑은 정신, 강인함 따위를 준 적 한 번도 없다.

그저 항상 싫고 힘들기만 해서 피하고 싶은 고통일 뿐..

그래서 온수가 나오는 집으로 이사 간 날 이후로부터 층간소음을 겪기 전까지는 십수 년간 단 한 번도 찬물로 씻거나 찬물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

매일 콜드 테러피를(?)하고 냉수욕만 하고 살던 그 7년간 나는 강해졌을까?

전혀 아니었다.

본인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강제로 가해지는 고통은 그저 고통일 뿐이다.

기약 없고 지속적으로 가해지는 고통은 절망이 되기 쉬워서 되려 사람을 망가뜨릴 가능성이 더 높다.

희망을 전제로 한 고통이혹은 선택한 고통 한시적인 고통만이 사람을 고양시키고 또 강하게 만든다.

고통을 바라보는 인식의 차이도 결과의 격차를 크게 벌린다.

일시적인 고통을 자신을 강하게 만들기 위한 자극으로 생각하고 나아가는 사람과

만성적인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람은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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