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의 원흉으로 높은 집값을 꼽곤 한다. 살 집을 마련하기가 어려우니 자연스레 아이를 낳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긴 하다.
아이가 생기고 나면 이사를 다니는 것이 어려워진다. 아이가 아주 어릴 때면 모르겠지만 초등학교를 들어가고 난 이후부터는 아이의 학교, 친구 문제 때문에 계속 동네를 옮기며 이사다니는 것이 어렵다. 같은 동네에서 전세집을 옮겨다닐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전세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에서는 오른 전세가를 감당하지 못하면 다른 지역으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그럼 집이 있으면 어떨까?
아무래도 집이 없어서 주거 안정성이 떨어질 때보단 아이를 낳고 키우기 수월하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도 없다. 아이 키우는 집은 그냥 집이 아닌 '아이를 키우기 좋은 집'에 살고 싶다.
아이를 키우기 좋은 집이란 단지 내부와 외부가 언덕이 없는 평지이고, 구축이 아닌 신축이고, 방이 최소 3개 이상이며, 단지 내부에 차량 통행이 불가능해 아이들이 편하게 뛰어놀 수 있어야 하고, 집 주변에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고, 길을 건너지 않고 초등학교를 보낼 수 있으며 주변 학군이 준수한 곳이다. 이런 곳들은 아이를 키우기에 좋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자녀가 있는 가족들이 몰린다. 그래서 이런 조건들을 충족하는 단지에 가보면 저출산이 거짓말처럼 느껴질 정도로 어린 아이들이 많다.
반면 위 조건들을 충족하지 못하는 낡은 동네의 구축 단지를 가보면 아이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 지역에 있는 초등학교는 당연하게도 학급 당 학생수도 적다. 서울에서도 학생이 없어 폐교하는 초등학교가 생겼다. 점점 아이를 키우기 좋은 동네와 그렇지 못한 동네가 양극화되는 것이다.
이제 막 자녀 계획을 세우는 신혼부부라면 당연히 위 모든 조건을 충족하는 신축 대단지 방3~4개짜리 전용 84 아파트를 자가로 보유하는 것은 쉽지 않다. 예산에 맞추려면 부모의 출퇴근 시간을 포기하고 경기도 신도시로 가야한다.
그냥 아무데서나 키우면 되지 뭘 그렇게 재고 따지냐 싶을 수도 있지만 지금의 세대는 그런 세대인 것이다. 옛날처럼 없는 살림 합쳐서 고생하며 아이 키우고 돈을 모아가는 그런 세대가 아니다. 그럴바에는 결혼을 하지 않고 혼자 살겠다고 한다. 집이 해결된다고 해서 아이를 키우는데 필요한 돈과 시간, 부모의 노동력이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그 비싼 주거비를 감당하면서 아이를 키우면 내 노후 대비는 할 수도 없고 카드값에 허리가 휜다.
나 역시 집이 있지만 집이 해결되었다고 아이를 갖는게 쉽게 느껴지진 않는다. 지금 집은 25평 방2개짜리이다. 아이를 키우려면 집이 조금 더 넓거나 같은 평수여도 방이 3개이면 좋겠는데 그러려면 최소 2~3억원은 더 필요하다. 그 돈을 마련하는 것도 문제고 설령 대출을 받아서 해결한다 하더라도 원리금 부담에 육아로 늘어나는 생활비를 생각하면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집이 있어도 아이를 낳는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