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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Nov 23. 2020

학우 여러분 마지막 주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브런치, 40대의 마라톤

내 인생은 마라톤이 아닌 전력질주로 금방 어디든 닿을 것 같던 때의 이야기.



대학 새내기 때, 마라톤 대회가 있었다.

중간중간 택시를 타는 선배들도 보이고.

나는 친구와 걷다시피 달렸다.

으하하하 수다 나누며. 뛰는지 걷는지 모를 속도로.


4월 햇살을 레드카펫 삼아 운동장에 들어서니 학생회장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학우 여러분, 마지막 주자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모두 박수로 응원해 주세요!”


달려야 했다. 모두가 바라보고 있다. 아 부끄러워.

벌겋게 타오르는 양볼을 가리지도 못한 채 일단 달려야 했다.

그리고 박수!




지금도 내가 늦는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의 감정이 된다.

아니 어쩌면 일부러 그때의 박수를 불러일으키는지도 모르겠다.


“자 여러분 저는 좀 느리지만 끝까지 해내고 있습니다. 함께 응원해 주세요!”

그렇게 마음속 여러분에게 응원을 요청한다.


브런치에 어떤 글을 어떻게 써볼까 고민하며 지우고 또 지운다.


14년간 전업주부로 조용히 지내던 사람이

발표 전이면 손바닥이 새파랗게 변하던 소심한 사람이

어떻게 무려 창업을 저지르게 되었는지,

거절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던 사람이

어떻게 조금은 더 단호해질 수 있었는지.


나와 비슷한 분들에게 공감이 되고 용기가 되는 글쓰기를 다짐하고는

자꾸 신발끈만 조이게 된다.


계약서에 도장 찍고 코로나 찾아온 이야기.

새빨간 호러물인데 글로 적자니 공포가 증발된다.

온기가 증발된 새벽 커피를 들이키며

마음속 박수를 꺼내어 본다.


- 브런치 글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말씀하시는 고객님도 부끄러워하시고

듣는 나도 부끄러운 문장.


- 오늘 올린 글 재미있더라. 아껴가며 또 읽을 거야.


뭐라 대답할지 모르겠어서 자꾸 말을 돌리게 되는

친구의 고마운 문장.


그래. 응원을 믿어보기로 한다.

조이던 신발끈을 마지막으로 한번 더 꽉 조인 뒤, 허리를 들어 앞을 바라본다.  


일등을 응원하는 박수를 기다리는 것은 아니잖아.

뻔한 꼴찌여도 함께 끄덕여줄 누군가가 있으리라.

꼴찌를 응원하는 그 박수를 믿으며 끝까지 달려보자.




자 여러분,

이제 막 사십 대의 운동장에 들어서는 제가 보이십니까!


자 여러분,

여러분은 어떤 달리기를 시작하셨습니까!


시작이 두려워 저처럼 시작총을 못들은 척 하고 계셨다면

땅! 이제 시작입니다.

소심에 구겨졌던 종이와 펜을 꺼내겠습니다.

여러분도 어서 신발끈을 꽉 조여주세요.


저와 여러분, 우리를 위한 박수로 우리의 마라톤을 시작합니다.

늦어도 좋으니 마지막까지 꼭 함께 달리자고,


박수 한번 크게 보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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