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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런 Jun 14. 2024

김포에 삽니다.

무덤이 보이는 집

 8년 전, 김포에 왔다. 서울의 동쪽 끄트머리에만 30년을 넘게 살았다.  

생전 연고도 없는 김포에 온 것은 순전히 남편 때문이었다. 갑자기 서울 중심에 있던 남편의 회사가 파주로

이전했고, 매일 서울의 동과 서를 차로 오가며 환경오염에 일조했다. 나는 일찍 출근하고 늦게 오는 남편덕에 어린 남매들을 독박육아했다. 나의 독기(혹은 살기) 또한 하루가 다르게 짙어갔다. 우린 지쳤다.

가자, 서쪽으로.

     

 우리 부부는 당시 30대 중반이었다. 이사를 가기로 마음을 먹자 모든 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파주를 중심으로 한 후보 지역을 검토했다. 일단 서울은 제외였다. 집값이 비쌌고, 자차 출퇴근이 힘들었다.

남편은 회사와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너무 가까우면 퇴근한 것 같지 않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파주도 제외. 그다음은 파주 옆 일산. 그곳엔 시댁이 거주했다.  

 “너무 가까우면 시어른과 함께 사는 느낌일 것 같아. 적당한 거리가 필요해.”

 나 또한 누군가와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했다. 파주와 일산을 제외하니 서울 빼고는 갈 곳이 없었다. 지도를 폈다. 김포? 파주와 꽤 가까웠다.


"가보자, 김포"

   

 우리는 결연한 마음으로 서쪽으로 향했다. 한겨울이었다. ‘김포’는 도대체 어떤 곳일까? 경기도의 신도시로 지정된 지역이라는 점,  다른 곳에 비해 비교적 집값이 저렴하다는 점 외엔 아는 것이 없었다. 누구나 자신이 사는 곳이 아니면 무관심하니까.

 서울 동쪽에서 한참을 달렸다. 올림픽대로가 그렇게 오래 타 본적은 생전 처음이었다. 김포공항이라는 표지판이 나오고 한참을 달려서야 김포대교가 나왔다. 안개가 자욱했다. 그렇게 지독한 안개는 처음이었다.


 남편이 봐두었다던 아파트로 갔다.

"여기가 이 아파트에서 뷰가 제일 좋아요. 저 봐요. 나지막이 산도 있고 하늘도 보이고. 놓치면 아까워요."

3층이었다. 마음에 들었다. 뷰가 가장 좋은 곳이라지 않는가. 게다가 현재 사는 곳보다 집값이 훨씬 저렴했고 새로 지어 깨끗했으며 넓었다. 우리는 다음 집을 볼 필요도 없었다. 여기다! 우리는 바로 계약금을 넣었고, 얼마 후 이사 날을 잡았다.    

  

드디어 이사 전 날, 계약서 때문에 새집에 들렀다. 마침 집을 내놓은 주인아주머니가 와 계셨다. 아주머니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씀하셨다.


“새댁, 여기 참 살기 좋아. 진짜야.”


아주머니의 표정이 묘하게 홀가분해 보였다. 오랫동안 팔리지 않던 집이 팔려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아주머니의 시선을 따라 창밖을 바라봤다.

눈에 무엇인가가 포착되었다.

겨울의 마른 가지 사이로 비쭉 튀어 오른 그것은 비석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오목하게 무덤이 곱게 솟아있었다. 그것은......


“저거... 혹시 무덤이에요?”

“어머, 새댁 몰랐구나. 이 산에 무덤이 몇 개가 있어. 나는 비석 보면서 기도도 해요. 우리 딸, 좋은 곳으로 취업하게 해 주세요. ”


반말인지 존댓말인지 모를 아주머니의 표정은 매우 흡족해 보였다.

‘네? 이름도 모르는 죽은 분에게 요?’

나는 속으로 이야기했다. 표정관리가 되지 않았다. 바로 부동산으로 달려갔다. 부동산 사장님도 잘 몰랐단다. 남편에게 전화했다. 그도 당황했다.   

   

밤샘 회의를 했다. 무를 수도 없었다. 일단 정신승리를 해보자 협의했다. 저까짓 비석 따윈 안 보면 된다. 웬만하면 거실 창의 왼쪽만 보자. 밤이 되면 잘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봄에 풀이 울창해지면 다 가려질 것이다.-라고 했지만 전날 우리 부부는 속상함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우리는 그렇게 두 눈이 벌건 채로 한 겨울 이곳 김포로 왔다. 꽁꽁 언 수로변의 한 곱창집에서 질겅질겅 곱창을 씹으며 남편과 소주잔을 부딪쳤다.     


"우린 이제 김포 사람이야."     

소주가 썼다. 그렇게 우린 김포 사람이 되었다.



 

무덤이 보이는 집이라고?

사실 지금은 무덤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나뭇잎이 풍성한 계절엔 아예 보이지 않고 나뭇가지도 해가 갈수록 풍성해져 비석 일부만 작게 보일 뿐이다.   

 우리는 때때로 작은 것에 얽매어, 그것이 지닌 진짜 가치를 보지 못한다. 고작 손톱만 한 무덤과 비석 때문에 자연이 선물한 귀한 아름다움을 놓칠 수는 없다. 시시각각 변하는 창문 너머의 바깥 풍경은 계절이 바뀌고 머무는 즐거움을 알게 했다. 매일 아침, 창밖에서 만나는 자연은 매번 새로웠고, 늘 감사했다.


#김포에 온다면, 여긴 꼭!



8년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는 단골 카페. 김포는 대형카페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실은 아기자기하면서도

커피맛이 좋은 작은 카페가 많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한결같은 주인장의 커피맛. 특히 계절메뉴인 딸기우유가 유명하고 티그레, 에그타르트 등 디저트도 훌륭하다. 연예인들도 많이 방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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