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좋게 하는데에는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나는 주저 없이 인정을 최고로 꼽는다. 사랑이나 희생, 배려도 있지만 추상적이고 주관적이다. 나의 사랑이나 배려가 때로 상대에게는 집착이나 오지랖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인정만은 다르다. 예외 없이 통한다.
인정의 반대는 부정(denial)이다. 우리는 부정당할 때 분노한다. 아내로서, 남편으로서, 상사로서, 고객으로서, 피해자로서. 갑자기 끼어든 차량이 깜빡이를 켜지 않고 달아나면 부화가 치민다. 뭐가 부서져서가 아니다. (감정적)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해서다. 끼어든 운전자가 깜빡이를 세 번만 켜주면 화가 누그러진다. '당신. 나 때문에 놀라셨겠네요'라고 인정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관계에 있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문제를 예방하거나 해결하는 방법이 인정이다. 인정은 마치 비타민과도 같다. 없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건강해질 수도 없다. 인정은 특히 어린 자녀들에게 반드시 필요하다. 마치 행복 통장과도 같다. 자라며 받은 인정은 통장에 차곡차곡 나이 들면서 유용하게 쓰게 된다. 비 오는 월요일 아침 학교 가시 싫어 꼼지락 거릴 때 부모로부터 "월요일인 데다가 비까지 내리니 학교 가기 싫구나" 하고 감정을 인정받은 자녀가, "학교 안 가고 뭐 해!" 하고 부정당한 아이보다 자라서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 인정 통장이 비게 되면 커서도 인정에 대한 갈망으로 주위 사람이 피곤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희대의 영웅 지자 바람둥이였던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가 수많은 염문을 뿌리고도 단 한 번의 봉변도 당하지 않은 것도 다 인정 덕분이다. 길거리에서 엑스 걸프렌드와 우연히 마주쳤을 때 다른 남자들은 고개를 돌리거나 골목길로 꺾어 달아나기 바빴지만 그는 언제 어디서 만나든 한결 같이 대했다고 한다. 한 때 나의 파트너였음을 부정하지 않고 인정한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 대부분의 경우 화근은 부정당했다고 느끼면서 시작된다. 인정의 효과가 얼마나 대단한지 부부싸움에서 한 번 써먹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