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을 홍에 빛날 경. 붉음을 물려받고 빛남을 가꾸도록 태어났다. 한 때는 성까지 붙여 불리우는 게 정 없어 외 자 이름을 싫어하기도 했단다. ‘아직은 경험이 없지만’, ‘부족하지만’, ‘갈 길이 멀지만’ 이라는 사족을 습관처럼 다는 것은 겸손해서일까, 말의 중요성을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일까. 붉게 빛나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그는 사실 모든 것을 재로 만드는 폭발적인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 자는 아니다. 사물을 옳게 비춰 분별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빛, 배우 홍경은 이름값을 한다.
기실 작품 홍보를 목표로 배우와 만나면 ‘어떤 것을 물어야 하는가’와 ‘어떤 것을 궁금해 해야 하는가’라는 두 고민이 상충한다. 영화계에서 배우가 차지하는 지분과 위치, 권력을 비롯해 ‘호흡’, ‘케미’ 등으로 치환되는 상대 배우와의 작품 후기 등이 전자다. 대강 작품을 끝낸 소감 / 작품 선택 계기 / 상대 배우와의 케미(또는 호흡) / 촬영장 에피소드 및 비하인드 / 차기작 이야기 / 연기 철학 등이 이어진다.
어떤 질문은 꼭 ‘홍보’로서 적절하지 않은 궁금증 같아 입을 다물게 될 때도 있다. 또는 정말로 궁금한 게 없을 때도 있다. 전적으로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게으른 탓이다.(동료 선배는 굳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지만) 결국 퍼스널하지도 길지도 않은 그 시간에서 찌랭이인 내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건 ‘말 잘 하네’ 정도다.
그런 의미에서 홍경은 백 점이다. 말 잘한다. 문장처럼 말한다. 수많은 인터뷰에 레퍼토리처럼 굳어졌을법한 대답도 순간 순간의 진심을 섞어 내어주는 섬세함과 긴장감이 느껴진다. 단어밭이 넓고 하고픈 말을 조리있게 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보통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이렇게 말한다. 표현하는 직업을 가진 이가 감정을 언어화하는 작업에 능하지 못하면 조금 의아함을 느낀다. 배우가 말 못하면 이상하다는 뜻이다.
‘제가 아직 경험이 많지는 않아 저의 말이 다 맞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런 비슷한 맥락의 서두를 열 번은 넘게 들었다. 자신의 자만을 포장하는 기만적인 밑밥인건가 싶었지만 글쎄, 자만이라고 할 만한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다. 나는 연기를 해보지도, 배우를 많이 만나보지도 않은 연차 낮은 직장인이라 객관적으로 그의 미래를 점치기엔 어수선한 단상이 많다. 하지만 홍경은 앞으로도 자기 앞가림은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 만한 자질을 갖춘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프랑스 독립영화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을 좋아하는 남자에게 약간의 동일한 색채를 느끼긴 하지만 이것은 극히 개인적인 편견일 뿐이라는 걸 나도 안다. 문학을 위한 문학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면서도 문학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과는 대화조차 하지 않으려는 편협한 나에게 홍경과의 인터뷰는 꽤 흥미로운 시간이었다.(말을 잘 해서 편하기도 했다. 즉각적으로 이해하고 정리하기 수월하다.) 사회적 포지션으로 못박혀 필요한 질문만 해야 하는 상황이 흥미로운 시간이 된다는건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알고 있기에 더욱 감격스러웠다.
영화에서 어떤 점을 제일 중요하게 보냐고, 영화를 본 직후 남겨진 감정을 추스리기 위해 어떤 활동을 하냐고, 어떤 기록을 하고 있느냐고,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 어떤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느냐고, 여성 서사에서 남성이 어떤 존재로 서 있길 바라냐고, 보다 구체적으로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다. 만일 그가 더 유명한 사람이 되면, 그런 이야기는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내 귀에 들어올 테니까. 가정했지만 반쯤 확신이다.
아 그리고 홍경은 정말로 송중기를 많이 닮았다. 정면에서 보면 김무열을 닮은 것 같은데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사람의 동의해주지 않았다. (김무열처럼 나이 먹으면 좋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