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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민용 Nov 02. 2020

청각장애인의 귀, 도우미견을 아시나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구름이'의 하루


청각장애인, 불 난 건물서 혼자만 '듣지 못해' 사망



청각장애인 화재 사망 사고 관련 기사




지난여름 어느 일요일, 이 기사를 발견하고는 한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모두가 황급히 빠져나간 건물 속에, 혼자만 듣지 못해 고요히 있다가 쓸쓸히 죽어갔다니... 폭발음을 듣지는 못했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불이 난 것을 알게 됐을 겁니다. 그때, 고인은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먹먹해졌습니다. 몇 시간 뒤면 뉴스 진행을 해야 하는 만큼, 빠르게 그 먹먹함에서 벗어나긴 했지만요.


이날 저녁, 집에 돌아와 다시 기사를 검색했습니다. '청각장애인 화재 사망' 이렇게 검색하자, 여러 기사가 떴습니다. 2018년, 2017년... 제가 관심이 없었을 뿐, 이런 사건은 오래전부터 계속돼 왔던 것이었습니다.


제가 만나고 온 서연 씨도 청각장애인입니다. 기억도 없을 2살 때, 고열로 청각을 잃었다고 합니다. 불이 나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와도, 폭발음이 들려와도 서연 씨 역시 듣지 못합니다.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구름이


하지만 2년 전부터는 대신 들어주는 '친구'가 생겼습니다.



바로 이 아이, 구름이입니다.









수어도 하는 구름이


수어 익힌 구름이 '앉아, 기다려, 먹어'



앉아, 기다려, 먹어.


간단한 말이지만, 수어로 어떻게 말하는지 아시나요? 웬만한 사람도 잘 모르는 수어를 구름이는 친구를 위해 익혔습니다.


그뿐인가요. 화재경보기, 벨소리, 아기 울음소리 등등 모두 대신 들어줄 수 있습니다.




"손님 왔어!!!" 내가 온 걸 알려주는 구름이




제가 문을 두들기니, 거실에 있던 구름이가 방으로 후다닥 들어가 서연 씨를 툭툭 치더군요. 그러더니 '손님 왔어!'라고 말하듯, 문쪽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일어나!!!" 벨소리 들어주는 구름이



알람을 설정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벨소리가 울리자, 후다닥 친구에게 달려가 툭툭 치면서 알려주더군요. 서연 씨가 잘 일어나지 않는 것 같자, 얼굴을 계속 쳤습니다. (멍멍펀치 '-')


그런데 신기한 것은, 아마 반려견이 있는 분들은 잘 아시겠지만, 보통 이럴 경우 강아지들은 '멍멍!'하고 짖습니다. 실제 제가 위에 올린 영상을 잘 들어보면요. 제가 문을 두들기자 옆집 강아지가 '멍멍!!!' 하고 짖는 소리가 들립니다. 이렇게 짖으며 알려주는 것이 강아지들의 특징이죠. 그런데 구름이는 친구가 듣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안다는 듯이, 절대 짖지 않고, 후다닥 달려가서 '툭툭' 쳤습니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 걸까요?


구름이는 친구의 '귀'가 되어주기 위해 5년간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외출 준비 : 구름이는 표식 붙은 가방에 들어간다.
서연 씨는 손에 신고서를 꼭 쥔다.



앞선 시각장애인 안내견처럼, 구름이 역시 서연 씨와 어디든 함께 하려 합니다. '하려 한다'고 표현한 것은, 이들의 동행이 아주 자주 '시도'에 그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싫어하니 가방에 들어가자 구름아


구름이는 외출 전용 백팩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아니 개가 왜 돌아다녀?!' 하니까, 가방에라도 넣어보는 겁니다. 싫어할 법도 한데, 구름이는 그래야만 함께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지, 좋아라 하며 가방에 폭 들어갑니다.


 

구름이의 외출 가방

구름이의 가방입니다.


'구름이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출입가능' 


색도 이렇게 노란색, 빨간색, 최대한 눈에 잘 띄는 색으로 만들었습니다.


크기도 작은 가방인데, 한 개도 아니고 두 개씩 붙인 이유가 있었겠죠. 거부당해 받은 상처가 어떠한 한계치를 넘어섰을 때, 하나씩 덧붙이고 있는 것이 아닐까...짐작해봅니다.







손에 꼭 쥔 '장애인 보조견 표지'와 '승차 거부 신고서'

 

서연 씨의 손에도 무언가가 꼭 쥐어져 있었습니다. 뭐냐고 제가 손짓으로 물어보자, 서연 씨가 손을 펴 보여줬습니다. 하나는 버스 승차거부 신고서였고, 또 다른 하나는 구름이는 보건복지부 장관의 승인을 받은 장애인 보조견이고, 보조견을 정당한 사유 없이 출입 거부할 경우 과태료를 물 수 있다는 법이 적힌 표지였습니다.  


서연 씨는 출근길, 매일 같은 마을버스를 탄다고 합니다. 저도 마을버스를 타야지만 읍내(?)로 나갈 수 있는 비역세권에 살아 잘 아는데요, 이런 작은 마을버스는 대부분 기사님이 승객들 얼굴을 외우게 되죠. 그러니 승차 거부도 덜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라고 합니다. 기사님에 따라, 탈 수도, 못 탈 수도 있다고 합니다. 서연 씨는 최근에도 승차를 거부당해 신고를 했다며, 신고 어플을 열어 보여줬습니다.


'복불복' 출근길. 서연 씨는 늘 승차 거부를 당해 지각할 것을 계산하며 출근길에 올라야 합니다.



교통카드X 도우미견 승인 표식 O

그래서 그런지, 마을버스가 오자, 서연 씨는 교통 카드 보다도 '정부 승인 표지'부터 꺼내 들었습니다. 기사님에게 보여주며 '저와 구름이, 태워주실 건가요?' 승인부터 받는 겁니다.


기사님이 이게 뭔가 하고 어리둥절하시길래, 제가 재빨리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인데 JTBC 뉴스룸에서 취재 중입니다. 당연히 탈 수 있죠, 기사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기사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보다도 '덜' 알려진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시각장애인 안내견 보다도 '덜' 알려져 있습니다. 사회부 기자를 오래 한 저도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의 존재를 이제야 알았는데, 일반 시민들은 더 알 기회가 없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안내견 보다도 출입 거부를 '더 많이' 당한다고 합니다. 특히 시각적으로도,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대부분 리트리버인데 비해,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은 소형견이고 그 종도 모두 달라서 더 반려견이라는 오해를 받습니다.


구름이는 정당한 사유 없이 출입 거부 할 수 없다는 정부 승인 보여주지만...식당은 "이런 경우가 처음이거든요"
식당 "문 밖에 세워두세요"



식당은 더 합니다. 일부러 뚜껑을 덮을 수 있는 유모차에 태워 들어갔는데, 바로 "들어오면 안 되세요"라고 외쳤습니다. 서연 씨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하고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 그러자 식당 측 항의가 이어졌고... 서연 씨는 '구름이는 청각장애인 도우미견. 정당한 사유 없이 출입 거부하면 과태료'라고 적힌 정부의 표지를 꺼내 보여주며 손짓으로 설명했습니다. 그러자 이런 반응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 이렇게 개를 데리고 오신 분이 없어요.

 게다가 이것을 가지고 오신 건 상관이 없는데, 일단... 이런 경우가 처음이거든요.

(서연 씨가 듣지를 못하자 펜으로 '이런 경우가 처음'이라고 적어 보여줌.)

그래서 처음이라서, 다른 식사하시는 분들이 싫어하시면 어떡해요.


(구름이는 훈련받은 청각장애인 도우미견이라는 사실을 계속 설명)


"그건 이제 아시겠는데, 일단은 데리고 오시는 분들이 없으니까...

이렇게는 안 되세요? 아, 들고 가시는 건 안 돼요?

그럼 강아지를 바깥에 세워 놓으면 안 돼요? 보이는 데에? 보이는 아니, 저 바깥에 저 바깥에...

가게 강아지를 저기 문 바깥에 세워놓고 드시면 안 되냐고 짖지는 않는다고 하니까. 짖지는 않는다며요. 그러니까 바깥에 보시면 세워 놓고 식사하시면 안 되냐고."


...


구름이는 안 짖어요. 구름이는 도우미견이에요. 구름이는 제 귀나 마찬가지랍니다.


보도를 위해 '모자이크'를 했지만, 원본 영상을 본 영상 편집자 마저 "표정이 너무 기분이 나쁘다"고 할 정도로, 식당 측이 보여준 표정은 너무나 별로였습니다.





쭈글쭈글해진 표지만큼, 구겨진 마음



구름이와 늘 함께 하는 '장애인 보조견 표지' 코팅돼 있지만 쭈글쭈글하다



보건복지부 장관 승인, 장애인복지법 제36조.


코팅돼 있지만, 어찌나 손에 쥐고 다녔는지 쭈글쭈글합니다.


보여줘도 소용없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이것 말고는 구름이와 서연 씨의 동행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이 없기에 늘 쥐고 다닙니다.


기사가 나간 뒤, 서연 씨로부터 '고맙다'는 카톡이 왔습니다. 평일에 시간을 내주고, 집까지 공개해줘서, 제가 고마운 상황인데 말입니다.


유튜브 기준으로 이 기사 조회수는 3.4천 회 정도 되더군요. 더 많은 분들이 봐주셨으면 더 좋았겠지만...ㅠㅠ

그래도 기사를 본 3천 명의 시청자 분들(?)은 언젠가 '장애인 보조견'을 마주치게 되면 따뜻한 눈빛을 보내주시고, 행여 출입 거부당하는 상황이라면 편이 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토요일 '한민용의 오픈마이크'서 또 봬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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