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작가다 공모전
호주 시골 마을로 온 지 3년이 넘어간다. 한국의 도시 촌놈이 호주의 시골에서 살게 된 것이다. 계절도 반대인 지구의 반대편에서 그동안 많은 것들을 배웠다.
한 시간 거리에 바다가 있어 낚시를 배웠다. 생선 비늘도 못 다듬던 내가 이제 낚시 바늘에 줄을 끼워 능숙하게 '낚시꾼의 매듭'을 묶을 수 있다. 갓 잡은 생선으로 신선한 회를 뜬다. 운동 치인 내가 테니스를 배웠다. 공을 보고 떨어질 곳을 예측해 달려가 쳐내는 것은 많이 부족하지만, 서브를 꽤나 정확히 넣을 수 있고 점수를 매길 수 있게 됐다. 꽃무늬가 이뻐서 충동구매로 손에 넣은 재봉틀로 옷 만드는 것을 배웠다. 처음엔 사용법을 몰라 실이 자꾸 엉키고 끊겨 제대로 한 줄을 박아낼 수 없었다. 할머니들과 일 년 정도 일주일에 하루씩 바느질을 해오며 여러 벌의 옷과 파우치, 에코백 등을 제작했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으로 코바늘과 뜨개질을 배워 다수의 컵 받침대 목도리, 가방을 만들었다. 피아노로 좋아하는 노래를 몇 곡 칠 수 있게 됐다. 작년 4월 말에 구입한 후 처음에는 학교종이 땡땡땡 양손 연습으로 시작했다. 피아노 학원에 가본 적 없기에 양손으로 피아노를 치는 것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재미로 치는 건데 뭐, 그저 안되면 말지.. 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미 샀으니 하루에 한 마디씩만 익히기로 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butterfly waltz , Canon, 언제나 몇 번이라도 등의 좋아하는 음악들을 익숙하게 칠 수 있다. 한 달에 한곡씩 배운 격이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시드니의 Queen Victoria Building의 상설 그랜드 피아노에서 덜덜 떨며 연주를 하는 버킷 리스트를 이뤘다.
이 곳에서 '제대로' 배운 것은 없다. '그저' 했을 뿐이다. 인구 천 오백명의 작은 시골이라, 상업적으로 돈을 받고 수업하는 학원은 없다. 그저 마을 사람들이 자기들도 하고 아이들도 함께 하려고 자발적으로 운영회를 만들어 경기를 한다. 테니스를 배우러 갔을 때에도 누구 하나 채를 제대로 쥐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냥 쳐봐'
그저 경기에 투입하고, 실수에도 웃어 주고, 민폐를 끼쳐 미안해하는 나를 다독여 줬을 뿐이다.
‘처음이니까 못 치는 거 당연한 거지'
'이렇게 하면 더 쉬워' 하고 넌지시 알려 줄 뿐이다.
아이들이 농구를 배울 때도 그렇다. 한 번도 그 농구를 해 본 적 없는 아이를 공 튕기는 법, 경기 규칙 하나 가르쳐 주지 않고 그저 시합에 집어넣는다. 다만 처음 시작하는 아이들에게는 조금 더 여유를 준다. 혼자 드리블 해 갈 수 있도록.
'잘했어, 그래 지금 슛하는 거야!'
‘그냥 재미있으면 됐지’ 이 곳에 와서 가장 많이 들은 말이고 나도 많이 하는 말이다.
한국처럼 아이들만 열심히 경기를 하고 어른들은 커피를 마시거나, 지켜만 보는 것도 아니다.
유치원에 막 들어간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초등 저학년, 고학년 게임이 끝나고 나면 중학교 아이부터는 성인과 함께 경기를 한다. 마흔이 넘은 아줌마 아저씨들이 농구코트를 누빈다. 중학생이나 고등학생인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게다가 잘한다! 처음엔 중년의 푸짐한 풍채에 농구 민소매 티셔츠와 레깅스를 입고 경기에 임하는 아줌마, 아저씨들을 보고 꽤나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제대로' 기초를 배우지 않더라도, 그저 시도하고 즐기는 중에 실력이 는다. 어느 정도 실력과 관심이 생긴 후 추가 강습 등으로 실력을 늘려가고, 즐기며 오래오래 해 나가는 것. 그것이 내가 본 호주에서 배우는 법이다. 어떤 실패를 하더라도 괜찮다고 다독여 다시 시도하게 해 주는 힘. 호주에서 배운 가장 소중한 가치 중 하나다. 실수를 하거나 잘 못해도 '괜찮아' , '재미있었으면 됐지' 하고 다독여 주고, 조금만 잘해도 'fantastic!', 'awesome' 하고 칭찬세례를 퍼부어 준다. 한국에서는 가끔 잘한다는 칭찬을 받게 되면 다음엔 잘한다는 말을 못 들으면 어쩌나는 걱정이나 긴장을 하곤 했는데, 오히려 폭풍 칭찬에 면역이 생기니 칭찬은 기본값으로 여기고 내가 하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잘 못해도 그 과정에서 내가 즐거웠으면 되는 거니까.
그렇게 하나씩 작은 시작을 해나가다 보니 올해 초에 브런치에 글도 쓰는 용기를 내게 됐다. 알지도 못하는 누군가에게 내 속 깊은 이야기를 펼쳐놓는 것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글 솜씨가 있다는 말도 들어 본 적이 없어 “나 같은 사람도 작가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이 됐다
하지만 뭐 어때, 하나씩 글을 쓰고 그저 나누어 봤다. 솔직한 글을 쓰고 나누니 공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아…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구나. 내 글을 보고 힘을 얻는 사람이 있구나!"
가슴이 벅차오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하나하나 쓰고 나니 호주 생활을 정리할 만한 내용이 쌓였고, 브런치 북까지 꾸리게 되었다. 아직 많지 않은 구독자이지만, 내 글을 읽고 어떤 의미를 발견한 준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나도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