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너무너무너무너무 맘에 드는 영화를 만나버렸다.
바로, 러빙 빈센트.
살아생전 작품을 단 1점만 팔았을 정도로 불운하고 경제적으로 힘든 삶을 살았던 고흐.
러빙 빈센트는, 고흐의 사후 1년 그의 죽음 후 우편배달부의 아들 아르망 룰랭이 고흐의 동생 테오를 찾아 나서면서 알게 되는 고흐의 죽음에 대한 얽히고설킨 이야기들을 다룬다. 사건 그 자체에 초점이 있다기보다는, 고흐가 마지막을 보냈던 그곳, 그 시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그곳에 살고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 그리고 그 마을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영화는 고흐의 화풍을 그대로 살렸으며, 특히 그가 그렸던 장소나 풍경, 인물들이 그대로 등장하는 굉장히 새로운 방식으로 표현된다. '유화 애니메이션'이란 타이틀을 붙였으나 그것만으로는 너무 부족하다.
고흐가 그린 아르망 룰랭의 초상.
이 그림 속 룰랭이 이 영화의 내레이터다.
상상할 수 있겠는가? 이 그림 속 인물이 갑자기 살아나 움직이고 말을 하고 화를 내고 싸우고...
흑백 영화를 보면 왠지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로 날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고흐의 그림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건 훨씬 더 복잡 미묘한 심정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나조차도 저 그림 속 한 인물이 되어 프랑스의 작은 마을 안에서 걸으며 아르망 룰랭을 쳐다보고, 고흐의 흔적을 하나하나 함께 발견해내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100여 명의 화가의 손을 거쳐 탄생한 영화다.
그것만으로도, 그리고 고흐의 그림을 움직이게 했다는 것 자체로 이 영화는 정말 대단하다.
그린 스크린 앞에서 연기를 해내는 배우들은 또 어떻고!
영화의 기술이 발달할 수록 우리는 더 리얼하고 화려한 영화를 볼 수 있지만, 배우들은 왠지 외로워지고 더 어려워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렇게 작업한 스텝과 배우들, 화가들의 노고를 생각하면 이 영화는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영화는 슬픈 내용은 아니다. 물론 고흐에 대한 연민이 느껴지지만 눈물이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잘 보고 있다가 마지막 엔딩 크레딧과 함께 엔딩 곡이 나오자마자 눈물이 맺혔다.
이 얼마나 완벽스러운 편곡이고, 이 노래를 부른 가수의 음색은 또 어쩜 이럴까!
이 노래를 배경으로 하나둘 펼쳐지는 고흐 그림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숨겨진 이야기와 뒷이야기들은 또 다른 감동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엔딩 크레딧 부분만 따로 떼다 평생 간직하고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좋은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대중적인 느낌이 아닌 이 영화는 시작부터 그러더니 왠지 상영관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는 기분이 든다. 만나는 사람마다 막 내리기 전에 얼른 이 영화부터 보시라 적극 권하고 있다.
이 영화를 통해 고흐의 세계로 발을 딛고 나면,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다.
믿어도 좋다.
그리고,
고흐에게 더 깊게 빠져들 수 있는 기회들.
책, <반 고흐, 영혼의 편지>는 고흐와 동생 테오가 주고받았던 편지를 편지체 그대로 살려 실었다.
실제 반 고흐의 육성으로 이 편지를 읽어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다, 지난 2011년 오디언 PD 시절, 오디오 북으로 이 책을 연출하게 되었다.
물론, 실제 육성은 아닐지라도, 내 상상 속에서 반 고흐의 어지러운 마음이나 머리가 아닌, 순수하고 열정적인 그의 느낌이 실린 목소리로 연출해내고 싶었고, 성우 김기흥 씨를 캐스팅했다.
김기흥 성우님은 굉장히 낮은 보이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참 부드러우면서도 담백한 액팅이 가능한 분.
그렇게 탄생한 고흐의 육성 편지들은 마음을 참 편안하게 해주면서도, 그가 보고 느꼈을 아름다운 자연과 세상, 그리고 색채와 표현을 조금이나마 함께 느낄 수 있도록 해준다.
영화 <러빙 빈센트> 덕분에 다시 고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마음을 담아본다.
작년엔 뮤지컬로도 <빈센트 반 고흐>라는 제목으로 공연도 올려졌는데, 그땐 놓쳤지만 다음엔 꼭 한 번 보러 가고 싶어진다.
별이 빛나는 밤에, 그를 만나야만 할 것 같다.