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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May 23. 2020

엄마의 건강검진 문진표에 치매 항목이 추가되었다

엄마의 나이듦을 깨달은 순간

출근 준비를 마치고 늘 그렇듯, 엄마가 차려준 아침밥을 먹기 위해 식탁에 앉았을 때. 한 구석에서는 엄마가 돋보기 안경까지 쓰고 무언가를 열심히 작성하고 있었다.


“뭐해?”


“아, 다음 주에 건강검진 가야하는데 이거 다 작성해가지고 오래. 뭐가 이렇게 많아.”


엄마는 몇 장씩 된 서류를 놓고 흡연 여부, 운동 여부 등을 묻는 문항들에 하나하나 답변하고 있었다. 마치 시험보는 사람처럼 꼼꼼하게 체크하는 엄마 옆에서 잠이 덜 깬 나는 아무 생각없이 밥을 먹었다.


“아니, 초경을 언제 했는지를 어떻게 알아?”


밥을 다 먹고 아침 방송을 보며 양치질을 하고 있는 내게 엄마는 혼잣말하듯 이야기했다.


“그걸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다 자기가 아는거지.”


나는 엄마가 갑자기 왜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나 생각하며 대답했다. 그리고 양치를 헹구려고 화장실에 들어갔을 때 엄마의 나지막한 목소리를 들었다.


“아니, 누가 뭐 언제 했는지 모르나. 그때부터 지금까지를 굳이 계산하는게 귀찮으니까 그렇지.”


투정 같으면서도 약간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엄마의 목소리. 나는 아침부터 내가 엄마의 말에 집중하지 못하고 무성의하게 대답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그 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니, 그냥 하기 귀찮은건데... 내가 이거 계산 못한다고 무조건 뭐 다 치매인가?”


치매? 무슨 소리인가 싶어 서둘러 양치를 마치고 엄마 옆으로 슬쩍 가서 문진표를 확인하였다. 서류에는 ‘치매 여부 확인 문진표’라고 쓰여 있었고 아래에는 기억을 떠올리거나 계산을 하는 등의 노력을 필요로 하는 여러 가지 문항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순간 내 마음은 쿵하고 내려앉았다. 우리 엄마에게 치매? 대체 그걸 왜 묻지?


엄마에게 물어보니 일정 나이 이상이 되면 건강검진 문진표에 당연하게도 치매 여부를 확인하는 서류가 함께 온다고 하였다. 그랬구나... 그럴 수도 있구나 싶으면서도 씁쓸한 마음에 돌아서려던 나는, 애써 담담하게 설명해주고서는 금새 울적해진 엄마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방금 먹은 아침밥이 울컥, 내 안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끼며 말없이 출근을 하였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우리 엄마


엄마는 언제나 나에게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이해하고 지지해주는 사람. 조금 부족하고 못나도 잘한다고 예쁘다고 응원해주는 사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에도, 나를 세상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주는 사람. 예전에 신경숙의 글에서 읽었던 엄마에 대한 구절을 보며 ‘엄마가 없는 명절’이라는 구절에 책 읽다말고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다른 것도 아닌 엄마가 없는 명절이라.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순간이 언젠가 나에게도 찾아와야만 한다는 인간의 운명 앞에 무력감을 느낀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바라는 것이 있다면. 이런 날은 조금 더... 더디게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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