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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Mar 26. 2022

저 오빠 몇 시에 와요?

나이보다 귀여운 망상에 대한 변

하아. 하아. 하아아.

 "아니! 왜 이렇게 뛰어 왔어요?"

 "아니이~ 저 오빠가 우리 학교 잘 생긴 오빤데!"

 "아아니! 오빠 보려고 이렇게 뛰어 온 거야?'

 "힝, 오자마자 가버렸어요. 저 오빠 몇 시에 와요?"


 며칠 전. 눈이 큰 중학교 1학년 여자 친구. 제 몸보다 커다란 교복을 입고 교복보다 더 커다란 가방을 짊어지고, 멋진 3학년 오빠 따라 전력질주를 한 것이다. 꺄아. 정말 귀엽다. 와락 끌어안아 주고 싶게 귀엽다. 야속한 오빠! 조금만 있다 가지. 가게도 좁으니 바로 곁에 앉을 수 있었는데!


 "입학하자마자 벌써 학교에서 제일 잘생긴 오빠를 찾아냈단 말이야?"

 "아~ 급식실에서 매일 보거든요. 아, 왜 바로 가지!"

 장난 본능이 스물스물. 아가 앞에서 우쭐거린다. 거들먹거리는 마흔둘 아줌마.

 “나 저 오빠 인스타그램 아는데!”

 “아 진짜요? 오빠 인스타도 해요?”


 이어 들어왔던 다른 학교 1학년 학생들도 수군거린다.

 "저 오빠가 문정이야? 손곡이야?"

 "왜~ 수지에도 멋진 오빠 많잖아요!"

 "(새침한 표정과 말투가 중요) 전 연애에는 관심 없어요."

 연애에 관심 없지만, 잘생긴 오빠 교복이 어느 학교 교복인지는 매우 궁금한 중 1도 꺄아. 참말 귀엽다. 이마의 아기자기 여드름도 오늘따라 하트 정렬로 보인다.


 귀여운 친구들과 인사하고 나도 귀여운 생각을 시작한다. 또 엄마 얘기냐 하겠으나 별 수 없다. 내 모든 생각의 결론은 엄마다. 매일 다시 시작하는 힘도 엄마고 매일 다시 정돈하는 힘도 엄마다. 마흔두 살이 된 지금도, 엄마 생각만 하면 징징두 살이다.


 우리 엄마 여기 몇 시에 와요?

 엄마를 안아보는 건 감히 꿈도 안 꾼다. 엄마 목소리 못 들어도 좋고 엄마 얼굴 못 봐도 좋고 그저 엄마 뒷모습 따라 달리기만 해도. 내 깜냥보다 커진 나이와 내 나이보다 더 큰 일상 짊어지고 달려도 마냥 가벼울 것이다.

 '헉헉 우리 엄마 여기 몇 시에 와요?' 할 곳이 있었으면 좋겠다. '아니 엄마 뒷모습만 보겠다고 이렇게 달려온 거야?'라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나도 새 교복 입은 14세 아가처럼 거친 숨 내쉬며 외칠 것이다.


 “아니 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은 엄마거든요.”

 


만약 길에서 봤다면 제가 먼저 인사할게요!

이렇게 귀여운 문장 보셨습니까?

 동네 버블티 가게 고객님들께서는, 자꾸만 내게 '중년보다 귀여워져라' 주문을 거신다. 수줍음이 많아 이름도 크게 말하지 못하던 5학년 아가가 올려둔 선물이다. '제가 이사를 가서 아쉽지만 만약 길에서 봤다면 제가 먼저 인사할게요! 건강하세요!!'라니. '길에서 봤다면'과 '인사할게요', 과거와 미래가 한 문장에서 만나니 너무 귀여워 눈물이 고였다. 얼음물 마시는 햄스터 메모지에 꾹꾹 눌러쓴 편지, 정성 가득 포장한 간식과 핸드크림 세트, 예쁜 쇼핑백까지...... 받아도 되는 걸까?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이가 있을까!


 그럼 또, 이사 간다 하셨던 귀여운 고객님들을 떠올린다. 한분 한분 재회하며 안부 나누는 상상을 한다. 외국 간다 한 친구, 서울 간다 한 친구, 인천 간다 한 친구, 세종 간다 한 친구, 기숙사 들어간다 했던 친구. 나도 모르게 쇼케이스 위로 두 팔을 올려 턱을 괸다. 귀여운 생각을 하다 보면 턱을 괴게 되고 턱을 괴는 행위는 생각을 더 귀엽게 만든다. '괴다'의 옛 활용법에 '특별히 귀여워하다'는 의미도 있던데, 그래서인가 귀여운 생각에 턱 괴기는 필수다.

 

세상 따뜻한 표현, '내적 친밀감'

 말을 걸면 불편할까 하여 아는 척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음료만 건넸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그 시간 참 귀여웠구나' 하며 울컥하게 만드는 친구도 있다. 화사한 미소로 나타나 꽃과 편지를 남겼다. 이 구멍가게에 '내적 친밀감'이 생겨 고3 암흑기에 소소한 행복을 느꼈다고. 노래로 만들어 부르며 흐느적흐느적 춤추고 싶은 문장이 담겨 있었다. 7평에 상주하는 마흔둘 아줌마는 매일 귀여운 감동을 선물 받는다.

 

 다시 턱을 괴고 생각한다. 이 예쁜 친구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멋지게 자라나는 동안 나도 안주하지는 말아야지. 이 작은 친구들이 세상에 나가 본인만의 이름을 만드는 동안 나도 명함에 쓰고 싶은 문장 향해 달려야지.


귀여운 친구들은 아르바이트 친구가 되어 행복을 선물하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엄마 생각, 고객님 생각, 아르바이트 친구들 생각. 온갖 귀여운 생각에 빠져 있는데 꽃받침 내리게 만드는 고객님 입장! 1학년 뛰게 만든 잘생긴 오빠다. 이야기 전할 생각에 벌써 두근거린다.

 "아니 지난번에 그렇게 일찍 가버린 거야?"


  아! 도무지 42세다운 묵직한 생각을 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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