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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Feb 02. 2021

내 마음 덮어줄 이불 한 채 준비하셨나요?

40대에 고민하는 최선

최선을 다해야지.

 

요즘 자주 중얼거리고 있다.


이제껏 최선이 아니었는가 묻는다면 물론 지금껏도 최선을 다했다.  결혼  엄마, 아내, 며느리.  역할을 위해 바삐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내 마음'에도 최선이었을까?




한 시간 동안 복도에서 계량기 녹였어!!


1월 한파가 이어지던 때, 친구의 전화가 왔다.


한 시간 동안 쭈그리고 앉아 드라이기로 계량기를 녹였다고 했다.

- 뭐어? 이 추위에??

상상만 해도 몸이 얼어붙는 느낌이었다.

늦잠을 자는데 아이가 "엄마 물이 안 나와." 해서 눈을 떴다는 것이다.

그래도 먼저 드라이기 작업을 하고 계시던 옆집 분과 수다를 나눈 덕에 외롭지는 않았다고 했다. 다행이야.


그날 밤 친구는 계량기의 숙면을 위해 뽁뽁이와 수건을 넣어주고 편한 밤을 보냈다.

그런데 계량기에게는 편한 밤이 아니었는지, 다음날 또다시 "엄마 물 안 나와"로 잠을 깼다.


친구는 의아했다. 짜증도 났다.

- 아니 그렇게 최선을 다했는데! 또 얼다니 정말 너무하네!


드라이기를 들고 복도로 나선 친구는,

어제의 동지였던 옆집을 바라보며 즉시 반성하였다며 사진을 보내왔다.


계량기의 입장에서 생각한 최선

다시는 해동 작업 따위 하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 담긴 이불.

이불 덮은 계량기 사진에 웃음이 터졌다.


나의 최선이 온 지구에서 최선이라 믿지 말 것.

꺼진 최선도 다시 볼 것.

계량기 입장에서 따뜻한가 최선을 다해 확인할 것.




최선입니까, 정말 최선입니까.


이후 자주 나 자신에게 묻는다.


지금껏 내 역할에 최선인가를 묻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바빴다면,

지금은 내 마음을 위한 최선인지 먼저 묻곤 한다.

이불 묵직하게 덮고 편히 잠든 옆자리 계량기를 부러워하며

송송 들어오는 바람에도 악 소리 못 내며 얼어가는 계량기가 내 마음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이불 한 채 계량기에 양보하더라도 계량기가 살아야 사람도 사는 것이니

내 마음 먼저 덮어주어야 다시 누군가에게 콸콸 온수 나오는 수도꼭지로 남을 수 있다.


어딘가 얼어버린 느낌이라면 확인해야 한다.

이불 흘러내리지 않게 잘 덮어주었는지. 마음속 계량기 얼지 않게 최선을 다했는지. 정말 최선이었는지.





최선에 대한 고민. 하나 더.


상대방의 최선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는 일도 줄여가고 있다.

준우에게 이제 4학년이니 수학 문제집을 좀 풀어보라고 하였다.

한 시간이나 힘들게 문제집을 풀어서 좀 쉬어야 한다고 한다.

"아고 고생했네, 많이 풀었어? 힘들었겠다." 하며 토닥토닥 끌어안으니 "한 페이지나 풀었어!" 한다.

토닥이던 손이 잠시 멈칫.  

아니 한 장도 아니고 한 페이지라니. 심지어 1단원인데. '만 단위 숫자에 0 붙이기'만 하면 되는데. 문제집도 아니고 참고서여서 몇 문제 되지도 않는데.


그건 준우의 최선이니 토닥임을 멈추면 안 되지.

준우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칭찬해 주어야지.

계량기의 입장에서 따뜻하게 덮어 주어야지.


최선을 배워가는 40대 엄마는 다시, 최선을 다한 아들을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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