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헤비스톤 Feb 29. 2024

작전을 완성할 수 있었는데

작전명 : omg@gast

요즘

돌아서면 까먹는다.

치매초기인가 걱정했는데

지인들에게 물어보니 다 비슷하단다.


경주 나들이하러 가던 날,

주유소에 들러 주유하고

룰루랄라 음악 들으며 가고 있다가

억!  내 카드...

주유소에 전화했다.

잘 모셔둘 테니 찾아가란다.

다행이다.

피식 웃음이 나오면서

'깜빡'때문에 크게 사고 칠 뻔했던 오래전 사건이 생각났다




90년대 초,

H자동차에서는 신형 아반떼의 미국수출을 앞두고 여러 가지 주행시험을 하고 있었다.

당시 L.A지사에서 주재원으로 근무 중이었던 나는, 아반떼 시험차를 몰고 근교 빅베어 산

정상부까지 오전오후 두 번 주행평가 업무를 배당받았다.


Chino에 있는 기술연구소에서 빅베어까지 핸들링을 체크하는 과정이었다.

S자로 되어있는 산악도로를 보름동안 왕복 30번을

오르락내리락해야 했다.

운전을 좋아하는 나는 음악을 들어가며 즐겁게 평가했다.


일주일쯤 경과했을 무렵, 사무실 오전업무를 늦게 마친 나는 오후에 서둘러 빅베어까지 두 번 왕복해야 했다.

즐겨 가던 한인 음식점 오미정에서 점심을 먹고 빅베어로 출발하려는데 연료게이지가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빨리 기름 넣고 가자'

식당 근처 네거리에 있는 Exxon 주유소로 들어가서 주유기옆에 차를 세웠다.

직원이 다가와서 “얼마나요?(영어로)물었다

십불어치요” (당시 약 30리터 주유 가격)

직원이 조작을 마치자 주유기를 차 뒤에 꽂았다.

숫자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사이 운전석에 있던 A4용지를 집어 들고 오늘 코스를 점검했다.

틱!

주유기 손잡이에서 주유가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손목시계를 보니

퇴근 때까지 두 번 왕복할 시간이 빠듯했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고 액셀레이터를 밟았다.


퍽!

뭔가 차를 게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지? 생각하는 순간

타아압!!!

직원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이지?

기어를 P단에 넣고 차에서 내렸다.

순간 내 앞에 기막힌 장면이 펼쳐지고 있었다.

주유기가 호스에서 끊어져 널브러져 있고 끊어진 호스 끝에서 휘발유가 콸콸…

직원이 달려와 급히 주유를 차단시켰다.  

눈앞이 하얗게 변하고 있을 때 경찰차가 보였다. 곧 911 소방차도 왔다.

머릿속 한쪽에는 ‘경찰서로 잡혀갈 수도 있겠다’ 염려하면서 다른 한쪽에는

‘어쩌지? 빨리 주행시험하러 가야 되는데’

더 큰 걱정이 가득했다.


주유소 직원이 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차량 보험사에 연락하니 보험사에서 제반 조치를 취했다.

경찰이 내게 다가오더니 이제 가도 된다고 했다.

'엇, 안 잡아가네?'


잽싸게 차를 몰고 도망가듯 그곳을 빠져나왔다.

주행시험 하는 내내 사고 생각만 했고. 몇 번인가 몸이 오싹함을 느꼈다.


다음 날 보험사에서 전화가 왔다. 주유기 하나를 통째로 교환했고. 오후 내내 영업을 못했단다.

과실비율은 90:10, 내가 10이라고 했다

손님 관리를 잘못한 주유소가 90%를 책임진다고 했다.

10%는 보험사에서 알아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주유소 폭파시킬 뻔하셨네요, 하하”

보험사 직원의 농담 반 진담 반 소리가 간담을 써늘하게 했다.

나는 주유소 폭파 미수범인데도 잡혀가지도 않았고 벌금도 내지 않았다.

한 달쯤 후, 음료수 사들고 그 주유소

베트남 출신이던 그 직원과 같이 밥 먹었다.

(주유소가 있던 Nogalis st와 Colima rd 거리)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에 들렀다.

“카드 찾으러 왔는데요”

“아, 이리로 오세요”

직원 뒤를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 앞 서랍을 열더니

“어느 카드지요?”

허걱… 주인을 기다리는 카드가 스무 개쯤 있었다.

구석에 있던 내 카드가 몹시 서운한 얼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미안, 다신 안 그럴게'





매거진의 이전글 용감한 건지 간이 배밖에 나온 건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