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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n Placid Jul 12. 2020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선천성 그리움 / 떠나가는 마음


선천성 그리움

​사람 그리워 당신을 품에 안았더니
​당신의 심장은 나의 오른쪽 가슴에서 뛰고
​끝내 심장을 포갤 수 없는
​우리 선천성 그리움이여
​하늘과 땅 사이를
​날아오르는 새떼여
​내리치는 번개여

​- 함민복
[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서로를 품에 안고도 심장을 포갤 수 없고, 그리움은  선천적인 것이라 끝내 메울 수 없는 것이라면, 사람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일은 참 허망하고 애련한 것이구나.


그리움은 선천적인 것  / Frankfurt, Germany


요즘 당신이 참 보고 싶다. 그래. 늘 당신 생각을 켜놓은 채 살지. 어떻게 안 그러겠니. 떠나려고 하니 더 그렇더라. 같이 하고 싶었던 것, 들려주고픈 이야기가 가득한데. 만져지지 않는 네 마음은. 닿을 듯 말 듯 달막이는 내 마음은. 차라리 이 마음 모두 닳아서 어서 사라져 버렸으면.

난 당신에게 이름만으로 존재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아. 거나하게 한상 가득 마음 한번 차려주지도 못했으니. 정작 정성스레 차린 마음을 내어주고 싶을 땐, 늘 서로 다른 경계 안에 있었고. 못내 아쉬워. 한번 영글어보지도 못한 당신에 대한 마음을, 이렇게 허망하게 보내야 하는 것만 같아서. 농익은 마음을 보여줄 기회가 영영 없어진 것 같아서. 뭐가 그리 급했는지. 나는 벌써 또 다른 경계 안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어.

내 감정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는 건 쉽지 않았어. 무척이나 오랫동안 나의 감정을 감추고 부정하며 틀린 채로 살아왔기 때문에. 태양 빛에 얼굴이 그을렸다고 태양에게 화를 내 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지. 사람 또한 그래. 사람을 알고 사랑을 하다 마음을 데이더라도, 마음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노릇이지. 당신을 속에 두고, 몰래 마음을 쓴 것에 대한 회한으로 이따금 입술을 감쳐물겠지만, 당신을 만나고 인생이 다시는 전과 같지 않게 되었으니, 그걸로 된 거야. 당신으로 인해 봉곳 솟아올라 제법 도도록한 마음을 가져봤고, 당신이 있어 한때 눈부신 삶을 살았으니, 그걸로 된 거야.


그걸로 된거야 / Frankfurt, Germany


화가는 눈에 보이는 것에 너무 빠져 있는 사람이어서, 살아가면서 다른 것을 잘 움켜쥐지 못한다는 말. 나 또한 손에 쥔 것이라곤 연필과 붓뿐. 사람을 많이 놓치고 살았지. 사랑은 믿을만한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그리움은 쉽게 왔다가 또 가고, 어차피 선천적인 것이라면 끝내 채우지 못할 공산이 크기 때문에. 사랑에는 실체가 없고, 연정을 품은 마음 또한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알 길이 없지. 그래서 쓸데없이 진지해지거나, 공들이고 싶지는 않았어.

아무리 비싼 음식도 간이 맞지 않으면 맛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도 간이 맞아야 한다더라. 하지만 처음부터 간이 맞나. 맛보면서 자꾸 맞춰가는 것이지. 사람이든 음식이든 그렇게 간을 맞춰가면서 사는 것이라고 하더라. 이제는 그렇게 담백하게 살려고. 낭창낭창. 흔들려도 부러지지 않고 탄력 있게. 사람들과 간을 잘 맞춰가면서.


그렇게 간을 맞춰가며 사는것 / Frankfurt, Germany


떠나는 마음은 그래. 고적한 나이가 되었구나. 당신을 두고 가는데도, 이 묵직한 마음의 무게는 이전의 것과는 전혀 달라. 사무치게 가슴을 칠 만큼. 내 몸은 이쪽 경계를 넘어 가지만, 마음은 경계를 모르지. 꽃처럼 말이야. 꽃은 이쪽과 저쪽을 모르니, 경계에서도 피어나고 그 꽃잎을 온 사방으로 떨구지. 내 마음도 한참을 경계를 서성이겠지. 이런저런 감정들이 이쪽 경계를 자꾸만 기웃거리기도 할 테고. 무엇보다 그리워하게 될 것. 모든 감정들이 그 자리에 있는 것. 그것을 궁금해하면서.


그런 말을 했었지. 시간은 제 속도를 잃지 않고 잘도 가는데, 나만 멈춰 서서 무얼 하며 있는 건지. 이렇게 뒤처져선 어떻게 시간을 다시 따라잡을 수 있을지. 가끔 눈앞이 아득해지곤 해. 벼랑 끝으로 내몰렸는데도 간절함이 없는 느낌이랄까. 붙잡고 싶은 것이 아무것도 없어서인지, 아니면 모든 걸 다 얻지 않고서는 차라리 아무것도 갖지 않겠다는 치기 어린 아집인지.


갖지 못한 것보다, 어쩌면 가진 게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우린 항상 손에 쥐어보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나 봐. 나 역시도 그래. 그래서 많은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각오를 두고서 떠날 준비를 해. 많은걸 잃고 나서야 진정 귀한 것이 홀연히 나타날 거라는 얼척없는 기대를 하면서. 이제 겨우 시작인데, 모호하고 두려움이 서릴 수밖에. 차라리 오롯이 두려움을 받아들이며 두려운 마음의 주인행세를 하고 있는 거야. 그냥 눈감고 버티다 보면 나긋나긋해지는 날들이 오겠지, 하고.

앞으로의 삶이, 실타래 엉키듯이 헝클어져 버릴지도 몰라. 묶인 매듭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게 삶이니까. 생각대로 되지만은 않는 게 인생이니까. 이따금 쉽사리 풀리지 않는 매듭을 만나더라도, 살고 싶어 하면서 살아가려고. 그래도 사는 게 재미가 있으니까. 매끄럽기만 한 삶이라면, 원하던 것을 모두 갖게 된다면, 참 재미없는 세상일 테니까.


마음은 경계를 모르지 / frankfurt, 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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