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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동규 Dec 07. 2022

대중문화비평

한때 꾸준히 작업했던 대중문화비평을 다시 시작해야 겠다, 라고 생각했다. 시작해야 랑 겠다 사이에 띄어쓰기는 없는거 아는데. 뭔가 저 문장을 읽었을때 여기서 한 숨 쉬고 말하는게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사실 뭐 발음기호랑 표기랑 다르듯이 띄어쓰기랑 실제 읽는 호흡이 다른거 나도 아는데, 그걸 굳이 지킬 필요가 있나 싶은게 솔직한 마음이다. 이걸 사회적으로 틀렸다고 하기로 해서 틀렸다고 하는거 말고, 뭔가 혼동을 주거나 오해를 살 수 있는 것만 잘 지키면 되지 않을까? 뭐?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띄어쓰기 좀 안했다고 멀쩡한 아저씨가 가방에 들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는 쪽이 모자란거 아닐까? 띄어쓰기 이전에 문맥이란게 있다. 띄어쓰기는 마치 맥락보다 결점 하나를 찾아내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현대 사회의 대화법과 같다. 그래서 더 꼴보기가 싫은게 아닐까. 나는 확실히 띄어쓰기 반대파다. 이 이야기 하려던게 아니었지.


그러니까 내가 뭐라도 된 냥 문화 지식을 뽐내고 싶다는게 아니다. 대중문화든 매니악한 문화든 다 내가 약한 분야다. 나는 기본적으로 인풋이 적다. 그게 나의 결점이라고 당당하게 인정한다, 나는 창작자 중에 손꼽히게 인풋이 적은 사람이다. 새로운 무언가를 습득하는 과정은 즐거우나 그게 일이 되고 기본 소양이 되는걸 꺼린다. 이게 좋고 즐거워서 보는거지, 얼마나 나에게 도움이 되고 요즘 트렌드가 어떻고 업계 흐름이 뭐고 누구 누구 감독의 신작이 어떻고는 나의 인풋 빈도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오히려 썸네일이 재밌거나 좋아하는 누군가가 추천해서, 정도의 흥미 위주의 접근법이 많다. 이런 식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사람을 뭐라 부르는가? 네, 대중입니다. 저는 그냥 대중들 중 한 인간일 뿐입니다요.


돌아가서. 그저 일개 대중의 하나인 내가 뭔가 대단한 사람인 척 문화 지식을 뽐내고 싶은게 아니다. 그럴 수도 없거니와 금방 밑바닥이 드러난다. 아 이 사람은 나무위키나 어디 어디 인터뷰를 보고 주워 들은 정보를 대충 재조합해서 자기 의견을 덧붙이는 것 뿐이구나. 유독 대중문화비평의 대본을 쓰는게 힘든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깊이가 있어야 하고, 전문가처럼 보여야 하고. 굳이 이걸 보거나 읽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거기에 추가로 유튜브에 흔해빠진 리뷰 영상들과의 차이점도 필요하다. 퍽이나 잘난거 하나 없는 내가 그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그런 글을, 그런 시선을 가질 수 있을까? 부담은 부담대로 느껴지면서 시간 대비 효율은 안 나오는. 가성비 최악의 작업이라 해도 영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유의미하다,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 다음 문단에서 만나요.


그렇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잘 모르는 분야, 내가 취약한 분야, 하지만 나에게 필요한 분야이기 때문에 이렇게 억지로 쥐어 짜낼 계기가 필요합니다. 세상에 끝도 없이 많은 스승님, 사부님, 선생님들의 작업들을 감상하고 그에 대한 생각을 나열하는 것 만으로도 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걸 대중문화비평 이란 그럴싸한 이름까지 달고 내보낸다? 한층 더 진중하고 엄격한 태도로 임해야 합니다. 그러면 뭐겠어요. 작품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지고 무게감이 생깁니다. 계속해서 새롭고 신선한 작품을 찾아다니고, 감상을 전달하기 위한 어휘나 비유도 고민하게 됩니다. 콘텐츠로서의 성과 이전에, 어느모로 봐도 모두가 나의 성장입니다. 아니 이 좋은걸 이동진만 하고 있었던거야? 더이상 내버려 둘 수 없습니다. 대중문화비평 억지로라도 다시 시작합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어차피 적당한 부담감이 있어야 시작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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