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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Nov 11. 2020

마흔, 환갑에 사라진 엄마를 기억하며.

소중한 사람의 빈자리로 여전히 아파하는 이들에게


엄마가 사라지기 며칠 전 해주었던 멸치볶음을 한참 버리지 못했다.


남편 회사 가고 아이들 학교 가면 반찬통 꺼내 냉장고 앞에 주저앉았다.

엄마 손길에 바싹 졸여진 멸치들이 울음소리에 바스러질까 봐 소리를 삼켜가며 꺼이꺼이.

나는 왜 그날 엄마와 김밥집에 갔을까.

마지막인 줄도 모르고, 엄마는 왜 또 그렇게 맛있다고 했을까.

엄만 왜 또 이리 정성스레 반찬통에 멸치볶음이라고 써붙인 걸까.


친구나 동네 엄마들 전화가 오면 신나게 받고

하교 시간이 되면 신나게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그러다 잠시 혼자가 되면

엄마를 감추고 신나게 살아냈던 일상이 버거워 눈물이 신나게 떨어졌다.


하루 열 번은 전화 걸어 투덜투덜 떠들었던 때처럼

기억하는 엄마 목소리를 끄집어내며 종일 참던 말들을 쏟아낸다.


몰래 울던 낮이 지나면 꿈에 살아있는 엄마를 만난다.


“엄마참고마웠어엄마는최고의엄마였어엄마사랑해엄마이제우리걱정하지마엄마사랑해”


하얗다 못해 새파란 엄마 귀에 대고 가슴을 찢으며 내지르던 순간. 엄마는 함께 였을까.

“그때 내 얘기 들었지?” 엄마를 만나 묻는다.




아직도 아프냐 묻기도 한다.

소중하다는 단어만으로는 화날 정도로 소중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고

그 아픔에는 시간이 약이 아니더라.

아픔은 여전히 매 순간 울컥. 엄마가 쓰러졌다는 전화를 나는 지금도 매일 받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 순간은 더욱 또렷해지고

모두가 쉽게 마주하는 하루가 엄마에겐 왜 어려웠는지

울다 보낸 하루가 엄마에게 미안해 더욱 아팠다.


마흔을 앞두고 내 아픔을 덮어주는 약을 찾았다.

백점 시험지를 들고 문 앞에서 엄마를 크게 부르던 어린 시절.

나를 맞이하던 엄마 얼굴이 약이다.

오로지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동그라미로 하루를 풀어내는 것만이 내겐 약이 되었다.


마흔이 되면 내가 모든 것에서 일어설 것이라며

나도 못 믿는 나를 굳게 믿어주던 엄마.

그랬던 엄마에게 “나 진짜 해냈지?”하며 우쭐대려는 마음만이 약이 된다.




소중한 사람이 갑자기 사라졌지만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누군가에게


"시간이 약이야.", "산 사람은 살아야지." 속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산 사람의 삶을 살아내는 시간.

그 시간은 온통 아픔이다.

참아내려 할수록 아픔은 더욱 단단해진다.


찢어지는 울음을 참으려 허우적거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고

어떤 말도 위로가 되는 순간에 선 누군가가 있다면, 

말하고 싶다.


아픔을 참는 아픔과 싸우지 말고

하루를 동그라미 가득한 시험지로 풀어가며 함께 이겨내자고.


각자에게 주어진 오늘을 함께 풀어내며 아픔을 이겨내자고 말하고 싶다.


자. 시작종이 울렸다.



시험 전 엄마 목소리를 떠올리며 긴장을 풀곤 했다.


모르는 것은 틀려도 다시 배우면 되지만, 아까운 실수는 하지 않도록.

시간이 남는다고 방심하지 않고 다시 꼼꼼히 검토를.

친구들의 속도에 초조해지지 말고 나의 속도로.

모르는 문제를 길게 붙잡고 기죽지 말고 일단 쉬운 문제부터.

연필과 지우개는 떨어트릴 수 있으니 여유 있게.


막막한 오늘에 선 이들과 함께 풀어가고 싶다.

더욱 열심히 신나게 살아내리라. 마흔의 시험지를 후회 없이 풀어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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