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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스리 Aug 10. 2022

[번외: 여행 에세이] 의심하지 말지어다, 바르셀로나

* 2019년 10월 경에 떠난 여행을 토대로 작성했던 글을 살짝 수정했습니다.

* 현재 사정과 다를 수 있습니다.


Barcelona


메시가 왜 메시인지,

가우디가 왜 천재 건축가인지,

엘 그룹이 왜 유명한 맛집인지,

묻지 말지어다.

그저 믿으라.




1. 리오넬 메시(Lionel Messi)


축구라고는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대항 경기만 보는 나에게도, 바르셀로나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게 FC 바르셀로나 축구단이다. 바로 리오넬 메시가 속해있는. (지금은 파리 생제르맹 소속이다.)

스페인 여행 계획을 세우려 알아보던 중에, 도착한 날 FC 바르셀로나의 경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축구는 잘 모르지만, 이왕 바르셀로나에 가는 김에 축구 경기를 보기로 했다. 나 혼자 가는 여행도 아니거니와 룰도 잘 모르니, 비싼 좌석은 부담스러웠다. 더구나 상대는 생전 처음 듣는 팀이었다. 뭐 이런 경기에까지 메시가 나오겠나 싶어, 제일 싼 좌석을 끊었다.

일찍 도착해서 계단을 오르고 올라 자리를 잡으니, 하늘에 붕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경기장을 한 번에 조망할 수 있어, 꽤 나쁘지 않은 좌석 선택이었다 싶었다. 그런데 선수들이 하나 둘 입장하고 경기 시작 전 몸을 푸는데, 이건 뭐 움직이는 면봉 같더라. 나중에 들어보니 내가 구매한 좌석은 하늘과 가까워서 하나님 좌석이라 불린다 했다. 어쩐지 계단을 오르면서 천국의 계단이 생각나더라니. 메시 님께는 죄송한 말이지만, 형광 신발을 신은 키가 작은 사람으로 메시를 알아봤다.

경기 시작 전, 전광판에 출전 선수를 보여주는데 메시가 있었다.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무래도 돈 아끼려다가, 인생 최고의 순간을 놓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선수들의 몸짓이 남달랐다. 마치 날아다니는 호랑나비 떼 같았달까. 스코어는 순식간에 2:0이 되었다. 전반의 절반이 채 되기도 전이었다. 와 역시 클래스 남다르다 싶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앞 좌석에 대한 아쉬움만 있을 뿐이었다. 결코 좌석 선택에 있어서 후회는 없었다.

절반이 좀 지났을까? 상대팀 선수의 실수로 프리킥을 얻어냈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메시가 준비 중이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큰 기대는 없었다. 이미 이긴 게임 같아서, 선수들이 대충 시간을 때울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메시가 메시긴 하지만, 프리킥을 매번 성공시키겠어?라는 기대보다는 안일하고도 다소 시건방진 마음이 더 컸다. 그래 안다. 내가 경솔했다. 메시가 깔끔하게 프리킥을 성공시켰다. 엄청 깔끔해서 교과서를 보는 것 같았다. 프리킥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는 것만 같았다. 골대로 골이 그냥 빨려 들어갔다.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지 않은 날 원망했다.


'야! 메시가 왜 메시겠냐!'


전반이 끝날 무렵, 또다시 프리킥 기회를 얻었다. 역시나 메시가 준비하고 있었다. 메시가 괜히 메시가 아닐 거야, 라며 카메라를 들었다. 이번에는 기필코 이 역사적인 순간을 남기리라. 녹음 버튼을 누르고 숨죽이며 지켜봤다.

결과는 노골이었다. 크, 정말 아까의 매끄럽던 프리킥 장면을 안 담은 게 한스러웠다. 다음엔 모든 순간에 카메라를 들이미리라.


*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후반전은 전투적이었던 전반전보다 선수들이 대체로 힘을 뺀 것 같았고, 관객들도 중간중간 나가버려서, 전반전만큼의 재미는 없었다. 초반까지는. 선수 교체가 두 번 이어지면서 다시금 공격적으로 플레이 스타일이 변하더니, 수아레즈가 추가 골을 기록했다. 이로써, 스코어는 4:1이 되었다. 중후반쯤, FC 바르셀로나에 절호의 찬스가 왔다. 코너킥이었고, 공이 튕겨져 나가 메시 앞으로 운명처럼 떨어졌다. 결과는? 당연 득점! 그러나 나는 뭐다? 학습 능력 없는 바보다.


'에이~ 이제 다 끝났어, 끝났어. 뭐 더 득점하겠어?'


......


5:1로 완벽한 FC바르셀로나의 승리였다. 골 득점력뿐만 아니라, 골을 컨트롤하는 능력, 수비를 무력화시키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스피드가 예술이었다. 어떤 면이 완벽하지 않을 수 있을까? 나중에 들어보니, 요즘 풀타임으로 뛰는 메시를 보기 힘들뿐더러, 그날 컨디션이 최상이었다고 했다. 돈 조금 더 써서 앞으로 갈 걸... 하나님 같은 신 계의 좌석 따위 말고, 사람답게 인간 계에서 볼 걸... 메시를 의심하지 말걸...

경기는 이겼지만, 나는 진 것 같은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2.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i)


바르셀로나하면 FC 바르셀로나와 더불어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안토니 가우디일 것이다. 에스파냐의 천재적인 건축가. 진정으로 시대를 앞서간 사람. 사실 처음부터 가우디 투어를 신청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 스페인의 그라나다에서 알람브라 궁전을 보고 싶었지만, 이미 오래전에 예매가 끝난 상태였고 어떤 방법을 동원해봐도 티켓을 구매할 수가 없어 포기했다. 그랬더니 바르셀로나에서 시간이 많이 남았다. 부랴부랴 가우디 투어를 신청했다.

까사 밀라에 갔을 때만 해도, 큰 감흥이 없었다. 국내에 차량이 3 대밖에 없던 시절에 주차장을 만들 정도로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이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가우디보단 오히려, 가우디와의 소송에서 패해 몰락한 밀라 가에 대해 더 집중해서 가이드 님의 말씀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다 가우디의 진가를 알게 됐던 곳이 바로 구엘공원이었다.

자신의 후원자인 구엘과 협력하여 만든 마을. 자연과 하나 되어 만든 마을답게, 숲 속의 요정 마을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숲이 울창하고, 꽃이 만발하니 천국에 온 것 같기도 했다. 거기에 시대를 앞서 가는 건축물까지. 어디 하나 천재성이 안 깃든 곳이 없었다. 그 시대에 시장이 있을 곳에 방음 시설을 만들고, 높은 곳에 기반한 마을이다 보니 부족한 수도 시설을 보충하기 위해 세워진 기둥마다 안에 물탱크를 만들고, 자연정화시설까지 만들었다. 그야말로 시대를 몇 백 년이나 앞서 나간 사람다웠다.


*


그리고 마침내 대미를 장식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가우디의 역작이자, 100년을 목표로 만들고 있다는 이 성당은 실제로 보지 않고선 그 느낌을 절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처음 가이드 님의 말에 따라 눈을 감고 이동하다가, 고개를 들어 이 건축물을 봤을 때를 잊을 수가 없었다. 우선 웅장함에 압도되었고, 자세히 볼수록 섬세하게 조각된 벽면에 감탄을 금치 못 했다. 그저 내 표현력이 아쉬울 뿐이었다. 다시 유아기 때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예쁘다, 멋있다, 아름답다, 천재다라는 말만 반복했다. 종교를 떠나서, 그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있었다는 것. 이게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느낌의 최대치였다. 가이드 님이 조각마다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설명을 해주셨는데, 투어 신청을 하길 잘했다 싶었다. 그냥 왔으면 이 성당의 매력을 1%도 모르고, 웅장하다 내지 어떻게 조각했대? 정도에서 감상이 그치지 않았을까. 왜 바르셀로나에 오면 사람들이 가우디 투어를 꼭 신청하라고 했는지 십분 이해했다.

내부에 들어갔을 때는 성당의 스테인 글라스에 또 한 번 매혹되었다. 외부의 각 벽면 테마에 맞게, 색깔 별로 있던 스테인 글라스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빛의 굴절이 달라져서 같은 공간인데도 새롭게 느껴진다고 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저녁쯤이었으므로, 예수의 죽음을 뜻하는 붉은 테마가 빛을 발하는 시간대였다. 아름다웠고, 어쩐지 처연했다. 어떤 역사적 장소에 있을 때처럼, 어떤 형용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기분이었다. 거룩해지고, 성스러워진 것만 같았다.

투어는 사그라가 파밀리아 성당을 끝으로 종료되었다. 가우디는 바르셀로나의 필수 불가결한 존재였다. 그리고 이것 하나도 알 수 있었다.

가우디는 천재라는 것.




3. 엘 그롭(El Glops)


바르셀로나 맛집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나오는 게 엘 그롭이라는 식당이다. 특히, 한국인에게 유명해서 각종 블로그나 sns에 후기들이 정말 많았다. 바이럴 마케팅에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유명하다니까 이번에도 속는 셈 치고 가보기로 했다. 스페인에 왔으니 빠에야는 당연히 먹어야 되고, 다른 메뉴를 하나 더 시켜야 되는데 어떤 걸 시켜야 될지 난감했다. 수많은 블로그에서 돼지 뽈살 스테이크를 추천했지만, 볼살이라니...... 왜 고사 지낼 때 쓰는 돼지 머리가 생각나는 걸까. 게다가 볼살이라, 지방이 많아 식감이 지나치게 부들거리고 느끼할 것만 같았다. 종업원이 두 번이나 주문할 거냐며 물어보러 왔었는데, 그때까지도 결정을 하지 못 했었다. 맛있다니 먹어 볼 것이냐, 그냥 아는 맛을 시켜 혹시 있을 위험을 피해 갈 것이냐. 그것이 문제였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다 아는 맛인 치킨을 먹기는 좀 그랬다. 같이 간 언니와 오랜 상의 끝에 뽈살 스테이크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먼저 빠에야가 나왔다. 빠에야는 짠 음식으로 알고 있었는데, 한국인들이 많이 찾아서 그런 건지, 간이 적당했다. (어쩌면 간이 적당해서 한국인들이 많이 찾은 걸 수도 있겠다.) 표현을 어찌하랴. 게 눈 감추듯 먹었다고 하면 그 맛이 조금쯤은 느껴지려나. 짭조름하지만 고소했고, 부드러웠다. 냄비까지 긁어먹을 기세로 파 먹었다. 한국에서는 해산물을 적게 넣어 거의 볶음밥과 다를 바 없었는데, 여기서는 밥이 적어 불만이었다. 그만큼 해산물이 혜자였다. 솔직히 같이 간 언니만 아니었다면, 하나 더 시켰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를 걱정에 빠트렸던, 돼지 볼살 스테이크가 나왔다. 비주얼은 나쁘지 않았다. 조심스레 살이 있는 부분을 잘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없어졌다. 엄청 부드러웠다. 입에서 살살 녹았다. 와, 돼지 볼살이 이렇다고? 정말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돼지 볼살이라 좀 그렇다던 사람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돼지 볼살이든 엉덩이살이든, 이 맛과 이 정도의 식감이면 어디라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충분히 만족할 만한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고 봤더니 가격도 꽤 적당했다. 합해서 27 유로 정도.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매 끼를 엘 그룹에서만 먹고 싶을 정도였다.




바르셀로나 여행을 하면서 한 가지 깨달은 건, 유명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의심하면서 이리저리 재보지 말고, 일단 우선은 해 보기로 했다. 적어도 크게 실패할 위험은 없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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