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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민용 Nov 11. 2020

장애인도 딱 한 번 삽니다

장애인 보조견 취재를 마치며


날이 좋은 10월의 어느 날이었습니다. 

저는 여느 때처럼 따릉이를 타고 한강 자전거도로를 달리며 집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햇살은 따뜻했고, 얼굴을 스치는 바람은 적당히 시원했습니다.

옆을 보니 저처럼 햇살을 받은 강물이 반짝이고 있었고, 그 위로는 푸른 하늘이 그린 듯 펼쳐져 있었습니다.


문득 지금 아주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런 좋은 날을 보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 한편에서 방향 없는 감사함이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다 생각은 장애인으로 옮겨갔습니다.




제가 상대적으로 자주, 장애인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함께 살았던 경험' 때문일 것입니다.


어린 시절, 제가 살던 동네에는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살았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꼬꼬마 마을버스를 늘 같이 타고 다녔습니다. 그 친구들을 처음 마주쳤을 때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어머니와 마을버스를 탔는데, 몇 정거장 뒤 시각장애인 친구들이 올라탔습니다. 눈이 달랐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그 모습에, 저는 그 아이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조용히 혼을 내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마을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어머니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다시는 저 아이들을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예의가 아니다.' 

어머니의 이 말에, '어차피 안 보이는데 쳐다봐도 모르지 않냐'라고 되물었다가 더 크게 혼났던 기억이 납니다.


그 뒤로 제가 이사 갈 때까지, 그 친구들과 저는 늘 마을버스에서 마주쳤습니다. 몇 년을 함께 하다 보니, 더 이상 신기하지 않더군요. 안내방송이 없던 시절, 그 친구들은 손으로 무언가를 세며 자신이 내릴 차례를 귀신 같이 알아맞혔는데, 가끔은 서로 장난을 치다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바보야, 너 때문에 놓쳤잖아' '놓친 네가 바보지' 이렇게 서로 티격태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엿들어 보면, 나와 별반 다를 게 없었습니다. 그렇게 자연스레, 우리가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게 됐습니다.


우리는 아주 조금 친해졌습니다. 어떻게 알아챘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지만, 아이들은 종종 옆에 앉은 것이 저이고, 제가 자신들 또래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주 저를 향해 '지금 무슨 정류장이야?'라고 물었고, 이 질문은 종종 '너는 어느 초등학교 다녀?' '넌 어디서 버스 타?'와 같은 질문으로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말을 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저는 이사를 가게 됐고, '나 이사가' 같은 말을 건넬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기에, 이사 간다는 말을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내성적 기질을 이기지 못하고 말없이 떠나게 됐습니다. 

그 뒤로는 단 한 번도 시각장애인을 삶 속에서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그렇게 저는 장애인의 존재를 잊어갔습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지듯 말입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출근하다가, 데이트를 하다가, 언제라도 장애인을 마주친 적이 있으신가요?


그렇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서로 마주치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지하고, 또 잔인해지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보조견과 생활하는 장애인이 한 명이라도 들어와 있었다면, 점심 한 끼 사 먹으려던 시각장애인이 안내견 때문에 무려 7번이나 식당서 거절당하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것은 모두 저(를 포함한 장애인의 권리를 되돌아보지 않은 사람들)의 탓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사람이, 두 다리로 걸을 수 없는 사람이 존재한다면, 만들어져야 하는 것들이 만들어지지 못하고, 고쳐져야 할 것들이 고쳐지지 못한 탓입니다.

'장애인 없는 사회'가 더 견고해지도록 내버려 둔 탓입니다.


그래서 저는 장애인의 많은 권리 중 '이동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이동이 자유로워져 어디서나 우리가 서로 마주치며 살게 된다면, 덜 무지하고 덜 잔인해지지 않을까요. 

그러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장애인의 편에 서줄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딱 한 번만 삽니다. 장애인이라고 해서 두 번, 세 번 사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 사회는 '아이 딱해라. 이번 생은 운이 좀 안 좋으셨네요. 다음 생은 다르길 바라요'라는 식의 태도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장애인과 관련한 변화는 늘 더디다는 것입니다.


20년 전에도 안내견을 동반한 장애인은 여기저기서 출입을 거부당했고,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오늘도 여전히 출입을 거부당하고 있습니다. 휠체어 타고는 어디도 가기 힘든 것 역시 마찬가지고, 긴급 재난 방송에서 수어 통역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도 수십 년 지나도록 바뀌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은 번지르하게 하지만, 저도 뭐 하나 잘한 것이 없습니다. 부끄러울 정도입니다.

이런 글까지 썼으니, 제 위치서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들의 편에 서야겠습니다.

아, 이렇게 쓰고 보니, 말을 번지르하게 하는 것이 또 기자라는 제 위치에서 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군요....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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