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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Nov 13. 2020

엄마도 꿈이 있었어? 엄마가 꿈이었어?

매일 읽던 엄마가 매일 쓰기로 한 이유

책이라면 책갈피 꽂아두고 매일매일 읽고 싶은 글입니다.

지역 커뮤니티에 용기 내어 올린 글에 많은 분들께서 답글을 적어주셨다.

엄마와 나 사이의 감정에 공감한다고도 하셨고

지나간 꿈에 마음이 아프다고도 하셨고

지금 나름의 꿈을 키워간다고도 하셨다.


사랑으로 포기한 꿈을 기억하며 가족들 뒷바라지하는 삶이 갑갑하다고 적으신 한 분의 진심에 한참을 머물렀다.


‘사랑 때문에 포기한 꿈’은 참 아프지만

‘꿈까지 포기하게 만든 사랑’은 참 멋진 삶이라고 나의 진심을 적었다.

커피 한잔도 책 한 권도 잠시 수다도 이름을 붙이면 “내 시간”이 될 것이라고

함께 나의 시간을 만들어보자고 조심스레 남겨보았다.


14년 전업주부의 삶.

분명 내 하루는 너무나 바쁜데

내 이름의 하루는 사라진 느낌이 들곤 했다.


매일 책을 들며 채웠던 내 이름의 빈자리.


책이라면 책갈피 꽂아 매일 읽고 싶다는 한 분의 답글에 눈물이 고였다.

글을 써도 좋다고 허락받은 느낌이었다.


소소한 나의 이야기에 힘을 얻은 누군가의 존재가 나에게 힘이 되었다.




무엇이든 묵묵히 받아들이던 첫째와 다르게

둘째는 말을 시작하면서부터 매일 물음표를 던졌다.


특히 엄마에 대해.


"엄마는 왜 입술을 안 바르면 아파 보이는 거야?"

"엄마는 왜 나보다 배가 나와 있어?"

"엄마는 새벽에 도대체 무슨 공부를 하는 거야?"

"엄마도 이제 회사 갈 거야?"

어린이집 다니면서부터 말문 막히는 질문들을 안기곤 했다.


내 대학 졸업 사진을 보고는 어린이집 엄마 중 한 명인 "OO엄마(예쁨 날씬 어림 왜 똑똑하기까지 함)네!" 하며, 

배 아파 낳아준 제 엄마를 몰라보아 배꼽 잡는 상처를 주기도.


요즘은 코로나 집콕 생활 후유증으로 팬티가 작아서 못 나간다길래  

3학년이지만 6학년 사이즈 팬티를 사주었다.

넉넉하다 못해 헐렁거리는 팬티를 사주어도 도무지 밖에 안 나가겠다는 아이.

( 집콕이 너무 행복하다는데. 걱정이다. )


이 아이가 던진 질문 중

마음 중앙에 세워진 문장이 있다.


"엄마도 꿈이 있었어? 엄마가 꿈이었어?"


어린이집 가방 챙겨주며 그 질문을 들었는데 순간 멈칫.


"응 지금은 시현이 준우 엄마로 아빠랑 행복하게 사는 게 꿈이야."

동화 속 엄마처럼 자상한 표정으로 온화하게 대답하며 일단 등원시켰지만

마음 속에는 거친 너울이 일어서고 있었다.


동화처럼 깊숙한 곳에 숨어 있던 '엄마의 꿈'이 며칠간 일렁였다.


며칠을 고민하고 아이에게 말해 주었다.

엄마도 어릴 때 꿈이 있었다고.

그러니 아이는 또 묻는다.

"근데 왜 안됐어?"


그러게. 왜 안되었을까.


마흔에 돌이켜보는 이십 대.

더 죽을 힘으로 달렸으면 어디에든 더 가깝게 닿았을 것 같은데.


'후회 없이 최선을 다해서 실패지만 실패가 아니었다'라고 말하지 못했다.  

이루지 못한 이유에 대해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려웠다.




쓰기를 결심하다.


나의 글에 공감하고 위로받았다는 누군가의 이야기.

엄마의 꿈을 묻는 아들.

바쁜 나와 다르게 바쁘지 않았던 나의 이름.


그 모두를 꺼내어 손바닥 위에 올려본다.

'에이 내가 무슨......' 싶었던 마음도 살포시 꺼내어 본다.


잘하지 못할까 망설였던 출발들.

일단 출발하면 한 발자국이라도 내디디게 될 터이니.

이야기들이 날아가지 않게 주먹을 꼭 쥔다.

출발을 결심했다.


마흔이 된 엄마는 6학년 팬티를 입은 3학년 아들에게 선언했다.



엄마 이제 매일 글을 쓸 거야.


매일 읽는 사람으로 살아온 나는 이제, 

매일 읽고 매일 쓰는 사람으로 살기로 했다. 


“오늘은 새벽에 뭐 썼어?” 묻는 남편과 아이들 얼굴을 떠올리며

나의 끄적임에 끄덕일 누군가를 떠올리며

마흔의 가을부터는 매일 써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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