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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Jan 25. 2023

당근마켓에서 스승님을 찾다.

새해에는 나도 절실하리라. 얍!

“사장니임~ 방학 동안 순우유 뚱카롱 품절 안되게 해주세요오! 네에?
제가 매일 살게요”


 좋아하는 순우유 뚱카롱이 품절이라고 아쉬워하며 예쁜 문장을 선물하는 여학생. 예쁘다. 아 예쁘다. 정말 예쁘다. 온종일 한참 되새겼다. 예뻐서. 학생의 눈웃음도 학생의 문장도. 예뻐서. 이게 뭐라고 절실히 부탁해 주다니! 본사 발주 어플을 클릭한다. 순우유 뚱카롱 주문 완료.


 예쁜 눈웃음은 따라   없지만 애교 따라 해볼까. 새해맞이 기도를 시작한다.

 1차 기도: 쓰는 재주를 가지고 싶어요. (솔직히 평생이었으면. 아. 평생 뭘 달라하긴 양심 없지. 저 학생은 방학 동안이라는데. 욕심 부리다 벌 받지.)

 수정 기도: 2023년 한 해 동안만큼은 제게 써낼 힘을 주세요. (아 열정은 내 몫인데 이러다 혼나지. 게다가 한해 내내라니 과욕이지.)

 재수정 기도: 2023년 상반기에는...... (앗 이것도 과한가. 봄에는. 이것도 좀 그렇지. 그냥 나도 '방학 동안만이라도'로 해야 하나.)

 소심에 소심을 물고 기도가 끝나지 않는데, 친구가 카톡을 보내온다. 사진 가득. 어제 당근마켓에 이것저것 올린다고 했는데, 밤에 연락이 많이 왔다며 보내온 캡처본들이다.

 

아 스승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 배웁니다.
물만 닦고 머리 안말리고! 할 일 다 마치고 여유있게 쓰는 것이 아니라 머리 젖은 채로!!

 다수의 구매 희망자분들의 글을 읽고 또 읽으며 진정 반성하였다. 축복받기 위해 나도 아이패드를 팔아야 할까 생각이 들 정도의 간절함, 지금 당장 달려가지는 못하지만 곧 머리도 안 말리고 달려갈 것임을 강조하는 간절함. 또 다른 분들의 간절한 문장들. 당근 마켓에서 격렬하게 배운다.


 내 돈 내고 물건을 사려해도 구매 목적의 기승전결이 담긴 글에 갖은 축복과 찬사를 담아야 하는 것이군요 스승님. 소심하게 머뭇거릴 틈 없이 즉각 행해야 하는군요 스승님. 이리 간절해도 차례가 돌아올까 말까인데. 아무것도 쓰지 않으면서 재주가 생기기만 바라다니. 반성했습니다 스승님.


 꼭 써야지. 잘 쓰려 하지 말고 일단 써야지. 새해에는 당근마켓 스승님들처럼 간절해야지 다짐하며 매장이 붐비는 시간을 지난다. 오래간만에 찾아온 남학생 둘이 카운터 앞에 앉아 책을 뒤적인다. 책 한 권을 펼치다 말고 한 학생이 음료를 만드는 내게 묻는다.

 “작가예요?”

 “아니~ 무슨요~~”(왜 마음이 찌릿.)

 “아~ 책이 늘 많아서요.”

 부지런히 만든 음료를 건네며 찔리는 마음을 웅얼거리듯 고백한다.

 “실은 작가되는 게 꿈이에요.”

 바쁘지만 않았다면 "승훈이처럼 가게 와주는 친구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승훈이 꿈은 뭔가요?”하고 대화 좋아하는 남학생의 이야기를 열어 보았을 텐데. 그러기엔 기다리시는 고객분들이 많았다.


 오늘 밤에는 물만 닦고 말리지 않아 젖은 머리로 내 주위 모두를 축복한 뒤, 절실하게 글을 쓸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글재주로 써도 좋을까 고민하지 않고 그냥 쓸 것이다. '작가예요?' 묻는 승훈 군에게 당당히 '응 사실 그래!' 답할 수 있는 날을 그리며 쓸 것이다.

 하느니임~! 저 글쓰기 시간 좀 품절 안되게 해주세요. 네에? 제가 매일 쓸게요~

 순우유 뚱카롱을 좋아하는 학생이 매일 온다 하고는 오지 않더라도 나는 꾸준히 그 아가가 귀여울 것이다. 등장할 때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활짝 웃을 것이다. 뚱카롱을 사든 안 사든 그 아가가 계속 예쁠 것이다.

 하늘에서도 날 어여삐 여기실 수 있잖아. 꾸준히 열심히 써보겠다 해놓고 좀 부족하더라도 나름의 간절을 표현하면 '요놈 귀여운데!' 해주실 수 있잖아. 하자 오늘은. 꼭.


 (오늘밤은 많이 피곤할 것 같은데, 내일 아침부터로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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