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민용 Oct 27. 2020

거부가 익숙한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하루

"어딜 개가!" 밥 먹으려 했을 뿐인데...7번이나 거절



안내견, 누군가에게는 '눈'




나의 눈으로 보세요, 당신의 세상




우리나라 시각장애인, 몇 명이나 될까요? 25만 명이 넘습니다. 적지 않죠. 그런데 살면서 버스에서, 식당에서, 거리에서 몇 번이나 마주치셨나요? 저는 적어도 올해는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좀 더 마주치며 살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려면 장애인의 '이동권'이 더욱 보장되어야 합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눈'입니다. 흰 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짚고 두들겨보면서 '아 내 앞에 뭐가 있구나' 알 수 있는 것이라면, 안내견은 "엘리베이터 찾아줘" 이렇게 뭘 찾아달라고 부탁하면 시각장애인 대신 그것이 어디 있는지 보고 그쪽으로 이끌어줍니다. '대신 봐준다'는 의미에서, 정말로 '눈'이라고 할 수 있는 거죠.


이번 취재에 응해준 한혜경 씨는 흰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 5년 전부터는 안내견과 함께 걷고 있는데요. 흰 지팡이를 들고 다닐 때는 엄두도 못 냈던 많은 곳들을 안내견과 함께 걷고 있다고 합니다. '안내견=시각장애인의 눈=시각장애인의 이동권' 인 겁니다.









"문이 어디 있죠? 문 찾아줘"



이번에 함께한 안내견은 '5년차 베테랑' 이었습니다. 학교 가는 것을 보여달라고 하자, 안내견 표정이 마치 '내가 지금 이 길만 수백 번도 더 갔을 텐데, 나 무시해?'라고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차를 피하는 안내견




안내견을 직접 본 건, 저도 이번이 처음이었는데요. 정말 기특했습니다. 저 멀리 오토바이가 오면 걸음을 멈추고, 큰 차가 다가오면 길가로 바짝 붙었습니다. 안내견과 혜경 씨 단둘이 정말 수백 번은 더 왔다 갔다 했을 길이지만, 너무 걱정돼 저도 계속 옆에 붙어 있었는데요. '어어 저기 차 와요' 이렇게 제가 말하자,  '어휴 언니 호들갑 좀 그만 떨어. 내가 알아서 다 하고 있는데' 이런 표정으로 절 보더라고요. (미안...)


게다가 혜경 씨와 안내견, 둘 만의 '신호'도 있었습니다. 학교 가는 길에 혜경 씨가 '툭툭' 신호를 주자, 안내견이 한 카페 앞으로 안내하더군요. 워낙 자주 가는 단골집이라 둘 만의 신호가 있다고 합니다. 혜경 씨가 '툭툭' 이렇게 말을 하면, 안내견이 '언니 커피 당겨?' 하며 안내해주는 그 모습이 정말 멋졌습니다.




단골 핫도그집서 문 찾아주는 안내견


촬영 도중 혜경 씨가 안내견을 늘 환영해주는 고마운 사장님을 소개해주고 싶다고 해서, 핫도그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앞까지 와서 혜경 씨가 문을 찾지 못했어요. "문 어디 있어요?" 라고 저한테 물으면서 동시에 안내견에게 "문 찾아줘" 라고 하더라고요. 그러자 안내견이 정말 기특하게도 문으로 이끌어줬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이런 일이 생기겠죠? 처음 가는 곳도 아닌데, 바로 코 앞에서 문을 못 찾아 당황해야 하는 일 말입니다. 안내견이 없었다면 혜경 씨 삶이 더 불편했을 거라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건널목, 인도, 계단, 문, 엘리베이터 '모두 찾아줘요'



촬영날은 혜경 씨 시험날이었는데요. '건널목 찾아줘' '계단 찾아줘' '인도 찾아줘' '엘리베이터 찾아줘' 안내견은 찾아달라는 모든 것을 찾아주며 길을 이끌었어요. 시험장에 도착하자 자기도 도착했다는 것을 아는지, 편하게 쉴 자세를 잡았는데요. 몇 분 뒤 감독관이 들어오자 '너 누구야?' 라는듯 벌떡 일어나 킁킁 냄새부터 맡더군요. 감독관이 "12시 10분부터 시험 시작할게요" 라고 하자 '아 감독관이었구나' 라고 말하듯 '끄응' 이런 소리를 내며 털썩 누웠습니다. 안내견 겸 보디가드가 아닐까...!










"어딜 개가!" 밥 먹으려다 7번 거절



혜경 씨와 안내견, 저 이렇게 셋이 밥을 먹으러 갔습니다.




절 거부하지 마세요. 3백만원 과태료 때릴 거예요



'장애인을 돕는 도우미견은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한 지도 어느덧 20년이고, 안내견 출입을 거부한 곳이 3백만 원 이하 과태료를 물었다는 보도도 수차례 나온 바 있기 때문에, '요즘은 많이 거절 안 하겠지'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게다가 저는 키도 크고 참지 않게(?) 생겼기 때문에, '내가 무섭게 생겨서 내 얼굴 보고 다들 받아주는 거 아냐? 현실을 담아야 하니 혜경 씨만 들어가 보라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안 된다잖아 언니들' 제일 먼저 뒤도는 안내견



그런데 모두 '괜한 걱정'이었습니다. 첫 식당부터 바로 거절이었어요. 그다음도, 그 다다음도, 그 다다다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들 많이 놀라신 건지, 손부터 나오더라고요. 손가락질을 하거나, 손으로 막거나, 두 손으로 X자를 보이는 식이었습니다. '안 된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들었던 건지, '안 된다'고 하면 안내견이 제일 먼저 고개를 돌려 나갈 준비를 했습니다.




'알지만, 그래도 안 돼요'




보다 못해 직접 나섰습니다. 이 개는 그냥 개가 아니고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다, 법으로 어디든 갈 수 있다, 3백만 원 과태료 물 수 있다, 이렇게 나서서 이야기해봤지만, 소용없었습니다. 놀라운 건 '이 아이는 그냥 강아지가 아니고, 시각장애인 안내견입니다' 라고 했을 때 다들 '알아요'라고 답했다는 거였어요. 단 한 명도 '아 그래요? 몰랐어요. 들어오세요' 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알지만, 알아도, 안 돼.' 참 차가운 말이죠.  

 

"그러게 왜 이 시간에 오셨어요. 다들 밥 먹는 시간에 오셔서 도와드릴 수가 없네" 어떤 분은 이런 말도 하셨어요. 혜경 씨는 아무대꾸도 하지 않더군요. "다들 밥 먹는 시간이라 저희도 밥 먹으러 왔어요" 제가 목소리를 내야 할 때였습니다. 이 분도, 내쫓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기에 선의로 한 말이었을 거예요....


정말 기분 나쁜 말은 "손님들이 있잖아요" 라는 말이었습니다.




'손님들 계시다'며 거절하는 파스타집



사실 저희는 파스타가 먹고 싶었어요. 1층에서 다 거절 당해, 2층에도 파스타집이 있다고 해서 힘겹게 에스컬레이터를 찾아 올라갔습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이 집만은 내가 꼭 설득시켜 밥을 먹으리'했는데, 2분 만에 쫓겨났습니다. "안에 손님들이 계셔서"라고 하더군요. '너희가 올 곳이 아니야' 라는 표정이었습니다. 동냥하러 온 것도 아니고, 우리도 우리 돈 내고 밥 사 먹으러 온 건데라는 마음을 담아 "저희도 손님으로 온 건데요"라고 했더니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네? 그런데 다른 손님들이 강아지를 불편해하세요" 라고 길래, "반려견은 아니고 시각장애인 안내견"이라고 설명하려 했지만... '시각'까지 밖에 말하지 못했습니다. 바로 말을 자르고 "예, 알고 있어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 표정이 참 싸늘습니다.




'에스컬레이터 찾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개?!'



에스컬레이터를 다시 힘겹게 타고 내려가다 안내견과 눈이 마주쳤습니다. "혜경 언니가 못 봐서 다행일 때는 이때뿐이야. 저 싸늘한 표정, 너무 재수없지?" 라고 말을 걸어오는 듯했습니다.







왜 우리를 받아주셨어요?


고마운 식당서 '있는듯 없는듯'



먹고 싶던 파스타는 포기하고, 우리를 받아주는 '고마운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습니다. 안내견은 혜경 씨 곁에서 조용히 앉아 쉬고 있었습니다. 혜경 씨 대신 제가 화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누가 들으면 정말 공짜로 밥 얻어먹겠다고 한 줄 알겠어요"

"파스타집은 영락 없더라고요"

"정말 그러네요. 그럼 파스타 먹고 싶을 땐 어떻게 하세요?"

"그러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고 웃으며 되묻는 혜경 씨 말이 제 몸 어딘가로 날아와 꽂혔습니다. 혜경 씨의 이 말을 곱씹으며 조용히 게살 비빔밥을 비비고 있는데, 혜경 씨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기자님, 이런 인터뷰는 어떨까요? 이 분들이 왜 우릴 받아줬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늘 저를 받아주는 사장님들한테 물어보고 싶었거든요. 근데 제가 물어보기가 좀 그래서..."


저도 궁금해졌습니다. 마치 안내견은 보이지 않는다는 듯 "드시고 가세요?" 라고 평범하게 물어봐줬던 종업원에게 물었습니다.


"저 사실은 jtbc에서 나왔는데요. 안내견의 하루를 취재 중이었어요. 다른 식당은 다 저희를 거부했는데, 왜 받아주신 거예요?"

"네? 당연히.. 당연히 받아줘야 된다고 생각해서요. tv에서 봐서 안내견이 뭔지 알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른 분들은 손님들이 싫어한다고 안 된다고 하셨거든요"

"아, 저희도 사실 다른 테이블 손님들한테 여쭤봤어요. 양해를 구하려고. 살짝 가서 물어봤는데. 다들 흔쾌히 '당연하죠' 라고 해주셨거든요"


저는 이 분들이 우리 주변 테이블에 가서 이런 걸 물어봤는지도 몰랐어요. 저희를 배려해 아주 조용히, 살짝 물어보셨던 거겠죠.







언젠가 당신이 거절당하는 안내견을 만난다면...


꼬마 친구가 놀자 해도 '지금은 바빠'


태어나서 가장 많은 거절을 당한 이 날, 저는 내심 누군가 테이블에서 일어나 "어휴 사장님. 안내견은 다들 괜찮아해요. 들어오라고 하세요"라고 거들어주길 바랐습니다.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해서..." 라며 내쫓을 때 손님들이 "어머 사장님, 안 불편해요. 안내견인데. 어서 들어오세요. 애가 참 이쁘네" 라고 누군가 말해줬다면...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무도 나서주지 않은 건 대부분 안내견에 대해 잘 모르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도 많은 분들이 댓글에 '몰랐네요'라고 적어주셨더라고요.



언젠가 거절당하는 안내견을 만나게 된다면, 편 들어주실래요? 이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안내견=시각장애인의 눈' '어디든 갈 수 있도록 법도 있어'  '거부하면 과태료 3백만 원'







많이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장애인 기사는 안 팔려"

언젠가 지나가면서(?)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장애가 없기 때문에 -> 장애인 기사에 공감하기 어렵고 -> 그래서 장애인 기사는 잘 안 읽힌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때 저는 아주 어린 연차의 기자였기 때문에 발끈했던 기억이 납니다. 꼭 누군가에게 읽혀야지만 '기사'입니까? 라고요. 지금은 인정합니다. 저도 이제는 '읽혀야지만 기사다'라는 마음가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읽히는 것만 찾아 쓰자'는 아니고요. '읽히도록 쓰자'입니다.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의 눈입니다. 어디든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벌써 십 년 넘게 계속된 이 말을, 어떻게 전하면 많은 분들이 봐주고, 또 자기 일처럼 마음 아파해줄까, 고민했습니다. 제가 늘 몰래 응원해오던 혜경 씨와 그 안내견이 시간을 내주고,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해준 만큼, 많은 분들이 봐주시고 응원해주시길 간절히 바랐는데요.




돈쭐내주러 갈게요 사장님



유튜브 조회수만 46만회더라고요. 게다가 댓글로 '헐 아주대네. 혜경 학생 우리 가게로 와! 파스타 한 그릇 그냥 해줄게~멍뭉이도 들어와" 이렇게 말해주신 사장님도 있고요. 특히 '파스타' 해주겠다고 하니 더 좋았는데, 혜경 씨도 직접 댓글을 달았더라고요! 두 분의 특별한 만남, 꼭 성사되길 바랍니다. 짝짝!


또 네이버 카페에서는 어떤 분이 '이런 기사를 봤는데, 안내견 환영하는 스티커 어떻게 만드냐고 가게 앞에 붙이고 싶다'고도하셨더라고요. (이번 주 오픈마이크에 나올 내용이기도 합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그럼 오는 토요일, '한민용의 오픈마이크'서 또 봬요!



유튜브 링크☞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하루.."어딜 개가!" 밥 먹으려다 7번 거절


다음 링크☞ 시각장애인 안내견의 하루.."어딜 개가!" 밥 먹으려다 7번 거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