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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겨울햇살 Jan 13. 2023

[그림책으로 글쓰기]죽음을 통해 알게 된 두 가지 가치

 <사과나무 위의 죽음>, <백만 번 산 고양이>

사람들은 언제나 확신한 것을 찾아요.
그런데 우리 삶에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은 우리 모두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이지요.
그렇다면 이 확실한 것에서부터 삶을 돌아보는 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완화 치료 박사 지아노 브라치오     



      누구에게나 죽음의 순간은 찾아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평생 죽음을 나의 과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이치이며 마지막까지 미뤄둘 수 있는 일이라 그런 것일까. 죽음이 나에게 다가올 순간보다 노후의 외로움과 궁핍함을 걱정하고, 내 생의 마지막 순간보다 남은 자들은 안위를 걱정한다. 죽음이 다가오는 순간에 대한 대비는 내 집 마련을 위한 계획보다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언젠가 다가올 죽음의 순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이는 내 삶에 대한 태도를 쌓아나가는 중심에 대한 답을 갖고 있을지도 모른다.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권의 그림책으로 가치 있는 삶과 생에 대한 방향을 찾아보고자 한다.     



떠나는 순간을 받아들이기     

<사과나무 위의 죽음> 카트린 셰러 글, 그림/푸른날개(2016)

     

   <사과나무 위의 죽음> 속 주인공 ‘여우 할아버지’는 멋진 사과나무 한 그루를 갖고 있다.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사과나무에는 신기한 주문이 걸려있다. 바로 누구든 사과나무에 손을 대면 그 자리에 딱 붙어 버리게 되는 주문이었다. 주문에 걸린 자는 여우 할아버지가 ‘이제 내려와’라고 말해야만 비로소 주문이 풀리며 움직일 수 있다. 사과나무에 신기한 주문이 걸린 후 여우 할아버지의 사과나무 열매를 몰래 따먹는 마을의 동물은 아무도 없었다.  

    시간이 흘러 더 나이를 먹은 여우 할아버지에게 어느 날 ‘죽음’이 찾아왔다. 죽음을 피하기 위한 할아버지의 속임수로 ‘죽음’은 사과나무에 손을 대게 됐고, 결국 나무에 몸이 달라붙어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의 죽음을 나무에 붙인 여우 할아버지는 덕분에 어떤 상항에서도 살아남는 능력을 갖게 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주변 사람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자신을 발견한다. 자신의 죽음은 피할 수 있었지만 아내, 자식, 손주, 친구들의 죽음은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우 할아버지는 어디를 가든 외톨이가 됐다. 결국 할아버지는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오랜 시간 살아남은 여우 할아버지에게 남은 건 외로움과 약해진 몸이었다. 그 어떤 기쁨과 즐거움도 없었다. 외로움에 빠져 허덕이던 여우 할아버는 결국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책을 읽으며 죽음에 앞서 ‘떠남 그 자체의 가치’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다. 사람은 누구나 성장의 과정을 거치며 떠남의 순간을 마주한다. 학사 과정의 졸업, 내가 선택한 일을 그만두는 순간, 사람과의 이별까지 모두에게 떠남의 순간은 늘 존재한다. 생에 펼쳐진 떠남의 관문들을 생각하다 앞으로 나를 기다리는 은퇴의 순간이 떠남의 순간과 연결됐다.


   한 회사 오래 다니거나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마음을 기댈 곳이 점점 사라지며 심적으로 외로워지는 경우가 많다. 일의 초창기에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나누던 동기 혹은 비슷한 또래의 동료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일을 하며 주로 함께 보내는 사람들은 마음을 터놓을 편한 대상이 아닌 경쟁의 대상이 된다. 어느 순간 함께 일하는 사람 중에선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아진다. 회사원인 경우 말단 사원일 때야 눈치를 보느라 회사 내의 이 사람 저 사람을 눈에 익히지만 어느 정도 직급이 올라가고 난 후에는 내 팀원과 업무 때문에 연락하는 사람, 나보다 윗 직급의 사람들만 신경 쓰게 된다. 주어진 업무를 해내는 능력과 별개로 사회의 축소판인 회사 생활에서의 나의 위치를 이전과 같이 유지하기는 힘들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세상의 주류를 바꾸면 결국 내 자리는 바뀐다. 어떤 일을 하건 그 일에는 수명이 있다. 교육의 과정에서는 졸업이라는 행사를 통해 떠남의 순간이 자연스레 만들어진다. 하지만 어른이 된 후의 삶은 맺고 끊음의 과정이 쉽지 않다. 내가 그 자리에 있지 않아야 하는 순간을 받아들이고 그다음을 준비하는 자세는 항상 필요하다. 유독 한국사회에서는 은퇴의 순간이 가혹하게 느껴진다. 인생의 다음 장을 연다는 느낌보다 더 이상 사회에 쓸모없기에 내쳐진다는 느낌이 강하다. 회사 생활은 버티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버틸 땐 버티더라도 떠나는 순간을 잘 아는 것도 중요하다. 생의 각 과정 속 떠남을 잘 처신한다면 마지막 떠남인 죽음도 가치 있게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모든 떠남의 순간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미련보다는 현재의 내 위치를 이해하고 더 나은 선택을 연결하는 지혜로운 자가 내 안에 크고 있길 바란다.       




주는 사랑의 행복

     

“백만 년이나 죽지 않은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백만 번이나 죽고 백만 번이나 살았던 것이죠.
정말 멋진 얼룩 고양이였습니다.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를 귀여워했고 백만 명의 사람이 그 고양이가 죽었을 때 울었습니다.
고양이는 단 한 번도 울지 않았습니다. “                    
<백만 번 산 고양이> 사노 요코 글, 그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그림책으로 손꼽는 사노 요코의 <백만 번 산 고양이>는 1977년에 출간되어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지 40년이 훌쩍 넘은 그림책의 고전이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인상을 남기고, 책장을 덮은 후엔 여운이 남는 감동이 있어 매번 생각을 곱씹게 된다.  

    

  여기 백만 번 산 고양이가 있다. 생과 죽음을 백만 번 반복한 고양이는 살아있는 동안 자신을 사랑한 모든 이를 싫어했다. 백만 번 산 고양이를 곁에 둔 이들은 자신의 가장 가까이에 두고 사랑을 줬고,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 온종일 울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 속 고양이는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누군가의 고양이로만 살던 ‘백만 번 산 고양이’는 어느 날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자신을 가장 좋아하는 도둑고양이로 환생한다. 주변의 모든 도둑고양이가 백만 번 산 고양이를 좋아하지만 하얀 고양이만큼은 예외였다. 백만 번 산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 곁에 머물며 새끼를 낳고 종국엔 자기 자신보다 하얀 고양이와 새끼 고양이를 사랑하게 된다. 새끼 고양이들이 독립한 후 백만 번 산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와 함께 오래 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결국 하얀 고양이는 먼저 세상을 떠나고 백만 번 산 고양이는 백만 번이나 운 후 울음을 멈추고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다.     



  우리는 누군가의 축복 속에서 사랑을 받으며 태어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살아가는 동안은 사랑받고 있다는 마음보다 외롭다는 감정을 더 많이 느낀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의 문제를 ‘사랑하는’ 문제가 아닌 ‘사랑받는’ 문제로 생각한다 말한다. 그리고 많이 갖되 잃을까 두려워하는 자가 부자가 아닌, 남에게 많이 ‘주는’ 자가 부자이며, 주는 행위를 통해 자신을 경험한다고 이야기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백만 번 산 고양이는 누구의 고양이도 아닌 도둑고양이로 태어난 후 비로소 주는 사랑을 하며 자신의 삶의 가치를 찾아간다 볼 수 있다. 그 누구의 사랑을 받더라도 행복하지 않았던 백만 번 산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를 사랑하기 시작하며 오래 살고 싶다는 욕심, 상실로 인한 슬픔을 느끼고 윤회의 고리를 끊는다.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다가올 때 가장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 나에게 있는 것은 온전하지 않거나 예전만큼 중요하지 않게 된다. 약해진 체력, 이제는 한 걸음 물러선 사회적 위치, 불리기 위해 집착했던 재산 등. 하지만 사랑이 담겨있는 추억, 여전히 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그 어떤 시기보다 나에게 큰 가치로 남아있을 것이다. 내 주변의 가족과 친구, 사람이 아니더라도 내가 애정을 쏟았던 대상은 내 생이 행복했던 그리고 행복한 이유다. 살아있는 동안 누군가를 무언가를 사랑하고 내 사랑을 전하는 일. 사랑을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의 행복을 알게 된다면 백만 번을 살더라도 얻지 못할 지금 내 생을 미련 없이 사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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