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덕질, 어디까지 가 봤니?

직장인의 반짝★덕질기

by 올리브


"나 우최쇼 티켓팅 성공했어........"


친구에게 문자를 보내면서도

이 모든 상황이 살짝 당황스러웠다.


티켓 오픈 당일에 분명 빛의 속도로 매진되었는데,

새벽 2시에 들어갔더니 취소표가 보였다.

다급하게 무통장 입금 버튼을 누르고 나니

이거.. 송금까지 해서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건지 망설여졌다.


12월의 추운 겨울이었고

일요일인 그날 아침에는 자격증 시험이 있었다.

오전에 시험을 보고 저녁에 우최쇼를 가야 하는데

시험장인 여의도에서 경희대는 거리가 꽤 되었다.

경기도(집) > 여의도 > 경희대 > 경기도(집)라니,

차도 없는 뚜벅이인 내가 소화하기엔

도무지 엄두가 안나는 일정이었다.

원래의 나라면 귀찮아서라도 포기했을 텐데,

아침에 마음 바뀌면 돈 버렸다 생각하지 뭐.

에라 모르겠다!

나답지 않게 티켓 결제를 해버렸다.




나는 평생 연예인을 좋아해 본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도 그 흔한 아이돌 덕질 한번 해본 적이 없고

내가 그 사람에 대해 뭘 안다고 좋아하란 말이야?

라며 나만의 까칠함을 고수했다.


그러던 내가 한 배우에게 빠지게 되었는데

그 시작은 그가 출연한 드라마였지만,

본격적인 덕질의 계기는 한 지면 인터뷰를 통해서였다.


나는 연예인의 인성을 본다.(고 믿는다)

미디어를 통해 정제된 단편적인 이미지만 보고

그 사람의 실제 성격을 안다고 믿는 것이 바보 같지만..

아니, 오히려 믿을 수 없기에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는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 내가 티브이가 아닌 잡지사 인터뷰에서 느껴진

그의 인간미에 단박에 매료되었다. 염세주의자인 나와는 다르게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는

그의 시선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덕질을 시작하니

힘든 회사 생활에 활력소가 되었다.


쉬는 시간 틈틈이 팬카페 글을 보는 것도 즐거웠고,

짤털이라고 해서 출연작들의 멋있는 짤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지겹기만 하던 퇴근길이 업무시간 동안 놓쳤던 최신 정보를 수집하는 시간이 되자

은근히 기다려지기까지 했다.

마치 내가 노동을 마치고 오면 외주업체에서

아휴~ 오늘도 돈 버느라 수고하셨다며 최신 소식을 업데이트받는 기분마저 들었다.


그런데 그가 <우주 최강 쇼>를 한단다.

‘아 내 인생에 팬질은 없는데...’ 고민을 했지만,

팬미팅이 아닌 연말 “자선 기부쇼”란다.

'자선'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한결 편해지면서 묘한 안도감이 들었다.


“그래~ 좋은 일에 기부한다는데, 한 번 가보지 뭐.”




“그냥 돌아갈까?”


시험을 치르고 부모님 차를 얻어 타고

경희대 평화의 전당 언덕에 도착했다.

그렇다. 난 결국 그곳까지 가고 말았다.

건물 앞에는 배우의 등신대 옆에서 사진 찍는 팬들이 보였다.


“엄마, 그냥 차 돌려. 나 집에 갈래.”


하마터면 차를 돌려 나갈 뻔했다.


그래도 시험 보고 기어코 여기까지 온 내 정성이 갸륵해

굳게 마음먹고 차에서 내렸는데, 이럴 수가..

자선 쇼는 맞는데, 알고 보니 팬미팅에 가까운 콘서트였다.

하긴 이런 쇼가 있다는 것을 일반 사람들이 알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티켓이 몇 분만에 매진되었으니 그 배우의 ‘찐’ 팬들이 오는 것은 당연했다.

사전에 사이트에서 배우의 이름이 새겨진 응원봉을 판매할 때 눈치챘어야 했는데..

(판매 수익금을 기부한다길래 응원봉도 미리 구매해두었다. 난 분명 기부하려고 샀을 뿐이다! 후후)


해외 팬들과 함께 하는 팬미팅(콘서트)이라니,

나로서는 연예 프로에서나 보던 광경이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을 때 난 이미 강당의 중간 자리를 떡 하니 차지하고 있었고,

내 양 옆 좌석 팬들은 소위 대포 카메라라고 하는 것들을 들고

무대장치를 찍는 데에 여념이 없어 보였다.

갑자기 그 사이에 끼어 앉아있는 내가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 어이가 없었다.

(팬들이 부끄러운 게 아니라 첫 경험에 나 자신에 대해 스스로 놀란 감정이었습니다)


그래 이왕 이렇게 온 거 실물이나 보자.


그런데 슬프게도 그는 얼굴이 작아도 너무 작았다...


1층 앞 좌석이었는데도 얼굴이 잘 안 보여서

지금도 나는 그의 실물을 모른다...

그가 노래할 때마다 응원봉을 흔들어야 하는데,

난 뻘쭘함에 가방에서 차마 봉을 꺼내지도 못하고

손만 움찔대다가 이내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내 응원봉은 그날 나만큼이나 조신했다)


그 공간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유체이탈을 시도하던 중에도

그가 정성스럽게 공연을 준비한 것을 느낄 수 있었고,

그 열정만큼이나 길어진 공연에 이튿날 휴가 내기를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나의 한 달에 걸친 반짝 덕질은

쇼 이후에도 지지부진하게 조금 유지되다가 지금은 접은 지 오래다.

다른 이유는 없고, 그저 내가 덕질을 오래 할 성격이 못 되기 때문이다.

(포털 뉴스에 이름이 뜨면 꼭 클릭하는 나만의 의리는 성실히 지키고 있다)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그곳에 가길 정말 잘했다.


그것이 덕질이었든, 소심한 일탈이었든 간에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경험해 봤다는 것에

묘한 자신감이 생긴다. (거길 대체 어떻게 혼자 갈 생각을 했니? 네가??)

그리고 가끔 그날을 떠올리며

나에게도 의외의 면이 있음에 괜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그 배우는 매년 자선 콘서트를 열 계획이라고 했지만,

안타깝게도 코로나 때문에 3년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만약 내가 또 가게 된다면

이번에는 뻣뻣한 몸을 리듬에 맡겨보기도 하고,

반짝이는 응원봉도 힘차게 흔들어 보는 나를 상상해 본다.


역시 뭐든 기회가 있을 때 하는 게 맞고,

이왕 할 거면 즐기는 게 남는 거다.


그러니 다음 우최쇼도 콜~~?


이번엔 응원봉을 신나게 흔드는

내 모습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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